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장애물을 만나다
0.1%의 낯선 순간으로(2)
지금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줄 낡고 오래된 승용차의 건강 상태이다. 정확하게 만 19년이란 세월을 동거 동락한 차답게 성치 못한 곳이 곳곳에 눈에 띈다. 허나 그런대로 아직 쓸만하니 아픈 곳을 짐짓 외면한 채 계속 끌고 다니고 있다.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우리 부부지만 차에 대해선 비교적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솔직히 남편과 나에게 있어서 차는 그저 하나의 운송 도구요 커다란 기계 덩어리일 뿐이다. 딱히 운전을 좋아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은근 과시할 것도 못된다.
차의 입장에선 이런 생각을 가진 주인을 만난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닐 테다. 곳곳에 긁힌 자국에다 심지어 안주인이 낸 접촉 사고로 투명 박스 테이프를 다친 부위에 일회용 밴드처럼 붙이고 다닌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아무리 말할 수 없는 미물이라지만 그 섭한 마음이 클 터이다. 게다가 이젠 늙고 지쳐 더 이상은 여력이 안되는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 거제도 낚시 여행을 다녀온 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할 때였다. 차 앞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한다. 또... 이젠 익숙한 듯 별 말없이 남편은 보닛을 열어 냉각수를 확인한다. 뜨거운 물과 김이 냉각수 뚜껑 틈새를 비집고 새어 나오고 있다.
이런 증상이 보이기 시작한 건 약 두 달 전이었다. 거금도에서 하루 차박을 한 후 다음날 여수 봉황산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여러 편리 시설과 주차 등을 고려하여 남편이 예약한 최적의 데크 사이트는 휴양림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엔 길이 괜찮더니 가다 보니 생각보다 경사가 심한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마침 운전이 미숙한 내가 운전 중이었고 힘이 달려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늙은 차를 다소 거칠게 몰아붙였나 보다.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액셀레이터를 조금 세게 밟았을 뿐인데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세게 밟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연식이 오래된 차의 몸상태를 고려하면 다소 무리였던 것 같다. 전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자길 혹사시키는 주인장 내외를 태워 고흥까지 오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자신의 몸상태를 알아주지 않는 무심한 주인장에게 따질 수도 없고 결국 서러워 울며 불며 난리가 났다.
길바닥을 흥건히 적신 물이며 불이 난 듯 심하게 올라오는 연기에 심지어 냉각수 뚜껑을 열다 남편은 작은 화상까지 입었다. 안 그래도 운전 중에는 남편 잔소리 때문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데 차까지 그대로 멈춰 설까 봐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었다. 오래된 차를 조심스레 다루지 않고 함부로 운전했다는 잔소리를 들은 이후 결국 운전대를 남편에게 양보하고 풀이 죽은 채 차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얼마의 휴식 후 열이 좀 가라앉은 차는 시원한 물까지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켠 다음에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다행히 그다음 날 집까지 별 탈없이 오긴 했지만 남편의 조심스러운 운전에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비슷한 일이 한번 더 일어났다.
힘들게 데크까지 도착했지만 그래도 멋진 뷰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이번 가을 여행을 미리 계획하고 있었기에 뭔가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어차피 그전부터 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얘기를 남편에게서 종종 들었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인 것 같았다. 요즘 들어선 이상하리 만큼 새 차에 대해 별 말이 없는 남편에게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러나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의 생각에 오히려 둘 사이 냉기만 흐르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잘 굴러가는데 멀쩡한 차를 왜 그냥 버리냐, 살살 달래 가며 운전하면 된다, 차를 안 바꾼다는 게 아니라 차가 완전히 퍼지면 그때 바꾸면 된다' 이런 답답한 소리를 해가며 내 속을 확 뒤집어 놓았다.
차가 멀쩡해? 멀쩡하긴 뭐가 멀쩡해. 어차피 차는 항시 주차장 신세다. 버스 정류소와 지하철 그것도 환승역이 그야말로 코 앞인 곳에 살기에 출퇴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그 외에도 주로 튼튼한 두 다리나 자전거 아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짠돌이 남편이 주차장에서 차를 끌어내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적어도 도보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거나 아님 자전거로 싣기 버거울 만큼의 짐이 있을 경우 만이다. 딱히 여행을 가지 않으면 차에 시동을 걸 일조차 없다. 오히려 한 번씩 아직 목숨이 붙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시동을 걸어주려 주차장을 찾기도 한다. 그러니 차의 상태를 정확히 짐작하기도 어려운데 그 수명이 완전히 다하면 그때 새 차를 사시겠다? 아니, 요즘 새 차를 구입하려면 최소 몇 개월에서 1년 남짓 기다려야 된다는데 그러면 그동안은? 차가 무슨 날짜를 받아놓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게다가 당장 가을 여행은? 이번엔 내가 그동안 꼭 가고 싶었던 인제의 자작나무 숲까지 가 볼 예정인데 부산에서 인제까지 그 긴 거리를 저 차로 달릴 수 있다고? 그리고 강원도에 오르막 길이 좀 많이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가 값비싼 큰 SUV로 바꿀 것도 아니다. 남편이 내게 은근 밀어붙이고 있는 차는 차박용 소형 차이다. 지금 차도 20년을 탔으니 아마 다음 차도 그 정도 타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인즉 우리 부부의 마지막 차가 될 수 있다는 건데 사실 좀 좋은 차로 바꾸고 싶은 맘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차박용 소형차가 우리 부부에겐 나름 최적의 차란 그의 논리에 나 역시 반박할 수가 없다.
