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고 누가 찾아올 만큼의 서열은 아니라서 집에서 명절 손님 접대는 결혼 후 딱히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차례 음식을 미리 집에서 준비한 뒤 시댁에 들고 가기만 했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명절이라고 처음으로 누군가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0일 정도 머무를 계획으로...
혼자 부산하다. 여분의 이불이 없을 텐데... 남편 이불을 빼앗아 빨아 손님 쓰게 하고 남편은 당분간 좀 두꺼운 이불 덮어라 하지 뭐... 그러고 보니 베개도 마땅찮네. 어쩔 수 없다. 베개 대신 쿠션이라도 사용해라 해야겠구나. 근데 밥은 또 뭘 해서 대접하지? 뭘 차려주면 좋아할까? 손님이 좋아하던 간장게장도 담그고 감자탕도 끓일 준비를 해놓고 생선, 장조림에 과일들까지 나는 추석장이 아니라 손님맞이용 장보기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날 바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큰애이다. 타지에서 대학 때문에 자취 중인 큰애가 명절이라고 집에 오는 것이다. 지난여름 방학이 시작될 때에도 잠시 집에 다녀갔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집에 오는 건데. 기분이 좀 묘했다. TV에서만 보던 명절 때 고향을 찾아온 자식을 버선발로 반기는 나이 많은 부모들 생각이 났다. 명절이라고 누가 날 보러 오다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내 새끼니깐 보면 반갑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환영할 정도는 아니다. 귀찮은 면이 더 많다. 이제 20살이 넘었지만 집에선 여전히 손하나 까딱 않고 내가 무언가 챙겨줘야 하므로 당분간 손님이 집에 머무르는 동안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처음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합격할 때만 해도 곧 내 품을 떠나 타지로 애를 보낼 생각에 기분이 좀 울적했었다. 나의 애창곡인 코나의 '마녀 여행을 떠나다'를 부르면 가사 내용처럼 이제 곧 본인만의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아이 생각에 중간에 목이 메곤 했었다. 그러나 이런 신파극은 생각도 못했던 코로나 때문에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했다.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기숙사도 운영 안 하는데 굳이 돈 들여가며 자취를 시킬 필요가 없어 그냥 데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자유를 실컷 만끽해라고 별 간섭도 안 하고 뭐든 본인 하고 싶은데로 그냥 놔두었다. 밤을 꼬박 새든 점심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든 방이 쓰레기장이 되든...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고 6개월, 1년이 다되어가자 그런 큰애를 지켜보는 것은 점점 스트레스가 되었다. 올해는 비대면이고 대면이고 상관없이 그냥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내보냈다. 큰애는 큰애대로 이제 드디어 독립이라 좋아했고 나는 나대로 큰애로부터 해방이라 좋아했다.
큰애는 외모적으로는 나를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오히려 정반대다. 심각한 거 싫어하고 의지나 목표의식도 약한 편이고 꼼꼼하지도 야무지지도 않으며 부지런한 거랑은 담을 쌓고 산다. 다행히 예민한 나랑은 다르게 매사 낙천적이고 뭐든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대인 관계도 원만하고 단체생활도 잘하며 졸업 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서도 별 무리 없이 잘해 나갈 걸로 보인다. 문제는 나랑은, 이 집 안주인 하고는 생활패턴이 너무 달라 같이 생활하는 데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큰애는 이제껏 살면서 별 큰 어려움은 겪은 적이 없다. 그게 나중에 본인 인생에서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지만... 중, 고등학교도 추첨운이 좋아 본인이 원하던 곳으로 다녔고 대학도 희망했던 곳에 한 번에 합격되었다.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선생님들에게 이쁨 받고 누가 봐도 부모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아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하지만 큰애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부모라는 길을 걷게 해 준 나의 첫 번째 아이다 보니 많은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그 시간들을 함께 했다. 친구들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며 운동까지 좋아하는 애가 혹 공부에 소홀히 하고 다른 길로 샐까 옆에서 항상 노심초사했다. 둘째가 생긴 후 전업주부가 되어 줄곧 옆에서 쭉 지켜봐 왔지만 부모로서 외적이든 내적이든 아이의 성장 작은 것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기쁨과 고마움을 느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난 예민하고 걱정만 많은 어리석은 엄마였다.
고등학교까지 너무 큰애에게 신경을 많이 써서 인지 아님 작년 1년 동안 집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어서인지 나도 큰애도 서로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요즘 큰애가 없는 이 시간과 공간들에 난 너무 만족해하고 즐기며 있으며 큰애 역시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환경에 행복해한다. 서로의 부재에 만족하며 살다 보니 전화통화도 1주일에 한번 서로 생사확인을 위해 할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나쁜 건 결코 아니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나랑 같이 공부하며 수능과 대입을 준비했기에 우리 사이엔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아주 진하고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전화로 미처 못했던 서로의 소소한 일상들은 이렇게 집에 올 때 내 무릎베개 위에서 누워서 아님 같이 동네 산책하면서 한꺼번에 다한다. 그저 서로 붙어 있을 만큼 붙어 있었기에 이젠 좀 떨어지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젠 부모로부터 떨어질 나이도 되었고...
