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아?
졸업시험을 봤다. 폭풍같이 몰아쳤다. 본과 4학년 2학기에는 총 세 개의 시험을 본다. 차례대로 중간고사, 졸업고사, 기말고사. 타 학교는 국가고시에 쓸 공부시간을 확보하라고 2학기에 시험을 한 번만 보기도 한다는데, 내가 어쩔 수 없이 이 학교에 떨어진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실습도 매일 나가는 판에 하하.
아, 전국에는 한의과대학이 몇 개 없다. '도' 당 하나씩 있어서 총 11개뿐이라 사회에서 한의대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의대나 치대보다 보기 힘든 희귀종...) 그러니까 서울 내에는 경희대학교뿐이고 나머지는 다 지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한의대생들은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앗, 나만 모르는 것일 수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있지도 않고, 나는 같은 전공 내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엄청나게 원하는 것은 아니라서 나서서 어떻게 해보려는 노력을 안 한 편이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넓게 만나보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질 따름이다.
시험이 월요일에 있으니 그 전 주 금요일 즈음 시작하면 되겠지 하고 책을 느지막이 폈는데, 아뿔싸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아득해졌다. (애초에 17개를 어떻게 이틀 만에 주파하려고 한 건지) 급하게 윗 학번 선배에게 어떻게 통과하면 되는 건지 물어봤는데 무조건 할 수 있는 데 까지 울면서 어찌어찌하다 보면 통과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다. 금, 토, 일 3일 동안 17과목을 보려면 평균 하루에 6과목을 봐야 하고 그 말인즉슨 한 과목당 3시간이라도 보고 들어가면 다행이라는 뜻이었다.
계획이 없는 것을 굉장히 어수선하게 느끼는 나는 노트를 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쭉 적어내려 갔다. 이 과목은 어려우니까 2시간 할애해보자, 저 과목을 그래도 조금 자신이 있으니까 한 시간만 보자, 아이고 이 과목은 그냥 기출 위주로만 보자... 이런 식으로. 하루에 3시간도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나는, 수능 준비는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궁금해하며 뽀모도로 공부법으로 6~7시간을 공부하는 기염을 토했다. 뿌듯하기는 했다. 본초나 생리학은 거의 기억에 의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는 포기하고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통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결과일지 몰라도 학과 공부에 자신감이 충만하지는 않은 나에게는 소중하고 소소한 성취였다고 생각한다. 매 학기 재시험을 보니 많이 하며 넘어온 나를 아는 부모님이기 때문에 집에 오니 미니 플래카드도 붙어있어서 어이없었다. (아빠만의 조크 같은 거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졸업고사를 본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졸업 고사를 보고 난 뒤에 진이 빠지고 공부에 좀 질려버려서 지난 일주일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재정비하고 토요일에 있을 모의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어쨌든 책상 앞에 앉아있다는 증거. 오늘 또 눈이 꽤나 펑펑 왔다. 공부 좀 열심히 해보라는 하늘의 계시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알차게 또 보내보려고 한다. 눈이 오면...나는 공부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