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가 된다는 건...

딸을 위해 오늘도 바둥바둥 열심히 달리는 엄마 이야기

by 코니

"드디어 끝났다!"

딸애와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를 와락 껴안는다.

"흑흑... 드디어 끝이 나다니."

딸애는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으며 장난스럽게 우는 척을 한다. 근데 나는 좀 달랐다. 갑자기 목구멍 저 아래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옴을 느낀다. 아무 말 안 하고 그저 꼭 껴안고만 있는 나에게 딸애는 이상하다는 듯 말을 건넨다..

"엄마, 진짜 우는 건 아니지? 고개 한번 들어봐."

그러나 난 눈물을 보이기 싫어 오히려 딸애를 껴안고 있는 팔에 힘만 더 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껴안은 채 서로의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어. 이 아줌마야... '






이번 방학 동안 딸애와 나의 가장 중요한 큰 목표는 선택 미적분 인강을 다 듣는 거였다. 애들을 학원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함께 공부하는 나는 요즘 부쩍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머리가 예전만큼 잘 돌아가지도 않고 집중력 또한 많이 떨어졌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건 제법 되었지만 이번 방학 동안 다시 한번 정말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영어야 단어도 제법 많이 알고 그동안 해 온 게 있으니깐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데 문제는 국어 비문학과 수학이다. 비문학의 경우 지문의 시작은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어 내려간다. 하지만 읽다 보면 조금씩 집중력이 흩트려져 이게 무슨 소리인지 문제에서 제시된 부분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추론해서 해란 말인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큰애 때부터 계속 봐왔지만 인문사회나 과학지문은 항상 어렵고 힘들다. 무슨 글을 왜 이따위로 어렵게 쓰는 건지...

"엄마, 똑바로 안 읽을 거야? 이 부분에 이렇게 나와 있잖아."

오히려 딸애와 나의 입장이 바꿔진다.

"어... 맞네, 맞아! 우리 딸내미 진짜 똑똑하다."

이렇게 딸애를 칭찬하는 걸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래서 항상 국어 비문학 문제 풀기 전에는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딸애에게 망신 안 당하려고... 수학은 좀 위태위태해도 지금까지 잘 해왔다. 큰애 때부터 같이 문제를 계속 많이 풀어왔기에 나름 기본기가 탄탄하여 조금만 인강 듣고 찾아보면 대체로 다 기억이 난다. 딸애가 모르겠다고 들고 온 문제도 가끔씩 약간의 답지 도움을 받으면 별 무리 없이 설명도 잘해주고 했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져서인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인지 올여름은 유난히 힘들었다. 큰애가 문과라서 공부하지 않은 선택 미적분을 이과 계열을 선택할 딸애 때는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공부한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딸애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물론 인강은 둘이 같이 들어도 문제집은 딸애 혼자 푸는 거지만 애가 모르겠다고 들고 온 문제는 내가 설명해줘야 하기에 나 역시 열심히 인강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총 42강이었다. 7월 중순부터 시작했기에 학교 내부공사로 개학이 늦어진 딸애와 열심히 하면 방학 동안 충분히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개학 후 학기 중엔 달리 시간 내어 인강을 듣지 않고 계속 문제집 풀면서 복습만 충실히 하면 된다. 그래서 좀 힘들더라도 방학 동안 미적분 인강을 한 번은 다 듣고 개념을 익힌 후 문제집 하나쯤은 두 번 정도 반복해 풀어보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다행히 딸애는 어렵다고 때때로 투정을 부리긴 해도 적당히 토닥거려주면 본인의 꿈을 향해 열심히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공부중 쌓인 스트레스는 중간중간 한 번씩 해소시켜줘야 하는데 우리의 해소 방식은 정말 소박하다. 딸애와 같이 번화가나 백화점에 구경 가서 세일 중인 거나 싼 것 하나씩 득템 하곤 서로 흐뭇해한다. 그런 후 적당히 비싸지 않은 외식을 하거나 코인 노래방 가서 몇 곡씩 열창을 한다. 때론 가까운 공원에 가서 예쁜 옷 입고 사진 몇 장 찍어 오면 또 다음날의 공부를 위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로 이 모든 게 힘들어졌다. 그래서 기껏해야 포장 배달해 온 양념치킨을 뜯으며 딸애가 유일하게 시청하는 프로그램의 재방을 같이 보는 게 다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깨닫고 있는 건데 나는 뭐든 빨리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순발력도 떨어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항상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된다. 어떤 상황이나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눈치가 지나칠 정도로 빨라 오히려 사는데 피곤함을 느낄 지경인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나 인지를 요하는 부분에서는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왜 그런지 확실히 내가 이해되어야만 그다음 순서로 넘어가는데 어딘가가 막히면 다음으로 절대 넘어가지 못한다. 심지어 문자로 받은 인증번호나 전화번호 등을 잠깐 동안이라도 외우지 못해 반드시 옆에 펜을 준비해둔다. 그 짧은 순간에 아무 연관도 없는 숫자들의 조합을 외우는 게 힘들다. 예전부터 전화번호 따위를 잘 못 외운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외우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해서일까. 그래서 요즘은 두뇌회전을 위해 주로 6자리인 인증번호까지는 펜의 도움을 안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큰애와 함께 공부할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항상 딸애를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 몇 번 딸애가 짜증을 낸 적도 있고 어떤 과목은 혼자 공부하는 게 낫겠다 해서 그러라고 했다. 게다가 올여름 갑자기 부쩍 심해진 노안 때문에 이젠 돋보기가 없음 글을 읽는 게 너무 불편하다. 며칠 전 딸애 체크카드와 통장 개설 때문에 은행을 찾았다가 돋보기 없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얼마나 많은 서류들의 기입란을 채웠던지 나중에 은행 문을 나설 땐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양쪽 눈에 비문증까지 생겨 눈으로 뭘 본다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이 될 줄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가 이렇게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울적해진다. 이제 겨우 50대에 합류했을 뿐인데...