명절이라 집에 왔지만 큰애랑 같이 밥 먹을 시간은 겨우 점심때 밖에 없다. 여전히 12시가 훌쩍 넘어야 깨워서 겨우 일어나니 아침밥은 스킵하고 눈 뜨자마자 바로 점심을 먹인다. 게다가 요즘 친구들이 하나둘씩 군대 가기 시작하여 저녁에는 친구들 만나기 바쁘다. 그래서 큰애 먹이려고 장 봐놓은 것도 아이 스케줄 봐가며 해먹여야 한다. 그러나 정말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 나도 그 나이 땐 가족들보단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좋아했기에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 써서 식사 준비를 안 해도 되기에 약속 있어서 저녁때 나간다 하면 오히려 더 반갑다.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큰애에게서 손을 뗄 줄은 몰랐다. 주위 사람들도 무척 의아해한다. 큰애가 중, 고등학교 때 하던 걸 봐서는 내가 영원히 아이를 내 손아귀에 넣고 안 놓을 줄 알았다고 한다. 그땐 애가 철도 없고 워낙 노는 걸 좋아하며 의지 또한 약한 놈이라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음 대학도 못 갈 상황이라 그랬던 거지. 애들 인생에 아주 큰일이 아니면 간섭하고 싶은 맘은 없다. 나 역시 그렇게 자랐고.(아니, 나는 그냥 방치되었던 거지만) 그리고 지나고 보면 중학교 땐 몰라도 고등학교 당시도 그리 내 말을 잘 따르는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 내가 뭐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결국 안 듣고 무시될 말을 굳이 하여 괜히 아이와 사이만 나빠질까 봐 가급적 말을 아끼고 신경을 끈다. 그래서 차라리 자주 안 보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그저 1주일에 한번 생사 확인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볼 때마다 속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도 참고 같이 사느니 그냥 좋았던 기억만 가슴에 품은 채 서로 가끔 그리워하며 지내는 게 훨씬 우아하고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어야 된다고 난 생각한다. 이렇게 떨어져 지내고 한 번씩 찾아오면 며칠 우리 집에 쉬러 온 손님이라 생각하고 성심성의껏 대하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이제껏 공부만 하라고 미리 다 알아서 해줘서인지 큰애는 가족들에겐 많이 무심한 편이다. 그래도 예전에 날 위해 신경 써준 몇 번 안 되는 일들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고3 때. 당시 내 생일에 굳이 필요 없다는데 그 핑계로 놀고 싶어서인지 시내에 나가 제법 값나가는 팔찌를 사서 불쑥 내밀었다. 당시 용돈도 얼마 안 줬는데. 속으론 이놈의 자식이 수능 며칠 남았다고 이렇게 싸돌아다니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내 스타일도 아닌 팔찌를 보며 이쁘고 고맙다 했다. 수능이 끝나고는 그 중요한 대입 면접 준비도 미뤄둔 채 공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그렇게 사람 속을 태우더니 월급에서 25만 원을 툭 떼서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주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보다 더 열심히 다닌 공장에서 힘들게 번 돈이라 그냥 받을 수가 없어 그대로 돌려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러더니 올해 쓰던 이불과 베개까지 싸들고 타지로 이사 가면서 남편과 나를 위한 편지와 만 원짜리 상품권 10장을 동생에게 맡기고 갔다.
그래도 너무나 소중한 나의 첫 새끼는 따뜻하고 자상한 면도 많다. 그동안 못 먹었을 엄마표 집밥으로 차려진 점심밥을 눈뜨자마자 먹지만 맛있게 남김없이 잘 먹는다. 큰애가 밥 먹을 때 내게 하는 인사말은 참 듣기 좋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내가 차려준 밥을 제일 많이 먹은 남편은 절대 그런 소릴 안 하는데 큰애는 매번 밥 먹을 때마다 꼭 그렇게 다정하게 내게 인사를 한다. 얼마 전 내 생일 때 전화로만 그냥 넘어갔기에 이번에 집에 온 김에 발마사지로 대신해라 했다. 그랬더니 그 정도 해주는 건 당연하다면서 누워라 한다. 20분을 요구하는 내게 15분으로 흥정을 성공하고는 타이머를 맞춰 놓고 제법 시원하게 주물러 준다. 생일 때 남편이 대충 주물러 주던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다 큰 아들의 힘이 들어간 손맛에 흐뭇해진다.
이번에 편안히 있다 갈 수 있게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는데 나의 가장 가까운 손님 맘엔 흡족한지 모르겠다. 점심 식사 후 까칠하고 푸석한 손님 얼굴을 위해 마사지와 팩 서비스까지 특별히 제공했더니 꽤 만족해하던 눈치던데. 부디 편안히 잘 쉬다 가고 가서도 전화는 1주일을 꼭 넘기지 말고 잘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나의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