첫째, 운전미숙인 내가 운전하기엔 큰 차는 다소 무리일 거라 한다. 맞긴 맞는 소리다. 둘째, 캠핑을 자주 다니는 우리에겐 차박이 가능한 차가 필요하단다. 그것도 역시 옳은 소리다. 그리고 셋째... 입 밖으로 차마 뱉지는 않는 그의 시꺼먼 속내를 나는 훤히 읽을 수 있다. 기름값이며 고속도로 통행료, 주차비 무엇보다 저렴한 차량 가격이 그 차를 강력 추천하는 남편의 이유일 게다. 한 번은 남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왜 자꾸 나에게 그 차를 권하지? 통행료 때문에?"
"아니 우리가 뭐 그리 고속도로를 자주 다닌다고..."
"그럼 기름값 때문에?"
"차를 잘 타지도 않는데 기름값은 무슨..."
"그럼 왜 자꾸 그러는데?"
"나는 아무 상관없다. 그럼 그냥 큰 차로 사자. 그런데 그걸 몰 수 있겠어?"
남편을 사부로 두고 배운 운전은 사람 주눅 들기 딱 좋은 학습 방법이었다. 물론 내가 운동 신경이 좀 둔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별거도 아닌 것에 호들갑스럽게 고함지르거나 내가 알아서 다 보고 있는데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나 사람 기를 팍팍 죽여 놓는다. 그렇다고 운전할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결코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주차가 특히 서툰 내가 그 노하우를 물으면 그런 건 원래 방법이 없고 그냥 감으로 하는 거란다. 나보고 그 감을 익히란다. 먹고 죽을 감도 없는데 감은 무슨 감. 가만 보면 남편은 내가 자기 없이 차를 끌고 돌아다닐까 봐 처음부터 차단하려 했던 것 같다. 내 안위를 생각해서가 결코 아니다. 기름값 써가며 내가 놀러 다니는 것도 가족 내에서 운전사로서의 자기 위치가 흔들리는 것도 싫어서 그러는 줄 다 알고 있다. 한 번은 조수석에 앉은 큰 애에게 내겐 한 번도 일러준 적이 없는 운전 요령을 얘기해 주었다. 왜 내겐 그런 얘길 안 해주냐 따졌더니 어차피 나는 자기랑 같이 다닐 거기에 굳이 얘기해 줄 필요가 없단다. 본인이 없음 아무것도 못하게끔 하려는 게 그의 숨은 속내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운전대만 잡으면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지금도 남편은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질 못할 망정 큰 차는 운전 못할 거라 계속 날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거제도를 다녀와서도 저렇게 몸살이 났다고 대놓고 징징거리는데 당장 2주 후에 있을 4박 5일의 장거리 여행이 가능할지 걱정이 되었다.
"저 상태로 강원도까지 갈 수 있겠어? 만약 가다가 중간에 퍼지면 평생 잔소리 감일 줄 알아"
"잔소리 감은 무슨..."
말은 그렇게 해도 남편 역시 불안한 것 같았다. 결국 노쇠한 차를 끌고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 위해 서비스 센터를 찾았고 잠시 후 내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일단 냉각수 뚜껑도 교체하고 이것저것 손 보면 50만 원쯤 나온다는데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해도 차가 오래돼서 또 다른 곳을 곧 손봐야 될 거라는데 "
내가 뭐라 답할지 남편은 뻔히 알고 있다. 굳이 내게 전화할 필요도 없는데 물어보는 척하는 게 더 얄밉다. 누가 그 돈을 들여 곧 폐차할 차를 수리할 거라고. 내 신경은 온통 2주 후에 있을 장거리 여행이 가능할지 거기에만 쏠릴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얼굴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될 것 같아 두 달 전 새 차를 보러 가자 했건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하라고.
그렇게 며칠간의 냉전이 지난 후 남편이 먼저 차 얘기를 꺼냈다. 자기가 보기엔 조심해서 쉬어 쉬어 운전해 가면 여행엔 큰 지장이 없을 거라며 날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다만 지방도나 꼬불꼬불한 오르막 길은 피하고 가급적 고속도로를 이용하잔다. 그렇담 이번 가을에 꼭 가고 싶었던 단양의 보발재나 인제의 자작나무 숲은 그냥 포기해야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돈이 없어 차를 못 바꾸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남편 꼴도 보기 싫고 다 취소하고 그냥 집에 있고 싶지만 어차피 입사 25주년 차로 회사에서 받은 보너스 휴가이기에 다 써야 된다. 12월까지 쓰지 않으면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별 이쁘지도 않은 남편을 집에서 삼시세끼 해먹이며 불편하게 같이 있느니 차라리 저 낡은 차를 달래 가며 출발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