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왔던 그의 야망일지도...

by 코니

남편은 낯가림이 무척 심한 사람이다. 말수가 적고 말주변도 없을 뿐 아니라 사교적인 성향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나랑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인연이란 참 신기할 뿐이다. 어찌 보면 나 자신이 더 불가사의하다. 중매로 만나 연애 같지도 않은 연애를 하고 제대로 된 프러포즈조차 받지 못했는데 뭐가 좋다고 그와 결혼했는지. 사실 당시 몇 가지 혹한 게 있긴 했다. S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줬는데 아들만 4명인 집에 그의 순번이 2번도 아닌 3번이란 사실이 적잖이 구미에 당겼다. 엄마와의 합법적인 이별을 위해 독신을 포기하고 선택한 결혼인데 자칫 새로운 족쇄를 차야 하는 그런 상황은 결단코 피하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순번과 상관없이 근처에 사는 자식이 결국 1번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지만.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자면 남편의 큰 키와 눈에 띄는 외모가 점수의 반을... 그래, 그건 좀 너무 많고 한 30%는 차지했다. 그렇다고 내 인물이 빠지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편이 외모를 더 따지는 편이기에 논리적으로 추론해보면 나도 꽤 괜찮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의 한 시원찮은 대학 출신에 이름 없는 자그마한 프로모션의 디자이너, 모아둔 돈도 그리 없었고 게다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나름 까칠한 성격등을 고려해보면 그 역시 나랑 결혼할 이유가 딱히 있었던 건 아니기에.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어느 순간이 가끔 떠오른다. 워낙 예전의 일이라 이젠 기억이 다소 왜곡되어 뽀샤시 한 배경까지 깔고 있다. 초 여름 주말 오전, 약속 장소인 교대 지하철역에 내린 후 날 기다리고 있을 그를 찾아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애마였던 하얀 프라이드 앞에 서서 정말 눈부시게 싱그러운 미소를 띤 채 약간 수줍은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던 그를. 그날 어딜 같이 갔었는지 뭘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젊은 그의 멋진 미소만 내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기에 남편이 이 글을 읽으면 아마 콧구멍 평수가 다소 커지면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듯하다. 그게 감정 표현이 서툰 남편식의 기분 좋다는 뜻이다.




어느 날 남편이 동대표에 출마하겠다 내게 얘기했을 때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아는 남편은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이라면 손사래를 칠 게 분명한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하지만 이유불문하고 싫었다. 나 역시 잘 알지도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 극히 꺼리는 성격이다. 아무리 내가 아닌 남편의 일이라 할지라도 동대표란 얘기를 듣자마자 남들 입에 오르내리기 쉬운 자리 일거란 생각부터 들었다. 무엇보다 후보로 출마하려면 본인의 증명사진을 포함한 모든 인적 사항과 학력까지 기재된 공고문을 한동안 승강기 벽에 떡하니 붙여 놓아야 한다. 그리 내세울 것도 없는데 그런 걸 사람들에게 왜 공개해야 하는지. 남편을 애써 말렸으나 요지부동으로 오히려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냥 동대표 회의에 참석해서 가만 앉아만 있음 오만 원이나 나와"

역시 동기부여의 요인이 따로 있긴 했다. 내심 불만스러웠지만 워낙 취미 생활이 없는 사람이라 그냥 새로운 취미 활동이려니 생각하고 그의 동대표직을 묵인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동대표직을 내켜하지 않은 이유는 사실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 지 어느덧 만 17년이 다 되어 간다. 입주 초기 남편은 갑자기 야간 부서로 발령이 났다. 부서의 특성상 한번 출근하면 다음 출근일까지 며칠의 여유가 있어 출근일이 걸리지 않는 날이면 낮에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에 자주 나갔다. 그렇다고 아이와 적극적으로 놀아주고 그런 건 아니었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저질 체력인지라 몇 번 아이랑 뛰다 보면 금세 지쳐 그저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만 보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파트 아낙들 레이다에 아주 선명하게 걸린 모양이었다. 30대의 키 크고 잘 생긴 젊은 아빠가 훤한 대낮에 어린아이와 자주 놀이터에 앉아 있으니 말 많던 그 아낙들의 호기심이 오죽했을까. 글쎄, 그걸 노리고 그렇게 자주 나가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남편이 백수처럼 비치는 게 사실 좀 부끄러웠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매번 그 시간에 놀이터에 앉아 있는지부터 시작해 연예인 누굴 닮았네 등등 그런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기 시작하자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사교성이 있거나 먼저 다가가는 타입은 아니기에 아파트에서 딱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느 날 딸아이와 놀이터에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분명 아이가 같으니 내가 그 의문의 사나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란 걸 짐작했을 테고 모두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총대를 메고 다가온 것이다. 안 그래도 사람들이 백수로 오해할까 봐 신경 쓰이던 참이라 오히려 약간 반가웠다.

