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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Blu Nov 11. 2023

사랑하는 당신에게 쓰는 편지

개인적이고 사적인 꿈을 적어요.

당신의 밤이 평온했으면 좋겠어요. 검은 헝겊을 쓴 존재들이 당신을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요. 또한 당신도 그들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행복을 타인인 내가 바라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안의 사랑을 논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개인적인 편지를 이곳에 씁니다. 당신이 허락해 주기를 바랄 뿐이에요. 깊은 밤에 작은 존재들의 숨소리를 내는 당신을 바라보다 보면 아침 일찍 깨어나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도망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가득한 어른이기 때문이겠죠. 허나 그 책임이 우리 자신을 넘어설 순 없단 걸 증명하며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가 최근 구한 일자리도 뒤로 하고, 일요일을 두렵게 하는 나의 일도 뒤로 하고 그렇게 적금을 깨뜨리고 도망갈까요. 당신은 당황하며 이건 과하다고 나를 타이를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엔 엔진을 예열하며 ‘그래, 가자’라고 손을 잡아줄까요. 어찌 됐든 이 달콤한 상상은 언젠간 현실이 될 터이죠.


저는 제가 태어난 이 도시를 비롯하여 제가 곧 살게 될 더 큰 도시가 소음이 가득 찬 곳이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내는 소음은 밀도가 다른 쇠붙이의 끝과 끝을 부딪히는 거처럼 조화롭지 않아요. 도시의 높은 빌딩은 차갑게 저를 내려다봅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쌓아 올린 바벨탑입니다. 인간이 신을 닮고자 쌓아 올린 그 오만한 탑은 신의 일격으로 무너져 내렸죠. 그 일화와 지금이 다른 건 그 빌딩을 무너뜨릴 신이 없다는 점입니다. 신이 있더라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쌓인 인간의 욕심을 바라보면 숨이 막힙니다.


미취학 아동부터 대학까지 저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은 ‘열등감’입니다.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제가 가지지 못한 건 돈이었고 저는 날이 갈수록 맹목적으로 그것을 탐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를 사랑했던 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저를 일치시키고자 노력하며 스스로를 지워나갔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연구실에 나갔고 밤늦게 문단속을 했습니다. 그 당시 메말라갔던 저의 마음에 가득 찼던 건 ’ 안도‘였던 거 같습니다. ’ 내가 상황을 바꾸고자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주어진 시간 내에 하루를 압축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간 저에게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누군가는 남들보다 빠른 취업을 한 저를 보며 부러워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 부러움이 턱 밑에 목 안쪽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갈증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당신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어린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건 당신이 어리지 못한단 점이었어요. 당신이 어리지 못하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겠죠. 제가 감히 찰나의 시간 동안 당신을 마주하며 고집스레 분석한 얘기를 늘어놓을게요. 당신은 정해진대로 흘러가던 나와는 다르게 시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관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낸 당신은 무수한 시간들 앞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나에게 족쇄와 감옥 그 자체였던 학교란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저를 지켜주는 곳이었기에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부럽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학생이고 휴학을 했죠. 무엇을 할까. 진심으로 고민하는 당신을 보면 한없이 부러워지곤 합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의 나는 나이기에 똑같은 선택으로 현재의 나를 똑같이 아픈 현실로 내몰았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두 번 다시는 그 시간으로 회귀 할 수 없다는 거겠죠.


당신은 깊은 사람입니다. 난 아직 당신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그런 날이 올지도 장담할 수 없어요. 허나 당신이 허락한다면, 감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도 함께 걸어가고 싶습니다. 설령 그곳의 끝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완전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수상한 밤이 계속되던 시절에 당신을 자주 그립니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무언갈 휘갈기는 당신이 보이기도 하고 컴퓨터 앞에서 커서를 띄우곤 막연히 빛을 잃은 눈빛으로 흰 화면을 바라보는 당신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에 이름을 새길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먹으며 낯선 언어로 귀를 채우던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픈 배를 부여잡고 삶의 끈을 놓을지 잡을지 고민하던 당신을 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무수한 질문이 꼬리를 이으며 늘어집니다. 나는 어쩌면 영원히 당신에게서 답을 듣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답을 듣는 게 아니라 답을 알아가는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완벽주의자인 당신의 입은 나와 무게가 달라서 시간이 요한단 것도 이제는 압니다. 그대, 힘들어 말아요. 부추기지 않을게요.


