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만의 여행이 가능해진 건 결혼 후 자그마치 20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도 없을뿐더러 아이를 떼놓고서까지 남편과 단 둘이 여행 갈 만큼 그리 금슬 좋은 부부는 사실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지만. 지난 시간 내겐 남편이나 나 자신보다 항상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이후 큰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부부 여행이란 걸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내년 가을부턴 당분간 잠정 휴지기에 들어가야 한다.
어느새 대학 3학년 된 큰 애의 초등 임용 시험이 내년 11월에, 우리 집 희망 딸아이의 수능이 그다음 해 11월에 있다. 집에 혼자 있을 딸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몇 년 후에야 다시 가능해질 가을 여행이기에 이번엔 좀 멀리 길게 갔다 올 셈이다. 다행히 야무지고 알아서 공부 잘하는 딸 아이니깐 가능한 일이지 아들인 큰 애가 고등학생일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미안한 마음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아이 생각 않고 본인 욕심만 챙긴다 모르는 사람은 욕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 누구보다 떳떳한 엄마라고 자부하기에. 아울려 나를 위한 충전을 가득해놔야 다시 일상 속에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다. 언제부턴가 숨소리가 그리 고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내가 건강해야 우리 가정의 모든 일상이 제자리에서 굴러가는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남편은 이전처럼 나보고 어딜 갈 건지 코스를 잡아 보라 한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심사가 많이 꼬여 있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머리를 싸매고 몇 날 며칠을 일정 잡는데 시간을 소요하는 반면 남편은 기껏 내가 정한 코스 따라 숙박 업체 예약하는 일만 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미 여러 가지 것들로 남편을 구박할 이유가 내겐 넘쳐 난다. 잔뜩 뿔이 난 채 뭐 하나 걸리기만 해 봐란 식으로 남편을 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모든 게 심지어 여행마저도 다 귀찮다. 그러나 그렇기에 내겐 더더욱 여행이 필요하다. 일상을 떠나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그 가벼운 흥분과 설레임이 지금의 이 무력함과 우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치료 방법임을 알기에.
어차피 최종 목적지는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다. 부산에서 그 멀리까지 한 번에 갈 수는 없으니 중간에 이곳저곳을 경유해서 가을을 즐겨 볼 생각이다. 지도를 들여다 보고 검색을 하다 보니 아이들과의 추억이 있는 곳들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든다. 귀찮아하던 남편을 억지로 끌고 두 아이를 데리고 온갖 짐을 차에 실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땐 지금의 우리 차도 생생했었다. 어디 차뿐이었을까. 남편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키 크고 잘 생긴 남편이었는데... 시간이 참 많은 걸 변하게 만들었지만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기억이 되어 내 마음 한켠에 잘 저장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선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무리 고속도로라 해도 시속 85km 이상의 운전은 절대, 절대 안 되며 반드시 한 시간에 한 번은 휴게소에 들러 차를 쉬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음 언제 또 차에서 연기가 날 지 모른다. 무리하지 않게 차를 살살 달래 가며 인제까지 다녀 올 예정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젠 출발만 남았다. 노쇠한 차의 예기치 않을 탈진을 대비해 냉수 한 통을 필수품으로 하여 4박 5일의 대장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노인장, 제발... 제발 이번 여행까지만 견뎌주시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남편과 나 사이엔 어색함이 흐른다. 평소 별 대화가 없는 부부답게 둘 다 말이 없어 차 안엔 적막함만 가득하다. 특히 운전대만 잡으면 가슴이 콩당콩당 뛰는 만년 초보 운전자인 나는 고속도로에선 더더욱 입을 다물고 운전에만 집중한다. 간간이 이어지는 남편의 잔소리가 유일한 우리의 대화이다. 오랜 부부의 좋은 점은 대화가 없어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쓸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남편과의 여행에서 매번 반복되는 신기한 일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행 초반엔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 밀치기만 할 뿐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던 그 거리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좁혀져 온다.
처음의 어색함은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조금씩 사라지고 어느새 서로 다른 극의 자석이 되어 찰떡같이 붙어 다닌다. 내가 먼저 팔짱을 끼면 자기 팔로 내 팔을 지그시 눌러 주는 게 애정 표현의 전부인 남편이 수시로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일상에선 잊고 지냈지만 남편은 손이 참 따뜻한 사람이란 걸 문득 깨닫는다. 말수가 유독 적은 사람이라 평소엔 잘하지 않는 회사 얘기도 곧 잘하고 내가 하는 얘기 역시 잘 들어준다. 일상에선 말하기 힘든 것도 분위기를 봐가며 얘길 꺼내 놓으면 남편은 그리 흘러 듣지는 않는다. 그렇게 어떤 장애물도 없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에 놓여진다.
아무 생각 없이 아픈 왼팔을 주무르고 있는 나를 운전 중인 남편이 곁눈으로 쳐다본다. 파스가 만병통치약인 남편이 테니스 엘보로 고생 중인 나에게 왜 파스를 안 붙이냐며 집에 가면 한 박스 사주겠단다. 근본적인 치료가 되어야지 그깟 파스로 간단히 나을 병인 줄 아냐며 남편에게 무안을 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안타까움과 근심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날 걱정해주는 그 맘에 살짝 짜릿해지는 기분이다.