'백수가 결코 아니다. 야간 부서로 발령이 나서 그렇다. 야간 근무라 매일 출근하진 않기에 저렇게 가끔 낮에 애들 데리고 놀이터에 앉아 있다'

무슨 죄짓고 변명하는 것처럼 남의 집 속사정에 유달리 관심 많던 그 여편네에게 기다렸다는 듯 답을 해주고 나니 내 속이 좀 후련해졌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날개를 달아 아파트 놀이터 3군데에 모두 쫙 펴져 더 이상은 아무도 남편의 신상에 대해 궁금해하진 않았다. 나중에 그 집 딸과 우리 딸이 두 번이나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었는데 쭉 지켜본 결과 그 여편네가 우리 남편에게 유독 관심이 많다는 걸 나의 이 예리한 본능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놀이터의 그 아낙네들뿐만 아니었다. 어딜 가든 항상 누나뻘 되는 아줌마들이 남편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고 친절히 대한다. 캠핑을 가면 가끔 옆 데크에 있는 아줌마들이 나 보고는 별 말 안 하면서 남편보고는 이거 좀 먹어봐라 저거 좀 먹어봐라부터 시작하여 필요한 것도 내가 아닌 꼭 남편 보고 빌려달라고 한다.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가족 캠핑을 와 있는데도 밤에 자기 부부 텐트에 놀려와 같이 술 한잔 하자고 꼬리 치는 이상한 아줌마도 다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아줌마들에겐 나름 인기가 있는 편이라 여자분들이 많은 동대표는 괜히 신경 쓰였다. 특히 남편에게 유달리 관심 많던 그 나대기 좋아하던 여편네도 혹시 다른 동대표를 하지 않을까 조금 아주 조금 촉이 곤두섰다.



그렇게 남편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던 우리 동 대표에 단독 출마하여 대표직이란 타이틀을 손에 쥐었고 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열성적으로 임했다. 내가 뭐 그리 열성적으로까지 임했느냐고 남편이 따진다면 난 자신 있게 그가 그러했노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무슨 안건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동대표들 중 그나마 제일 젊은 탓에 그들을 대신해 자료를 뽑고 서류를 만드는 일을 몇 날 며칠 동안 하고 있었다. 가만 보면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진해서 하는 듯했다. 눈에 심히 거슬렸다. 남편이 그렇게 열성을 보여할 곳은 정작 따로 있었기에.




교대 수시전형에 모두 떨어진 큰애는 수능 성적 또한 시원찮게 받아 왔다. 아마 요즘 많은 부모님들이 느끼고 있는 퍽퍽한 고구마 몇 개를 물도 없이 허겁지겁 씹어 먹은 듯한 심정이었다. 그 역대급 최저 성적표를 카톡으로 아이에게서 받은 후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자식을 위해 포기는 배추 세는 곳에만 써야 했다. 아들의 꿈인 초등학교 선생님을 기필코 이루게 하겠단 의지 하나로 소매끝동으로 눈물 콧물을 훔치곤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전국 교대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찾아 샅샅이 훑고 또 훑어보았다. 그리고 반쯤 포기하고 있는 아이를 설득해 한 교대에 지원케 하고는 책 한 권을 사서 함께 면접 준비를 해 나갔다. 여기까지 남편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고 그 역시 거들 생각은 1도 없었다.



