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야 해

by 코니

그런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싶던 순간들이 드디어 내게 왔다. 이럴 땐 자연의 순리라는 게 참 고맙다. 그저 묵묵히 견디다 보면 시간이란 건 어떻게든 흘러가게 돼있으니. 그땐 과연 어떤 기분일지 오랜 시간 내내 궁금해했다. 숙제를 모두 끝낸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도 실컷 자고 약속도 많이 잡고 연말을 마냥 신나게 보낼 거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닥쳐보니 별 요란 없이 여느 해와 비슷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살짝 싱거운 감도 없지 않다.



지난 두 달 남짓 오롯이 고3 딸아이의 수능과 면접준비에 집중하고자 나의 시계는 멈추었다. 브런치를 비롯해 몇 되지도 않는 수업, 약속등 개인 일정은 잠시 뒤로 하고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만 쏟아부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그러길 원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음 자기 수능보다 그런 게 더 중요하냐며 괜한 심통을 부리곤 했다. 큰애는 제발 자기한테 신경 좀 꺼주길 원했던 반면 딸아이는 엄마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였다. 여태껏 잘해왔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다 된 통 당한 적이 있다.



3학년이 시작되고 벚꽃이 만개할 무렵 잠시 머리 좀 식히라고 아이를 데리고 광안리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로 이어진 아파트 단지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기에 처음엔 꽃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 찍으며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무슨 얘기 끝에 대학 입시에 관한 말이 나왔는데 아이가 하는 소릴 가만 듣고 있으니 고의적으로 내 부아를 돋으려 하는 게 분명했다. 그럴 때 순간 감정 조절을 못해 말 한마디 잘못하면 본전은커녕 몇 날 며칠 삐져있어 그 비위 맞춘다고 꽤나 고생할 게 뻔하다. 뒷감당을 못할 바에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앞서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웬걸. 자꾸 처지는 아이의 발걸음이 좀 의심스럽다 싶더니 결국 코를 훌쩍거리다 이내 휴지로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닌가.



청자켓 하나로 버티기엔 아직 바다 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오들오들 떨며 광안리 백사장에 앉아 아이의 눈물 섞인 불만과 투정을 1시간 넘게 들어야 했다. 아이의 훌쩍임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우리를 쳐다봤고 난 추위와 부끄러움, 당혹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의 요구 사항은 단순했다. 한마디로 지금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소리였다. 그러니 자기한테 보다 더 신경 써주고 스트레스 때문에 짜증을 내면 아무 소리하지 말고 그냥 다 받아주고 달래 주길 원했다. 수능까지 그것 하나 못 해주냐며 눈물 콧물을 흘려댔다.



최선을 다해 네가 원하는 대로 노력하겠다 단단히 약속을 받은 후에야 아이는 눈물을 거두었다. 그 후 보다 신경 써서 아이를 케어했지만 조금이라도 자기 비위에 거슬릴 때면 어김없이 내 마음에 스크래치 내는 소리를 해댔다. 그렇다고 그런 말에 호락호락당할 나도 아니었다. 벌써 두 번째로 겪는 일이라 내 멘털에도 제법 두꺼운 굳은살이 생겨 큰애 때보단 견딜만했다. 심지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러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싶을 때면 미안하지만 그땐 화살이 애꿎은 남편에게 향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 내 인생에 수험생 학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더 이상 없다.



딸아이는 이번 수시 전형에서 3곳의 의과 대학에 최초 합격을 했다. 그중 서울의 한 곳을 최종적으로 정해 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정작 꼭 가고 싶었던 곳에서는 예비 번호를 받았다. 무난히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모두의 아쉬움은 여간 큰 게 아니었다. 맨 처음 받은 예비 번호 16번이 4차 추가 합격까지 11명이 빠져 5번이 되었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국내 빅 5 병원 중 한 곳이었기에 한동안 상심이 너무 커 합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1순위로 바라던 곳은 아니지만 어쨌든 집을 떠나 독립하게 되어 아이는 요즘 잔뜩 신이 나있다. 처음엔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1년쯤 지나면 분명 내게 이런 소릴 해대며 자취를 하겠다 우길 것이다.

"오빠는 자취를 했는데 왜 나는 안돼?"

지금 얼마나 설레고 흥분될지 나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아이와 반대로 난 그리 신나지 못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울하다.