단양에 도착하자 남편에게 이번 가을엔 보발재에 꼭 가보고 싶었다 했다. 하지만 우리 차의 상태로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아 포기한다며 아쉬운 듯 얘기했다. 그러자 천천히 조심해서 가면 안 되겠냐고 일단 가보자 한다. 사진으로 봤을 때 예사롭지 않던 그 고갯길을 19년이나 된 부실한 차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러나 남편이 갈 수 있을 거라 하니 나 역시 그럴 거라 믿는다. 물론 고개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 늙은 차는 숨넘어간다고 헐떡거리긴 했지만. 냉수를 부어주며 기력을 회복하길 충분히 기다린 후 조심해서 도착한 보발재는 사진에서 봤던 멋진 모습 그대로였다. 단풍이 다 졌으면 어쩌려나 조마조마했지만 고맙게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단풍도 단풍이지만 가보고 싶다는 내 얘기를 흘러 듣지 않고 같이 가 준 남편의 고마운 마음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아 있다.
이른 아침에 찾은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도 사실 남편이 좋아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쉽게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니 계절이 맞을 때 지나는 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만약 나무 하나 보러 그곳까지 가냐고 타박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볼 수 있겠냐, 조금만 품을 팔면 되는데 날 위해 그 정도도 못해주냐 이렇게 따지려 했지만 남편은 군소리 없이 나를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며칠 새 은행잎이 다 떨어져 정작 바라던 풍경을 볼 순 없었다. 남편은 그저 잎이 떨어지지 않았음 정말 멋졌겠단 소리만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바닥을 포근하게 덮은 노란 융탄자도 근사하다. 코 끝 찡한 쌀쌀한 공기와 무척 잘 어울리는 늦가을 아침 풍경이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남편에게 답변을 한다.
"다시 여길 올 명분이 생겼잖아"
자작나무 숲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가 또 한 번 경기를 일으켰다. 그래도 도착한 게 어딘데. 늙은 몸을 이끌고 20년 동안 자길 혹사시킨 주인장 내외를 태우고 이 먼 곳까지 와준 게 너무 고맙고 기특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얘기한 지 근 10년 만이다. 쭉쭉 뻗은 하얀 나무 숲에 들어서자 온 세상이 그리고 한동안 칙칙했던 내 마음 역시 환해지는 듯하다. 올 한 해 답답하게 날 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저 쭉 뻗은 나무를 타고 하늘 높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아이들 생각이 난다. 이리 아름다운 풍경을 나만 보려니 괜히 미안하다. 물론 큰애는 우리보단 여자 친구랑 가길 더 바랄 것이고 딸아이는 걷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차로 입구까지 갈 수 있음 몰라도 왕복 3시간 가까이 걸어 자작나무를 볼 만큼의 열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언젠가 너희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며 아이들에게 전달할 우리 부부 주연의 영상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어느새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여행 전 우울과 무기력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모습이 다행히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다. 100%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전의 나로 되돌아와 다시 부지런을 떨고 있다. 감을 깎아 베란다 곶감을 만들고 여행 때 가져온 볏짚으로 청국장도 담고 우엉을 말려 볶아 차로 만들고 며칠 전엔 가장 큰 숙제인 김장까지 마쳤다. 다시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오고 이끼가 잔뜩 낀 어항도 빠득빠득 씻었다. 스물여섯 해를 같이 보낸 나의 오랜 친구, 크리스마스트리도 창고에서 꺼내어 딸아이와 함께 꽃단장을 해 주었다. 이 모든 게 지극히 평범했던 예전 나의 일상이었다. 너무나 똑같고 반복적인 일들이라 나 자신도 기계처럼 움직였고 가족들 역시 당연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젠 그 기계가 좀 오래되어 상태도 시원찮다. 마치 우리의 늙은 차처럼. 한 번씩 탈진도 하고 헐떡이기도 하고 뜨거운 김과 물을 내뿜어 자신의 상태를 알아달라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차야 오래되면 새 차로 바꾸면 되지만 아직 난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아이들을 위해 좀 더 굴러가야 되고 무엇보다 남편과 남은 삶을 즐겨야 한다.
남편은 여행 때 내게 건넨 온기를 아직 고스란히 잘 유지하고 있다. 늙은 마누라의 푸념 같은 일상을 적은 브런치 글을 읽고는 더 잘해주겠단 말을 뜬금없이 던지고 먼저 다가와 대화를 건네기도 한다. 부르면 즉각 달려와 나의 아픈 왼팔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림엔 별 관심도 없는 사람인데 나를 위해 며칠 전 처음으로 같이 그림 전시회도 갔다 왔다. 물론 입장료가 공짜였으니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평소엔 귀찮고 얄미운 마음이 가득이지만 그래도 오래된 부부의 마음 저 깊은 곳엔 서로에 대한 진한 정이 깔려 있다. 평소 일상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 숨은 정이 낯선 세계에선 그 어느 순간보다 선명히 잘 보인다.
지금의 이 평화로운 일상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또 공허해지고 갱년기 우울에 허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미 난 알고 있다. 다시 0.1%의 낯선 순간으로 들어가 나를 위한 에너지를 충전받아 올 것이다. 당연히 나의 눈치 없는 짝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