사랑은 언제나 저에게 명확한 감정이었습니다. 주관 없이 휘둘리던 그 시절에서도 조차 사랑은 저에게 뚜렷한 무언가였습니다. 그렇기에 진심을 퍼올리는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거 같아요.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문장을 받아 적습니다. 또한 당신이 이 문장을 가벼이 여길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자신 있게 내보이는 걸 수도 있습니다.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저의 표현은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웠던 거 같습니다. 진심을 의심당하고 저의 문장들은 손쉽게 매도당하기도 했어요. 쉽게 퍼올린 문장들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니깐요. 단 하루만, 당신이 나로 살아봤으면 하네요. 그러면 당신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이 벅찬 마음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 쏟아내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럼 나의 글이 과하지 않고 오히려 점잖다는 걸 느낄 텐데요.


당신을 보며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상입니다. 그 일상으로부터 구해주겠다고 기다려달라며 히어로처럼 말하는 당신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당신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 신기하지요. 기대고 싶으면서 지키고 싶다니. 처음 느끼는 감정입니다. 사실 당신에게 처음 느끼는 감정이 많아요. 보수적인 성격 탓인지 시간에 대한 남다른 집착 탓인지 저는 어린 사람에게 엄하곤 했죠. 그런 제가 당신을 만나고 있단 게 신기하네요. 낯선 감정에 고취된 걸까요. 요새 저는 붕떠있습니다. 아무래도 여행을 떠날까요. 당신과 함께라면 나 정말 어디든 두렵지 않아요.


천만 원이 든 카드를 들고 이곳을 떠나요. 날이 추워졌으니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걸치고 편한 신발을 신어줘요. 활동량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백팩이 좋겠네요. 맥시멀리스트인 당신은 공책이고 아이패드고 핸드크림이고 가득 챙길 테니깐 저는 그냥 큰 가방을 들게요. 당신의 짐을 나눠 들어야 하니깐요. 어디를 갈까요. 저는 낯선 곳이 좋을 거 같아요. 기차역에서 만나요. 경부선 가운데가 좋을까 고민하다 겨울이니 강원도를 가는 게 좋겠어요. 바다 앞에 사는 저지만 겨울바다가 주는 감성은 상상을 초월한답니다. 글과 그림이 마구 나올 수도 있어요. 가볍게 순두부 아이스크림을 먹고 앞으로 어디로 떠날지 의견을 나눠봐요. 아마 당장 모든 계획을 짤 순 없겠죠. 아무리 J인 당신과 저라도. 해가 뉘엿뉘엿 모습을 감출 때면 가까운 아무 숙소나 들어가요. 몸을 단정히 하고 누워선 사랑을 속삭이다 시계를 보지 말고 잠에 들어요. 해가 우리들의 두 눈을 내리쬐면 일어났다가 싸구려 조식도 맛있게 잘 먹는 당신을 구경하다 다시 잠에 들래요.


처음 듣는 지역의 기차역에 무거운 짐을 대충 맡기고 허름한 정류장에서 사진을 찍어요. 당신의 빨간 베레모를 훔쳐서 어설픈 경례를 할래요. 지역 주민에게 맛집을 추천받고 걸어가다 아예 모르겠다 눈에 보인 끌리는 곳에 들어가요. 맛이 없더라도 서로를 탓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공간이 있을까요? 없으면 어디 적적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함께 음악을 들읍시다. 이어폰과 헤드폰을 Y선에 연결시켜서 당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수록곡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재즈를 들려주세요. 그러면서 우리가 가고픈 다른 국가를 정하면 합의점에 도달하길 바라요. 어떻게든 싼 비행기를 구하려고 폰을 들여다보는 우리가 보이네요. 카페에서 하루종일 계획을 짜고 예약을 하고 일정을 정리하면서 편안할 거예요. 우리가 기다려 온 순간이 지금에서야 왔음을 느끼며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일게요.


카페에서 세 시간 동안 잠든 당신이 깨어났네요. 저는 이제 곧 저의 고향인 부산으로 떠납니다. 당신이 숨 죽이며 잠든 시간 동안 행복한 꿈을 꾸었어요. 사랑해요. 이 말로 충분했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못해 글을 쓰고 당신에게 보냅니다. 안온한 밤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에도 내 꿈을 재밌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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