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쓸데없는 것만 기억하는데? 정작 중요한 건 기억도 못 하면서... 엄마는 항상 그래. 말을 살살 비꼬아하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하고... 그냥 직접적으로 말해!"
밥 잘 먹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 이래? 내가 왜 이런 소릴 애한테서 들어야 하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마음이 상한다. 아니 상하는 정도가 아니다. 눈물까지 찔끔 나올려한다. 더군다나 몇 시간 후면 이 아이는 학교가 있는 곳을 향해 다시 집을 떠날 거다. 내가 지금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21살짜리 아들이 나를 무시하는 눈빛으로 이렇게 큰소리로 뭐라 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걸맞은 행동일까?
다른 도시에서 학교 때문에 자취 중인 아들이 추석이라 집에 왔다. 아직 비대면으로 강의가 진행 중이라 추석 연휴가 끝났다고 급하게 돌아갈 필요가 없어 10일 정도 집에 머물다 가기로 했다. 물론 그 10일도 군에 입대하는 친구들 날짜에 맞춘 거지만. 그래도 태어나 난생처음 명절이라 집에 왔기에 나름 최선을 다해 대접해줬다. 원체 게으르고 가족 생각 안 하는 놈이지만 좀 있다 다시 떠날 아이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그냥 다 참고 손님처럼 대해줬다. 앞선 글 '다 큰 자식은 그냥 가까운 손님이에요'를 읽어보면 내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이놈이 내가 그냥 참아주고 다 받아주니깐 점점 내 머리 위로 기어 올라 결국 내 한계점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다시 학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전날, 민어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는 냉장고에 있는 민어 3마리 중 본인의 바쁜 스케줄로 인해 1마리밖에 못 먹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본인이 좋아해서 맛있게 해 준 닭봉 조림보다 왜 남은 민어를 구워주지 않았냐는 식으로 내게 얘기했다. 그러더니 내일 점심으로 그걸 먹고 떠나겠단다. 원래는 아침에 조금 서둘러 아이와 남편과 함께 바다로 드라이브를 가서 점심 외식도 한 후 고속버스 터미널로 데려다 둘 계획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굳이 집밥을 먹고 가겠다니 일정을 바꿔야만 했다. 좋아하는 탕국에 민어를 구워 따신 밥을 먹인 후 터미널 근처 수원지에서 산책을 하다 버스 타는 걸로 정했다. 다음날 점심 원하던 밥상을 차렸고 아이는 맛있게 먹었다. 원래 말이 없지만 유독 밥 먹을 땐 더더욱 말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그의 몫까지 다른 이의 말 상대를 해야 하니 여럿이 함께 하는 식사는 항상 나만 피곤하다. 식사 중 화제는 어느새 '운전'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화기애해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족과의 식사가 적막하다는 인식을 아들에겐 심어주지 말자고 각고의 노력을 하던 나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운전과 관련된 예전 얘기를 하나 꺼냈다. 그게 화근이었다.
큰애가 3,4살이던 때 누군가 공짜로 준 티켓으로 자동차 야외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큰애는 뒷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었는데 신호 대기 중이던 앞차를 갑자기 남편이 그대로 박아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바꾼 지 한 달도 안 된 하얀 새 차로 빠알간 프라이드를... 보험처리를 했지만 차는 당분간 수리에 들어가 쓸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우리 차로 산소 성묘를 같이 가길 원했던 시댁 어른들에게 사고가 나서 우리 차는 쓸 수 없다고 말씀드렸고 결국 시댁 차로 가게 되었다. 아버님 차를 타기 위해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가 나를 살짝 부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니가 박았나?"
