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재활용 쓰레기를 제때 버리는 습관!
올해는 매주 목요일에 규칙적으로 버리자고 마음먹으며 캘린더에 추가했는데, 오히려 수시로 버리는 습관이 붙었다. 사실, 이놈의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는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올라와 혼자살 때 내내 나를 괴롭히던 것이었다.
항상 집 어느 한 곳에 분류하지 않은 채 쌓아두었다가(그나마 커다란 상자 같은 데 모아두었다), 도저히 참지 못할 지경이 되면 양손 가득, 아니 양손조차 부족해하면서 버리고 왔었다. 그 와중에 산더미처럼 이고 지고 가지고 나오는 게 부끄러운건 알아서 엘베에서 이웃과 마주칠까, 분리수거장에서 경비아저씨를 마주칠까 밤중에 나가 와르르 버리곤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할 때 분리수거장에 던지고 가면 되는 거였는데 그게 대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고 던지는 시간이 출근길에 얼마나 아깝게 느껴지던지.
아, 음식물쓰레기. 이건 말해 뭐 해.
재활용 쓰레기는 문제도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정말 게으른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귀찮아서 방치하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되기 일쑤였던 그놈의 음식물쓰레기.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엄청나게 더러운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아니 저는 그래도 정리는 곧잘 했고요, 집이나 방이 짐과 쓰레기로 뒤덮인 사람은 아니었고요, 그냥 단지 게으른 사람이었을 뿐인데... 뭐라고 해도 더러운 사람처럼 느껴지긴 하네.
그런데 어찌 되었건, 그 시절로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놓지 않고 수시로 버리는 사람으로 탈바꿈하였다! 세상에, 내가! 산더미 같이 수집한 재활용 쓰레기를 양손과 양발(?)에 들고 이고 지고 했던 내가!
생각해 보니 긴 여정이었다.
우선, 6년 전쯤 미생물 발효식 음식물 쓰레기처리기를 들였다. 던져 넣기만 하면 흙이 되었고, 흙이 쌓이면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되는 이 놀라운 기계는 과장 조금 섞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애매하게 남은 식재료는 냉장고에 방치되다가 물러져 정체불명의 상태로 생을 마감하는 대신, 발효통으로 들어가 때깔 좋은 흙이 되었다.
남은 음식은 먹지도 않을 거면서 꼭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곰팡이의 식량이 되었는데, 냉장고에 넣는다는 이 행위는 사실 음식을 낭비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음쓰처리기 이후 남은 음식은 곧장 발효통으로 들어가 깔끔한 상태의 흙으로 재탄생했다. 과일과 초파리는 항상 묶음으로 동행했으나 초파리 역시 안녕,이었다.
버리기 쉬워졌다고 해서 의외로 식재료나 음식을 낭비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냉장고에 묵혀놓고 있다가 한 번에 정리할 때에는 구입 시점과 폐기 시점사이에 기이인 시간적인 여백이 있고, 게다가 버리기 딱 좋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아까운 줄을 몰랐다.
그러나 재깍재깍 발효통으로 털어내자 양심의 가책은 실시간으로 찾아왔다. 덜 사게 되자 냉장고에 여백이 생겼다. 헐거워진 냉장고에서는 남겨진 식재료가 한눈에 들어왔고, 빨리 소비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식재료는 덜 사고, 포장 음식은 더 신중해졌다.
물론 음쓰처리기 덕분에 마무리가 편안해져 요리를 더욱 즐기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음쓰처리기가 들어오면서 점차 식생활이 매우 단순하고 심심해지고, 덜 사고 덜 먹게 된 것이다!
자, 다시 재활용 쓰레기로 돌아와서.
3년 전쯤 나는 ‘예쁜’ 재활용쓰레기 분리거치대를 구입했다.
검은색에는 플라스틱을, 초록색에는 비닐류를, 흰색에는 캔류를 넣었다. 종이쓰레기는 내어놓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재빠르게 가져가셨다. 이때엔 적어도 분리한 상태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보관했고. 봉투가 가득 차면 제때 묶어 내어놓았다. 물론 뻔히 가득 찬 게 보이는데도 흐린 눈을 해서 도무지 봉투가 묶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기도 했으나, 적어도 양손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시절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난해에는 이사를 했다.
분리수거장이 생겼다.
택배는 현관에서 풀었다.
테이프와 송장은 그 자리에서 뜯어냈다.
배송 온 물건도 그 자리에서 확인하고 포장을 뜯어냈다.
환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딱 하나를 옛날과 다르게 했다.
'택배상자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
고작 그 하나.
놀랍게도 습관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성격 급하게 현관에서 택배를 뜯었고, 별생각 없이 상자를 풀어 물건만 가지고 들어왔으며, 다음날 퇴근길에 문을 열자 상자가 눈에 띄어 집어 들고 아직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바로 내려가 비우고 왔다.
아직 외출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라 일부러 나간다는 귀찮음이 없었다. 어라, 이거 꽤 효율적이고 느낌이 좋은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란 집에 들어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누워있다가 아 맞다, 오늘은 어떻게든 버려야 하는데 하면서 투덜거리며 나가는 일이거나, 출근길에 멈춰서서 아이 바쁜데 이런것 까지 하고 있어야 해, 라며 이마를 찌푸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일이었다고?
어느 날엔 신발도 벗기 전에 현관에 서서 택배를 뜯었다. 그리고 신발을 벗지 않았으니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 상자를 버리고 왔다. 이것도 꽤 괜찮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를 테스트해 보기 시작했다.
버려야 하는 종이 상자에 간밤에 마신 맥주캔을 넣어 현관 근처에 두어 보았다.
다음날, 나는 출근길에 그걸 집어 들고나가 분리수거장에 재빠르게 버리고 갔다.
물론 실패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적어도 하루이틀 사이에 출근길, 또는 퇴근길, 운동하러 나가는 길에 신발을 신거으면서 또는 신발을 벗기 전에 가지고 나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언제부턴가는 현관 근처에 두지 않더라도, 어제 마신 탄산수 병을, 오늘 끝난 화장품 공병을 들고나가기 시작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가... 채워지지를 않네?
이야, 이게 되는구나!
산더미 같은 재활용 쓰레기를 늦은 밤에 부끄러워하며 버리던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드디어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수집하는 대신 너무 늦지 않게 분리수거장에 던지고 오는 사람이 된 것이다!
토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러 나오는 길에 아침에 새로 뜯은 화장품의 작은 포장상자 하나를 분리수거장에 내놓았다. 어, 근데 내가 이렇게 실시간으로 잘 버리는 사람이었던가? 갑작스러운 이질감에 생각을 더듬다 문득 깨닫고 마음이 벅차올라 이 글을 쓴다.
하하하하하.
2026년, 나는 드디어 제때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