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할아버지가 짓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았고, 어린 시절에 놀러 갔던 그 집이 헐렸다. 수요일과 목요일에 작업하겠다고 했고,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이제 터만 남았을 것이다.
닦으면 반질반질 윤이 났던 나무마루가, 불을 지피면 뜨끈뜨끈 열이 올라 장판이 구워졌던 바깥 방이, 무서워서 동생 손을 잡고 갔던 똥간이, 떡을 찧으면 잔돌이 하나씩 씹히던 커다란 돌절구가,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것이다. 수요일이 왔지만, 목요일이 지났지만, 금요일이 되었지만 나는 차마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를 묻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쳐서 내 머리 위로 내려 꽂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꿈에 돌아가신 재도 할아버지나 이화 할아버지가 나타나 자손이 제 손으로 집을 헐어버린 것을 한탄하며 나를 호되게 야단치시는 일도 없었다. 지신이, 성주신이 나타나 터를 건드리고 남에게 넘겼으니 앞으로 삼족을 멸할 것(?)이라고 호통치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집이 사라졌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정지문은 여닫을 때면 삐이걱 소리가 들렸다. 전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부엌에는 아궁이와 커다란 가마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마다 온돌이 깔려있고 집 밖에 변소가 있던 나무집은 한차례 크게 손을 보았다. 현대식 주방이 생겼고, 알루미늄 새시를 달아 바람을 막았고, 온돌 대신 기름보일러를 깔았다. 붉은 흙이 드러난 마당에는 시멘트가 덮였다. 그러나 어쨌거나 요새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촌집이었다. 집은 비워진 지 1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워진 집은 금세 표가 났다. 할머니가 장미를 심었던 앞마당은 잡풀로 가득 찼다. 여름에는 넝쿨이 자라 무성했고, 겨울에는 죄 시들어 칙칙한 회색빛이 돌았다. 명절이면 방이 모자라 한가득 사람이 찼던 건넌채도 슬레이트 지붕이 녹슬어 구멍이 생겼고, 그 사이로 비와 바람이 들이치고 마르기를 반복했다. 무엇이 있었던지도 모를 그 방의 물건들은 시들시들 정체를 잃었다. 본채가, 건넌채가, 창고가, 다 그랬다.
깊은 시골의 땅들이 대개 그러하듯, 경계도 어지러웠다. 옆집이 우리 땅 절반은 차지하고 있었다. 어쩌다 남의 땅 위에 집을 지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우리 땅 위에 옆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리하지 않았다. 고스란히, 그 정리는 자손들 몫으로 넘겨졌다.
새벽같이 출발하면 점심 즈음에나 도착하는 그 먼 거리의 오래된 집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멈춘 집은 그렇게 가끔 풀을 걷어내고, 가끔 둘러볼 뿐 내내 비워져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그 땅과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옆집을 들러 그 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의 땅 위에 올라앉아 수십 년을 살아온 그 댁도 근심을 안은 채 살아왔는지 선뜻 우리 땅을 사겠다고 했다. 언젠가는 새 집을 지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집을 헐겠다는 뜻이었다.
땅과 집을 함께 넘기면서 ‘알아서 하라’ 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짓고, 아버지가 자라온 집이었다. 군내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오면 만나던 할머니의 집이었다. 가을이면 마당에 심어진 커다란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열매가 맺혔다. 어린 내 코앞까지 휘어져 내려온 가지에 달린 감을 두 손에 가득 담아 힘을 주어 투둑, 따내어 엄마에게 가져가면, ‘아직은 떫을 텐데’ 하면서도 감을 깎아 내 입에 넣어주셨다. 입속의 그 거칠거칠한 떫은맛에 몸서리치던 그날, 그 가을, 그 기억들이 선명한 집.
불 꺼진 안방,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있던 밤. 케이비에스, 엠비씨가 겨우겨우 잡히던 작은 텔레비전. “가요무대” 글자가 떠오르고 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쿵짝쿵짝 노래가 시작되면 어느새 고로롱고로롱 하는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흘러나오는 오래된 노래를 들으며 난 아직 안 졸린데... 뒤척이다 잠이 들던 그 날들.
매해 추석이면 나타나던 커다란 두꺼비도 있었다. ‘이 집 손(孫)들 왔는가?’, 하는 듯 마당 한편에서 나타나던 아주 커다란 두꺼비.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성화 놀이를 하다 생긴 이마의 화상자국을 안은 채, 동생과 랜턴 하나를 들고 두꺼비 선생님한테 인사하러 가던 그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어느 밤.
집에는 할아버지의 초상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아버지가, 내가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뒷산에 묻혀 있는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산비틀 어딘가에 묻혀 있는 고조할아버지와 할머니, 거기 어딘가에도 또 내가 있을 것이었다. 내 뿌리는 모두 그 산 아래, 그 마을에, 그 집에 있었다.
그러므로 남의 손에 그 집을 맡겨 허물고, 버리고, 정리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집을 내 손으로 정리하겠다고 했다.
종종걸음 치며 준비한 일은 연말이 되고서야 날이 정해졌다. 수요일과 목요일이라고 했다. 혹시 챙기지 못한 게 있다면 챙겨가시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미 봄에, 여름에, 가을에 들러 몇 번이나 집안을 살핀 후였다. 또 무엇을 챙겨야 했을까, 한참 전에 비어버린 그 집에서.
집이 사라진 그 땅은 나의 상상과 같을까, 같지 않을까.
이제는 장미 나무도 없고, 땔감으로 가득 찬 창고도 없고, 아궁이도 없고, 두꺼비도 없을 것이다. 초록지붕의 그 집은 이제는 우리의 머릿속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각자의 기억을 담아, 모두 다른 형태로.
집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