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몸으로 때우는 엄마의 고군분투기

by 코니

딸애가 운다. 소리 내 울진 않지만 내 무릎을 베고 누워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또 어떻게 달래야 하나 걱정이 된다.

“시험공부하기 싫어. 나 시험 망칠 것 같아”

며칠 동안 열심히 해왔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는지 적잖이 당황스럽다. 예전에 무슨 일인가로 애가 힘들어서 내게 하소연할 때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친구들도 다 똑같은 상황이다 이렇게 말했다가 딸애한테 한소리 들었다. 그냥 힘들구나 하면 될 것을 그리 말한다고. 무슨 답을 얻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힘드니까 엄마한테 그저 위로받고 싶어 투정 부리는 건데 그런 식으로 말한다고. 그래서 이럴 땐 그저 딸애 말을 조용히 들어준 뒤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드냐, 엄마가 뭘 해줄까라며 이 상황이 너무나 안쓰럽다는 듯 말해야 한다. 동시에 누워있는 딸애 궁둥이를 두들겨 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면서. 그러면 딸애는 조금 더 어리광을 부리다 곧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자기 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한다.




시험공부하기 싫다는 딸애 말에는 100% 아니 1000% 공감한다. 하지만 시험 망칠 것 같다는 말에는 글쎄…. 나도 남편도 큰애도 딸애만큼의 좋은 성적을 받아 본 적이 없어 딸애가 갖고 있을 시험성적의 중압감은 잘 모른다. 그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겠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진짜 안쓰럽기도 하다.




딸애는 순하고 무던한 아이다. 평소엔 엄마처럼 예민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은데 유독 시험 때만 되면 아주 예민해진다. 시험을 치는 기간 동안에는 속이 안 좋다, 배가 아프다, 토할 것 같다 하면서 아침밥은 거의 먹지 않는다. 처음엔 그래도 억지로 조금이라도 먹였더니 결국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가 났다. 점심, 저녁은 먹긴 먹는데 평소보단 훨씬 적게, 만약 조금이라도 많다 싶으면 어김없이 배앓이를 한다. 그리고 밤엔 잠자리에 누워서는 계속 나보고 시험 못 쳐도 야단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중학교 성적은 그다지 안 중요하니깐 그냥 고등학교 대비해서 시험 연습한다 생각하라고 해도 매번 긴장한다. 이러다 정말 중요한 고등학교 내신시험이나 수능은 도대체 어떻게 견디려는지. 딸아이에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고 말은 하지만 나 역시 반백살이나 살아봐도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번에 딸애가 울음을 터트린 가장 큰 이유는 도덕 과목과 기술 수행평가 때문이다. 도덕은 딸애 생전 처음 시험 쳐보는 과목인데 선생님이 교과서 내용이 맘에 안 든다고 임의로 프린트물을 만들어서는 교과서 대신 그걸로 수업도 하고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치른다. 큰애와 같이 학교 내신 도덕을 여러 번 공부해 본 나조차도 딸애와 같이 그 프린트물을 보면서 이걸 도대체 어떤 식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좀 난감했다. 뭐든 딱 부러지고 정확한 걸 좋아하는 딸애에겐 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시험과목이 돼버렸다. 게다가 기술 수행평가는 하필 시험이 코앞에 닥친 이 시점에 준비해야 했다. 제대로 시범도 본 적이 없고 원리조차 이해 안 된 상황에서 수업시간에 영상 한번 보고는 워킹 글라이더라는 것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걸로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비행이 이루어져야 했다. 근데 딸애가 만든 것은 제대로 날려지지도 않고 바로 추락하기 일쑤였고 이도 저도 제대로 안 되니 속상해서 눈물이 터져 나온 거였다. 다행히 잠시 후 엄마의 위로가 맘에 들었는지 눈물을 멈추고 다시 방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였다.


딸애가 속상해하는 걸 보자 무언가 딸애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애가 학교에 가고 나서 워킹 글라이더의 원리가 뭔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조종하면 비행이 원활한지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젯밤 야근하고 아침에 퇴근한 남편에게 딸애가 이것 때문에 속상해하니깐 같이 좀 연습해서 우리가 도와주자고 했다. 확실히 공대 출신이라 나보단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영상을 보면서 이렇게도 날려보고 저렇게도 날려보고, 바람의 영향을 덜 받게 모든 문을 꽁꽁 닫고 둘이서 종일 집안을 뛰어다니다 보니 덥기도 덥고 힘이 부치기도 했다. 근데 이놈의 글라이더가 생각만큼 잘 날진 못했다. 딸애가 집에 돌아올 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성과는 시원찮아 걱정이 많이 됐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애는 처음엔 우리가 글라이더 날리는 걸 보더니 어젯밤에 혼자 연습한 것보다 못하다고 투덜대었다. 하지만 곧 엄마, 아빠로부터 나름 익힌 요령을 전수받고는 몇 번 연습 후 제법 잘 날리게 되었다. 그 정도면 ‘A’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점수는 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맘이 많이 편해졌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선생님이 글라이더 날리는 걸 직접 시범 보여 주시던?”

“아니, 근데 다른 반 친구 말이 친구가 날리는 걸 보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빼앗아 선생님이 직접 날렸는데 제대로 안 날더라고 하던데”

“그러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니깐. 엄마, 아빠가 오늘 종일 이거 날리는 연습 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딸애 앞에서 생색을 좀 냈다. 딸애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수긍해준다. 그거면 족했다. 나이 50 넘은 부부가 집안에서 하루 종일 널빤지 들고 글라이더 날린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래,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게 애들 키우면서 얻는 색다른 경험이나 추억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큰애와 시험공부 같이 하는 걸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애들 과제나 공부는 지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뭐하러 엄마, 아빠가 도와주느냐, 뭐든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둬라, 그러다 나중에 스스로 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힘들어한다고.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리 애들은 다 스스로 잘해나가고 있다. 큰애는 바라던 대학에 가서 혼자 자취하며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집밥 해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리고 큰애와 나사이엔 중, 고등학생 시절의 같이 공유할 우픈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경제적 능력이 많이 없는 부모지만 돈만 많은 부모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 들이다. 이젠 딸애와의 차례이다. 큰애와 있었던 무수한 시행착오들을 딸애와는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제법 잘 날아가는 딸애의 글라이더를 보며 맘속으로 얘기한다.

‘그래, 저 글라이더처럼 쭉쭉 앞만 보고 날아가. 뒤는 보지 말고. 엄마, 아빠가 뒤에서 열심히 힘이 돼 줄 테니깐...’



문제의 워킹 글라이더 (반에서 5명만 받는 A를 결국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