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국시 시험장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놓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나 자신에게는 유난히 야박하게 굴 때가 있다. 아니 사실 좀 많다. 현재 거의 20년째 시달리고 있는 학업에 관해서는 그러기가 쉬운 것 같다. 공부라기보다는 학업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평가를 당하지 않는 공부는 즐거우니까. 요즘 학교에 남아서 핸드폰을 제출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앉아서 공부를 한다. 일명 실미도라고 불리는 국시 공부 캠프다. 약 5일 동안 그렇게 공부했는데 눈에 띄게 성적이 오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무서워진다. 해봤자 제자리걸음인 나 자신에게 또 실망하고 화가 날까 봐 그냥 가끔은 하염없이 앉아있는 것이다.
노력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애초에 내 본질에 대해 실망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기록을 한다. 하물며 친구가 어디 가서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을 듣고 오면 대신 화라도 내줄 수 있으면서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중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는, 채찍은, 발전의 발판이자 원동력 취급을 받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구는 걸 지도 모른다. 영화 위플래시가 생각난다. 외국에서는 그 영화의 결말이 '완벽을 향한 비뚤어진 욕망이 불러오는 파국'이었다는데 한국에서는 '그래 저렇게까지 몰아붙여야 높은 경지까지 갈 수 있는 거지' 하는 메시지로 탈바꿈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는 나에게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잘 돌봐주고 살펴봐야 한다. 그 당연한 일이 어려울 땐 나를 타자화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끔 남에게 더 허용치가 넓을 때가 있으니까. 나 자신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내가 사랑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면 애정을 주고 보살피는 것이 수월하다.
이쯤 글을 써보니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더 시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거구나. 가끔은 결괏값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도 그다음 단계를 더 오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채찍과 자책이 아니라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잊어버리기 쉬우니까 노력해서 기억해야 한다. 오늘 모의고사를 봤다. 20점 정도가 올랐는데 '왜 이것밖에 안되니' 보다는 '와 그래도 노력한 보람이 있구나!' 하고 보듬어주고 또 공부를 하려고 앉았다. 나를 잘 달래서 앉힌 것도 기특하다.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애정 어린 시선들도 위로가 된다. 2022년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느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