자기 아들은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는 투로 나를 빤히 보면서 물었다. 참나... 본인 아들이 멀쩡하게 신호대기 중인 앞차를 무언가에 씐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냅다 박아버렸다고 최대한 아주 상세히 얘기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본인이 원했던 대답을 얻지 못한 그녀는 갑자기 말을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밥 먹던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때 본 영화 제목이 뭐냐고. 내가 보고 싶어서 티켓팅 한 것도 아닌데 20년 전 본 그 영화를 어떻게 기억할 수가 있을까? 한국영화였는지 외화였는지도 모르겠는데. 난 당연스럽게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놈이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나를 책망하기 시작했다. 영화 제목 같은 중요한 건 하나도 기억 못 하면서 왜 자꾸 쓸데없는 것만 기억해서 굳이 기분 상하게 그런 얘기를 꺼내냐고. 그러자 밥 먹을 땐 단지 음식을 위한 출입구로만 사용되던 남편의 입이 갑자기 터졌다.
"맞지? 맞지? 너희 엄마는 항상 그런다. 그런데 나는 너처럼 그런 소리하면 큰일 난다."
50대가 된 후 내 눈치를 부쩍 살피던 남편이 이때다 싶어 아들에게 찰싹 붙는다.
"그래, 맞지? 나니깐 엄마에게 이런 소리도 하는 거야."
두 부자가 죽이 잘도 맞았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도 똑같은 두 인간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계속 내달렸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 아무 소리 않고 가만있자 내가 자기들 말에 수긍하는 줄 알고 더 신나서 날 몰아붙였다. 아이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다. 내가 좀 비아냥거리고 꼬아서 말하는 구석이 있다. 또한 내 얘기의 칼끝은 남편과 시어머니를 향했던 거였다. 둔한 놈이 그건 또 잘 캐치했다. 게다가 다른 누구보다 자식이 날 나무라면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한번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만약 아들이 1절만 했더라면 그전날도 그리고 며칠 전에도 나에게 이런 식으로 고약하게 말했지만 그냥 넘어갔듯 또다시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물론 기분은 상하지만. 그러나 이젠 더 이상은 자식에게 이런 저자세를 취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밥상이 치워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본인 방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보고 있는 아들놈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추석이라고 집에 왔지만 가족을 위해 신경 1도 안 쓰고 정말 숙소처럼만 사용하고 돌아가는 저 놈이 20년 전 본 영화 제목을 기억 못 했다는 이유로 내속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줄이야. 결국 속에서 빨간 경보등이 커지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지 못한 분노가 발걸음을 아들 방으로 옮기게 했다.
"내가 20년 전 본 영화 제목을 기억 못 한다 해서 너한테 이런 소리 들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 안 한다!"
화가 잔뜩 나 차가운 목소리로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했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좀 된 그 녀석은 아까 날 몰아붙일 때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사라지고 멋쩍은 미소를 띠었지만 이미 내 맘은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버릇없이 엄마에게 대드는 걸 야단치지는 못할 망정 기회는 이때다 싶어 옆에서 아들 맞장구를 친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산책이고 뭐고 그대로 방에 문 닫고 들어가 혼자 있고 싶었지만 몇 달은 지나야 다시 집에 올 아이가 맘이 불편할까 봐 결국 원치 않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가족 내에서 항상 분위기와 대화를 주도하던 내가 눈을 감고 가만있으니 차 안은 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 두 남자는 조금 지나면 내가 그냥 화를 풀 줄 알았나 보다. 아니, 아들 녀석은 내 맘 상하는 따위는 신경도 안쓸 놈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자기는 그냥 그대로 떠나면 되니깐. 오직 남겨질 남편만 좌불안석인 것 같았다. 수원지에 도착해서 빠르게 둘을 앞서 걸었고 그 뒤를 두 사람이 조용히 따라왔다. 그러다 한두 마디씩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는 참 가관이었다.
"여기 물이 있네"
"수원지이니깐 물이 있지. 너 전에 여기 와 봤잖아?"
"그때가 고2 때인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
나참 기가 막혀서. 20년 전 본 영화 제목 모른다고 중요한 걸 기억 못 하니 마니 내게 고래고래 소리 지른 놈이 불과 3년 전에 왔던 수원지의 그 많은 저수지 물을 왜 기억 못 하냐고.