아이가 곧 내 곁을 떠난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선택한 이상 다시 내 곁에 돌아올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돌아오고자 했음 처음부터 이곳의 대학에 다니는 게 아이의 이력에 훨씬 유리하다.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걱정되진 않는다. 야무진 아이다. 분명 잘 지낼 것이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건 나다. 내가 아이 없이 잘 견딜 수 있을까. 텅 빈 아이방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설 수 있을까. 나란히 눕던 이불속에 혼자 누워 아이의 온기 그 숨결을 느끼지 않고도 잠이 들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이 너무 두렵다.




모두들 쉽게 믿지 않지만 아이는 이제껏 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그렇다고 사교육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처음엔 EBSi 인강을 들었고 나중엔 사설 학원 인강을 패스로 신청해 들었다. 생각보다 교재비가 만만치 않지만 솔직히 인강의 모든 비용은 크게 부담스러운 정도까지는 아니다. 생활 기록부와 수시 원서도 사교육의 도움 없이 오직 아이와 나 단 둘이 머리를 싸매고 썼고 때때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MMI라 불리는 의대 면접도 집에서는 나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함께 준비했다.



왜 그렇게까지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큰애 때부터 그랬다. 처음엔 내가 모든 걸 커버할 수 있었다. 수학 같은 건 오히려 학원보다 내가 더 잘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돈을 쓰기보단 그냥 통장에 숫자로 찍어 놓고 감상하는 게 삶의 낙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학원비 달란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외려 남편은 내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겠다 할까 봐 다른 집 애들은 학원 안 다니고도 서울대에 잘만 가더란 소리를 입에 붙이고 다녔다. 큰애가 교대에 입학하고 난 뒤 많이 달라져 지금은 감히 내게 그딴 소릴 꺼내지도 못하지만 같이 살기 참 답답한 아저씨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발을 빼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꾸역꾸역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동안 아이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첫아이라 모든 게 서툴고 엄하기만 했던 탓에 맘고생 많았을 큰 아이, 학원 다니는 친구들과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매번 불안했을 딸아이... 돌아보면 난 아주 이기적이고 고약한 엄마였다. 더 이상 아이들 인생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 옆에 끼고 살고 싶은 욕심에 아이 발목 잡는 일은 해선 더더욱 안된다. 웃으며 딸아이를 보내줘야 한다.




정을 떼려는 게 분명하다. 요즘 딸아이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어젠 기숙사를 4개월이 아닌 6개월 신청을 해 놓고는 방학 때 안 내려와도 된다며 좋아했다. 늦여름쯤 이사가 계획되어 있는데 자기 방은 따로 마련할 필요도 없단다. 방학 때 못 오니깐 기숙사 가기 전에 아예 자기 짐은 모두 싹 정리해 두고 가겠단다. 게다가 아직 졸업도 안 한 놈이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아놀라게 하고 있다.

"엄마, 다른 친구들은 벌써 술 마시고 다녀. 인스타에 사진 찍어 다 올려. 그리고 오빠도 그랬는데 나는 왜 안돼?"

그뿐이 아니다. 아직 내가 고3 수험생 학부모인 줄 착각하고 있다. 집안일은커녕 자기가 자고 난 이불하나 정리 안 하고 날 계속 부려먹을 생각만 한다.



"왜 내가 20살이 다 된 딸내미 이불까지 개어줘야 하는 거야"

짜증 난 목소리로 아이에게 투덜대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얄밉게 대답한다.

"같이 자니깐. 그냥 두 달만 참아"

뭐야, 수능까지만 참고 기다리라더니 이젠 기숙사 들어갈 때까지 또 자기 수발을 들라고?

"야, 너 한 번만 더 그딴 소릴 하기만 해 봐"



햇볕 따뜻한 어느 오후 딸아이와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다 넌지시 속내를 물어본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만약 엄마 아빠가 집 팔고 서울로 이사 가면 어때?"

이 나이에 여태껏 살아온 터전을 모두 버리고 딸아이 하나보고 서울로 갈 맘은 전혀 없지만 무슨 소릴 하나 궁금해진다. 분명 왜 따라오려고 하냐 난리 칠 게 뻔하다.

"나야 물론 좋지"

어...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여태껏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순간 몽글몽글 해진다. 아이에게 더 찰싹 붙어 팔짱을 낀다. 코 끝 찡한 찬 바람도 왠지 시원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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