인강을 들을 때 선생님의 기본 개념 설명이 끝나고 실전 문제 풀이에 들어가면 항상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문제를 보면서 딸애와 작전을 세운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런 식으로 해서 값을 구한 뒤 다시 여기에 대입하고... 그냥 선생님이 풀어주는 문제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은 결코 없다.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게 인강 수업에서 좀 더 능동적이고 효과적인 것 같아 큰애 때부터 계속 이렇게 해오고 있다. 그런 후 선생님의 풀이가 우리와 같은지 맞춰보고 혹시 다르게 접근하면 또 저런 방법도 있구나 깨닫는다. 선생님 풀이를 보면서 '오, 선생님 똑똑한데' 하며 농담도 하고. 근데 이제껏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선택 미적분은 작전이 제대로 세워지지가 않는다. 확실히 고등학교 마지막 개념들이라 지금까지의 전 과정을 다 아우르는 부분들이 많다. 게다가 처음 보는 것들이라 익숙하지 않아 개념들이 자꾸 헷갈리고 공식들도 제대로 안 외워지고. 나중엔 도저히 안되어 따로 노트를 만들어 선생님이 설명해주고 요약해주는 공식과 개념들을 필기하기 시작했다. 딸애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이 돌아가지 않는 두뇌를 위해.




나는 스스로를 우리 애들을 위해 달리는 '페이스메이커'라 생각한다. 42.195km의 긴 마라톤 코스에서 30km까지 다른 선수를 위해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시작부터 일정한 기간 동안 같이 공부하면서 우리 애들이 자기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끌어 주는 게 나의 역할이다. 그 기간 동안 애들과 함께 하면서 공부에 대한 어려움도 같이 해결하고 공감이나 조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그치면서 뭔가 필요한 게 있을 땐 바로바로 챙겨주기도 하고. 애들이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으나 제대로이지 않은 내가 무엇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건 무척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도 가끔 너무 힘들어 누군가에게 투정도 부리고 위안을 받고 싶은데 나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대도 없을뿐더러 어른이란 이유만으로 속으로만 삭혀야 한다.




하지만 큰애를 위한 나의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제법 성공적으로 이미 끝났고 딸애는 지 오빠보다 좀 더 야무지니 아마 1년 안에 혼자서도 잘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페이스메이커들에게 왜 직접 마라톤을 끝까지 뛰지 않고 다른 선수들을 위한 그런 역할만 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무슨 대답을 할지 나는 알 것만 같다.






방학 내 긴장을 하며 듣던 수학인강이 드디어 끝났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새로운 수학 개념은 배울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낯선 개념에 대한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다. 물론 이제 부지런히 문제를 풀고 익혀 모든 걸 본인 것으로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역할이 남아 있지만 이미 한번 본 것들은 이젠 그다지 무섭지 않다. 방학 전 선택 미적분이란 놈이 얼마나 어려울까 겁먹은 것에 비하면 지금은 어느 정도 놈의 정체를 알고 있어 기꺼이 상대해줄 수 있다. 게다가 방학 동안 열심히 노력한 탓에 이젠 머리도 제법 굴러간다.




인강을 끝낸 후 점심준비를 하고 있는데 딸애가 부른다.

"엄마, 이리 한번 봐봐"

그러고는 찰칵, 빨개진 내 두 눈을 찍어버린 딸...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한다는 소리가

"울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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