'이 멍청한 놈아, 네가 3년 전 일을 기억 못 하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20년 전 일을 기억 못 하는 건 무슨 큰 잘못이냐?'
뒤돌아서서 이렇게 고함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대화 없이 성큼성큼 걷다 보니 산책은 어느새 30분 만에 끝나버렸고 버스시간까진 아직 2시간이나 남았다.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근처 화원으로 가자고 제안했고 별 다른 방법이 없어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이렇게 애를 보내면 아이도 남편도 그리고 나도 모두 불편하고 몇 달 뒤 다시 볼 때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두 남자 모두 식사 중 일어난 그 소동에 대해 한마디도 없이 그저 얼른 내가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길 바라는 것 같아 얄밉기 그지없었다. 결국 엄마인 내가 자식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 아들에게 팔짱을 끼고 엄마가 화분 하나 사 줄 테니 골라봐라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제야 안도하는 남편과 별일 없었다는 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전날 아이가 먹고 싶다던 밀면집을 가는 도중 한 PC방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서 한시름 놓았지만 고3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놈을 어떻게든 대학에 보내야겠는데 아이는 그런 엄마의 간섭을 몹시 싫어했다. 심지어 수능이 두 달여 남은 어느 토요일, 공부한다고 교복 입고 학교 간 녀석이 그 PC방 앞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 몰래 산 자전거 위에 앉아 있는 걸 우연히 들킨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여기 지날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난다."
어차피 대학에 합격했으니 그냥 지난 우픈 추억거리로 아이에게 얘기했을 뿐인데 쓸데없는 걸 기억한다고 갑자기 인상을 쓰며 큰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그냥 넘어갔지만 나를 향한 아이의 그 표정과 말투는 기분 나빴다.
이제 알겠다. 남편은 내가 자기 때문에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면 본인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아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왜 그런 걸 기억하고 있냐고 난리고. 가해자는 기억 안 난다고 빨리 잊어라 하는데 상대방은 가슴에 응어리가 져 있다. 자기들 입장에서 볼 땐 그 일들이 여러 이유로 인해 잊히고 싶을 수도 있고 나도 잊어졌음 하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시어머니에게 자기가 몹시 서운했던 일을 얘기했다가 오히려 역정을 들었다고.
"나는 기억 없다. 야는 와 그리 쓸데없는 걸 기억하고 있노?"
설사 기억이 진짜 안 났더라도 며느리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닐까?
"내가 그랬나? 왜 그랬을까... 미안하다. 니 맘 많이 상했겠네."
그거면 아마 그 며느리도 두 번 다시 예전 일을 기억 안 할 거고 아마 쿨하게 사과하던 멋진 시어머니의 모습만 남지 않았을까 싶다. 내 인생의 좀비 같은 모든 나쁜 기억들이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장치처럼 보는 순간 싹 사라지는 무언가가 있길 나도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를 바래다주고 오는 차 안에서 씩씩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애가 그냥 한소리를 갖고... 내가 보기엔 별생각 없이 한소리 같구먼."
아까 신나게 맞장구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애가 한말에 별 의미 두지 말라는 투다. 부모도 자식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잘 헤어져야 한다는데 어째 보면 나와 아이는 이젠 헤어지는 과정만 남은 것 같다. 어떻게 헤어져야 과연 잘 헤어지는 걸까. 자식에게 별 욕심 없이 가까운 손님과 같은 사이를 유지하는 게 좋을 듯했지만 어리고 예의 없는 손님일 경우 너무 일방적인 관계임을 깨달았다. 20년 넘게 부모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참 어렵다. 아마 아이는 나에게 한 말과 행동 모두 깡그리 잊어버리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또다시 나에게만 기억되는 쓸데없는 것이 하나 더 생겨 서글픈 이 엄마맘은 생각조차 안한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