누굴 닮아서 인지 평소 책 읽기를 돌같이 하는 아이는 딱 그와 걸맞은 상식과 지식만을 갖고 있었다. 내 새끼지만 그 무식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그런 아이에게 전문가도 아닌 내가 면접 준비를 시킨다는 건 여간 힘이 부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가 지원한 학교는 다른 곳에 비해 면접 비중이 꽤 높은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예상 질문지를 뽑아 그에 맞는 답변을 연습시키고 타이머를 켜서 정해진 시간 내에 답하는 훈련까지 동영상을 찍어 보여줘 가며 아이와 그렇게 면접 준비를 해 나갔다. 하지만 사실 면접 당일 어떤 질문지를 아이가 뽑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초등 교육과 관련된 것 외에 뭔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일들도 최대한 간략히 추려 내어 그에 대한 답만이라도 준비시켜야 될 것 같았다. 혼자서만은 버거워 남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료를 추려 좀 뽑아달라고. 그게 아이 입시와 관련된 유일한 내 부탁이기도 했다.



바로 그 자료가 문제였다. 동대표 회의에 사용할 자료들은 그렇게 긴긴 시간을 투자해서 잘도 정리하더니만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 면접용 자료는 대충이었다. 아이 수준에 맞게 핵심만 정리해서 뽑아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그냥 그대로 줄줄 출력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다시 그걸 읽고 요점만 따로 정리해야만 했다. 아이 입시에 관해 무성의하게 나한테만 모든 걸 미루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결국 폭발했다. 남편도 유독 자기한테만 날을 세운 채 까칠하게 대하는 내 모습에 질려 서로 큰소리가 오갔다. 그 후 아이가 면접을 보러 가든 말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남편과 몇 달 동안을 냉전의 상태로 지냈다. 심지어 아이 졸업식도 따로 갔다. 면접 전날, 아이와 단 둘이 고속버스를 4시간이나 타고 가 낯선 도시의 어느 모텔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참 씁쓸했다. 다음날 엄마 아빠의 힘찬 응원 속에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저 걱정 가득한 엄마 얼굴만 바라본 채 애써 자신 있는 표정으로 그곳을 향하는 아이를 보자 미안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의 모든 서운함은 아직 내 마음에 단단히 응어리져 있다. 다행히 아이는 그리 까다롭지 않은 질문지를 뽑아 주어진 시간 내에 야무지게 대답을 잘했고 지금 그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요즘따라 내 글을 꼼꼼히 읽는 남편은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다소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분명 좋은 분위기로 시작한 것 같은데 결국 끝에 가선 또 자기에 대한 원망이냐고 볼 멘 소리를 할지 모른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글을 쓰다 보니 마음속 깊숙이 맺혀있던 응어리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난들 어쩌나. 이렇게라도 내가 내 속을 좀 풀어줘야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나 역시 글이 옆길로 새는 바람에 어느 부분을 삭제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그때의 서운함을 남편에게 꼭 얘기하고 싶었기에 좀 중구난방이긴 하나 이대로 발행하는 걸로.




연임이 불가한 아파트 규정상 지금 남편은 동대표 대신 감사로 활동 중이다. 요즘은 남편이 아파트 관련일을 하는 게 오히려 좀 고마울 때가 있다. 이사 올 당시는 주변에서 모두 부러워하는 새 아파트였지만 17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많은 것들이 남편이나 나처럼 낡고 고장 나기 시작했다. 관리 사무소에 민원 신청을 하면 친절히 다 손봐주시긴 하나 남편 때문에 조금 더 편리를 봐주시는 부분이 있다.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여전히 이해는 안 되고 있지만 남편이 나름 재미를 느끼고 역할에 임하는 것 같아 이젠 더 이상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혹시 차차기 아파트 대표란 큰 그림까지 짜둔 상황이라면 이쯤에서 접기를 바란다. 언젠가 남편의 의중을 슬쩍 떠보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식의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20년 넘게 같이 사는 동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남편의 숨겨진 야망에 새삼 놀랬다. 판이 더 켜지기 전에 빨리 여길 떠야 될 듯하다.

'남편, 나 여기 너무 오래 살았어. 이젠 더 좋은 동네로 이사 갈 거야. 여기서는 이번 임기로 그냥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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