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카드를 쓰려고 문구함을 뒤적이다 보내지 못한 편지를 발견했다.
어제 왜 술을 땄냐면,
사랑하는 이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공유하는 것,에 대해 좀 좌절감을 맛봐서... 많이 슬프더라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에너지 소비를 하는 것이어서 뀽꾕꽁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서로 아니다, 한쪽은 화를 내고 본인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조차 단문으로 끝내는 것은 외려 문제를 키우는 것 같아. 내가 물음표 살인마로 돌변하게 되고...
그래서 좀 슬펐어. 이지경 까지 안 올 일이었는데.
어제의 이야기를 다시 하자는 것은 아니고,
꼭 이런 순간에 ‘서로에게 바라는 것 없느냐’ 고 하면,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나만 요구사항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리는데...
일단 나는 ‘다그치지 않기, 의문문 그만 만들기, 물음표로 공격하지 않기’.
그런데 내가 이 상태가 되는 건 보통 자기가 생각하는 뭔가가 있는데 충분히
편지는 여기서 끊어져 있다. 쓰기 중단한 이유도, 보내지 않은 이유도 안다.
‘그런데’에서 자기 방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런 편지는 보내지 않는다.
편지를 발견한 후 읽고, 사진을 찍어두고, 찢어서 버렸다.
“나는 너를 처음 볼 때부터 궁금했고, 연애하면서도 궁금했고, 같이 살면서도 궁금했고, 지금도 그렇다.”
저 편지를 언제 썼을까. 그리고 왜 썼던 것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헤어질 즈음 내가 9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너를 처음 볼 때부터 궁금했고, 연애하면서도 궁금했고, 같이 살면서도 궁금했고, 지금도 그렇다”
편지에는 같이 살면서도 궁금했던 내가 있었다.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이해하고 싶었던 절박한 나,
그리고 좌절한 나.
특별한 날이 오면 9는 내게 기꺼이 편지를 써주었다.
나는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즐거웠다.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9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날’ 에만 오는 ‘특별한 일’ 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쩍쩍 갈라져 가는 나에게 그 특별한 일은 종이컵 한잔 정도의 물에 불과했다.
나는 늘, 목이 말랐다.
그는 그저 그답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그저 나답게 궁금했을 뿐이다.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말과 글, 대화와 문자로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
혹은 그것이 고통인 사람과 삶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나답게 사는 것이 상처가 되는 관계가 있다.
그냥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주는 인연도 있다.
어제 왜 술을 땄냐면,
9는 떠났고,
나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다.
슬퍼서 술을 따는 일도 없다.
눈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