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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민 Feb 20. 2022

생산적인 일을 하는 법을 까먹었다

릴스 그만!!!

하염없이 인스타 피드를 내리다가 생각했다. 이게 관성이 되면 안 될 텐데.


지금까지 써먹은 변명은 ‘발목을 다쳐서’였다. 약 3주 전에 정말 오랜만에 나간 농구 모임에서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넘어질 때 뿌드득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 큰일이 났구나- 라는 것을 직감하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날에 전거비인대 부분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로 일주일은 내내 화가 났었다. 농담 아니고 정말 분해서 엉엉 울었다. 클라이밍도 하고 농구도 헬스도 할 예정이었는데 남의 잘못으로 이렇게 거하게 발을 다치다니. 대충 치료 기간도 예상할 수 있어서 무지성으로 ‘괜찮겠지’ 생각하는 것도 잘 안됐다. 그래서 여하튼 누워 지냈다.


그래도 와중에 난 내가 책도 읽고 언어 공부도 할 줄 알았다. 걷지는 못해도 앉아 있을 수는 있으니까. 근데 그냥 다 하기가 싫었다.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을 못하게 되니까 의욕이 없었다. 생각보다 운동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시기었다. 나중에 혹여 또 크게 다치게 되면 할 일을 만들어놔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바구니에 뭐 나눠 담아라 어쩌고 그런 말처럼.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반깁스 한 다리를 질질 끌고 계단을 오를 때는 대체 걷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로 열차가 지연된다는 서울 지하철도의 안내글이 더욱 얄밉게 느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난 겨우 발목 하나 다쳤다고 이렇게 이동이 힘들어졌는데… 대체 다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 건가요.


아 운동은 물론이고 운전면허를 획득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틀어졌다. 기능 시험을 막 통과한 직후였다. 화가 날 이유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었다.


그나마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것은 ‘스트레스받으면 나을 것도 더뎌져. 편안하게 생각하고 빨리 나아서 같이 운동하고 놀러 다니자.’라는 말이 쓰인 편지였다. 그래 맞다. 그래도 어떡해? 잘 살아야지. 싶었다. 그래서 제주도도 그 다리로 잘 다녀왔다.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사장님들께서 한두 마디씩 말을 건네셨다. 아이고 무슨 일로 이렇게 됐어- 그렇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잘 안 물어보니까. 어찌 보면 관심이 없는 게 더 당연하지만 관광객이 그 다리를 이끌고 온 것이 또 갸륵하다는 느낌이 전해져서 힘이 좀 났다. 깁스한 것을 꽤나 뿌듯하게 느끼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 아 아이들은 이런 관심을 좋아하는 거구나. 귀엽다.)


재활 운동을 하고 책을 읽자. 강의도 듣고.   있는 것은 많은데 책상에 앉기가 힘들 뿐이다. 좋아하는 공간에 가는 것도 이제는 그래도  수월하니까.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겠다. 한의사 면허를 받은 이후로 거창하게 진로 계획도 짜려고 했는데 안일했던  같다. 제주도 여행을 기점으로 마음은 어느 정도 고요해졌으니 충분히 차근차근할  있을  같다.


근데 이번 주말까지만 누워 지내야겠다! 반깁스 3주는 하고 다니랬어 의사 선생님이!! 한의원만 좀 다녀오고 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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