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성질대로 살고 싶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몸이 먼저 튀어 나가고, 생각은 그것보다 더 빠르다. 글을 쓰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어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머릿속에 구성이 잡힘과 동시에 문장이 ‘쏟아져’ 나온다. 업무 관련해서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정보를 찾고 그것을 곧바로 글에 녹여낸다. 설득하기 위해서 어떤 자료가 필요하고, 무엇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누가 가르쳐준 적이 없지만 그냥 안다.
글뿐만이 아니라 일상상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무엇이 문제인지 빠르게 알아채고, 빠르게 해결한다. 물론, 나보다 이걸 훨씬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다. 더 똑똑한 이들은 훨씬 많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의 내가 평균치보다 훨씬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좋은 기능을 갖춘 ‘기능형 인간’인 것이다.
기능형 인간과 정서적 인간.
사람을 둘로 분류하자면 나는 압도적 전자일 것인데, 여기에는 당연히 성장의 배경도 뒷받침되어있다. T와 T가 결혼해서 T와 T를 낳은 가족. 기능적으로는 매우 우수하지만 정서적으로 따듯한 가족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리고 그중 가장 냉혹한 기능형 인간은 뭐니 뭐니 해도 나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따듯하고 다정한 기능형 인간이란 존재하는 걸까?
기능형 인간에게 다정함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과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또 항의하고 싶은 것이다.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나는 다정함을 선택했습니다
다정하게 말하다 보면 인생도 그렇게 될까 싶어서
나를 살리는 다정한 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뾰족하게 다정할 것
다정함의 과학
잘 배운 다정함
‘다정’이라고 검색했더니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다.
심지어 “다정함이 인격이다” 란다.
그렇다면 나는 애당초 인격이라는 것이 없는 인간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모친에게 “몰랐는데 성격이 만만치 않더라”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한 말에 “마음이 상했다” 고 한다. 대체 무엇이 마음이 상했는고 했더니, 자신이 길을 알려줄 수 있는데 자꾸 ‘목적지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고, 뒤에 앉아 ‘저쪽으로 가라’ 고 말했더니, ‘저쪽이 대체 어디냐,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분명히 이야기해달라’ 고 큰소리를 내서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시골, 그리고 초행길. 정확한 주소와 내비게이션이면 모두가 해피엔딩이었을 것을 원하는 대로 따랐더니 이제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때면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정서적 자원이 풍족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말했을까.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실시간으로 나는 F인 나의 친구에 빙의해서 ‘그녀라면 어떻게 말했을지를 상상’ 한 후 말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면서 상상해 봤지만 저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다정한 사람이 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말투의 문제인가? 화를 낸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주소를 내놓으라고 했던 것부터?
그래, 맞다. 인정한다. 다정한 사람의 말은 내 귀에도 듣기가 좋더라. 또 다정한 친구의 우쭈쭈는 내게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 듣는 이의 ‘정서’가 고려되지 않은 나의 ‘기능적 반응’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여, 보통의 경우에는 긴장한 상태로 나를 깎고 다듬는 마음으로 착하고, 예쁘고,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하여 꽤나 열심히 연기를 한다. 물론 그게 얼마나 다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내 성질대로’ 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송무 변호사 일을 할 때에는 원 없이 싸움닭처럼 살 수가 있었다. 서면에서 글자로 못된 말을 신나게 써내려가며 마음껏 싸웠다. 적대적 증인을 말로 두들겨 패고 나면 쌓인 화가 사라지고 아주 개운-했다. 그 시기의 나는 다정함 조차도 기능적으로 활용했다(나는 자백사건 변론요지서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조직에 오니 달랐다.
내가 빨라봐야 소용이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끝나 있어도 조직의 평균적인 속도와 역량에 맞추어야 했다. 때로는 빠르지 않은 것, 느린 것, 하지 않는 것이 답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너 잘못했고, 위법이고, 불법이고, 빨리 정신 차리시고...라고 쓰고 싶은 대로 써재끼는 대신에. 내가 하는 말과 쓰는 글로 누가 다치게 되는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도 자꾸 손가락에 제동이 걸렸다. 그렇게 산 것이 벌써 N 년이 지났다.
내 입과 손에는 잘 벼려진 칼이 들려있는데, 세상은 솜털과 깃털의 시절이라고 한다.
다정한 사람이 이기고, 살아남는다고 한다.
놓치고 있는 것을 다정하게 알려주었더니 할 생각이 없다며 발끈하길래, 입에 칼을 물고 ‘하건 말건 니맘대로 하시라’고 했더니 그제야 고민을 해보겠단다.
아, 정말 성질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