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
힘을 뺀다는 것
시의 씨앗은 오래 본 것에 깃든다
A poem begins
where the gaze lingers longest
파도는 멈추지 않고 밀려옵니다.
테트라포드는 그 모든 파도를 막는 대신, 그저 자리를 지키며 흘려보냅니다.
힘을 빼는 일은 무력함이 아니라, 존재를 받아내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몸을 굳게 조이면 더 깊이 가라앉듯, 마음도 때로는 느슨해야 합니다. 그 조용한 구조물 앞에서 단단함보다는 부드러움을 배웁니다.
영월댁 친할머니와 가족들이 여름휴가로 바닷가에 갑니다. 그날의 바다는 무척 평온했고, 물은 가슴까지 찼지만 맑고 따듯해서 발끝으로 하얀 동죽조개를 잡을 수 있습니다.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조개를 집어 올리는 일은 큰 기쁨이지요.
그러다 불쑥, 파도가 몰려옵니다. 지금껏 제가 알고 있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얼굴입니다.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중심을 잃고 물에 쓸려갑니다. 몸 전체에 긴장이 들어가고, 팔과 다리는 제멋대로 허우적거립니다. 숨이 막히고 시야는 흐려지고, 이대로 죽는구나 싶어요.
그 순간,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의 팔이 저를 꺼내 올립니다. 아버지입니다. 거센 파도도, 가쁜 숨도, 그 손 아래에서 모두 잠잠해집니다. 그제야 저는 온몸에 들어간 긴장을 풉니다. 스르륵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날 처음 배웠습니다.
살기 위해선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요. 그렇지 않으면 물에 더 깊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불안, 실망, 후회, 고통, 슬픔, 기쁨, 기대, 환희, 희망...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때, 우리는 단단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무너질 때가 더 많은 것이 일상입니다. 단단함은 언제나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테트라포드는 힘을 주지 않습니다.
파도를 막는 것이 아니라, 파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을 뿐이지요.
사이사이에는 희뿌연 조개껍데기와 청푸른 이끼가 붙어 있고, 비바람이 남긴 자국들이 얼룩처럼 묻어 있습니다. 그 모든 흔적은 구조물이 살아낸 날들의 증거입니다.
테트라포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킵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단단하게 말입니다.
말없이 있지만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됩니다. 그처럼 살고 싶습니다. 힘을 주기보다 힘을 빼고 지탱하려 하기보다 함께 흔들리며 삶이 아무리 거세진다 해도 나와 너와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테트라포드처럼 묵묵히 있는 곳에서 모든 사물을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시선을 준 것이 새롭고 낯설게 보인다면, 시를 쓰기 위한 또 하나의 씨앗이 되겠습니다. 부디 그 씨앗을 잘 심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잘 걷겠습니다.
어깨 힘 빼기
볼은 쉴 새 없이 네트를 넘어온다.
구질과 속도, 높이와 방향이 다르게 변화를 가지고서 오므로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볼을 맞이할 때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는 것은 라켓에 손목을 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텐션을 유지함을 말한다.
처음에 배울 때는 몰랐다. 스트로크에서 이상적인 샷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깨에 힘을 뺀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생각하여 라켓을 꽉 쥐고 어깨에 힘을 많이 줘야 파워풀한 샷이 나오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힘조절이 안 되어 스윙을 방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어깨에 힘을 빼야 부드러운 스윙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깨에 힘을 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빠르면 삼 년, 십 년 넘게 걸려도 아직 힘이 들어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어려운 것이 힘을 빼는 일이다.
게임 중에 어떤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힘은 들어간다. 비중 있고 타이트한 경기 중에 긴장하거나, 찬스 볼에 포인트를 의식할 때 등 이런 상황들이 번갈아서 들이닥칠 때, 스스로 의연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실제로 무너질 때도 있다. 어깨에 힘을 빼는 방법은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마음이다.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받는 방파제의 테드라포드가 부드러운 혀가 되어 바다와 대화를 나누듯이 좋은 샷을 위해 나의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서 볼을 컨트롤하자.
파워는 부드러움 속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