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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ul 09. 2021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괜히 자신감이사라지는 어느날...

“어서 와요”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그녀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아니, 이루어졌다기보단 이 만남이 꼭 내겐 숙제 같은 거였다.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날을 잡았다. 그녀는 오전 11시에 약속이 있어 이른 시간에 만나기를 원했고 나 역시 오후에 할 일이 있어 그냥 우리 집에서 간단히 차 한잔 하기로 했다.      




그녀는 우리 딸애의 친구 엄마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그녀도 같은 라인으로 입주를 했기에 가끔씩 승강기에서 부딪히곤 했다. 그땐 우리 딸과 그 집 딸이 초등학교 취학 전이라 어쩌면 더 쉽게 친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 탓에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우리 딸이 늦둥이였고 그녀는 약간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은 듯 해  나랑은 나이 차이도 꽤 있어 보여 가까이 지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억 못 하겠지만 그 당시 딱 한번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승강기에서 유치원 가방을 멘 딸애와 나를 보곤 이렇게 말했다.

" 올해는 유치원에 갔네요."

당시 대부분 5살부터 애들을 유치원에 보냈지만 남편과 나는 경쟁이 치열한 병설 유치원 5세 반에 추첨으로 떨어진 후 사립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딸애를 한해 더 집에 데리고 있다가 6살 때 다시 추첨으로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사람들 눈엔 그게 너무 이상해 보였나 보다. 하긴, 또래보다 딸애가 키가 켜서 저리 큰애를 유치원도 안 보내고 집에 데리고 있냐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싶다. 그녀의 말은 이제서라도 애를 유치원에 보내 다행이라는 것처럼 내 귀에 들렸고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었다. 그 후 그녀네 가족은 다른 동의 큰 평수로 이사를 갔고 그녀의 남편이 의사라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다 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몇 반 안 되는 작은 규모의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6년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인지 같은 피아노 학원차를 타고 하교를 해서 그런지 학원을 관둔 이후로도 계속 하교를 같이 하였고 중학교마저 같은 학교에 배정받아 근 9년을 같이 통학하게 되었다.




딸애 친구는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엄마 닮아 얼굴도 이쁘다. 게다가 굉장히 적극적이고 앞에 나서기도 좋아하며 어딜 가나 존재감이 있는 아이다. 그에 비해 우리 딸은 키만 클 뿐 왜소하고 있는 둥 없는 둥 앞에 나서는 일엔 질색을 한다. 이렇듯 상반된 성격을 가진 애들이 어느새 절친이 되고 공부도 둘 다 잘해 좋은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가끔씩 개인 차량을 이용해서 이동할 일이 학교에서 생기면 친구 엄마인 그녀가 자신의 차로 우리 애도 같이 이동시켜 주곤 했다. 또 한 번은 1년 전 어느 주말에 갑자기 허리를 삐끗해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리 남편을 정형외과 의사인 그녀 남편의 조언으로 119까지 부르는 소동 없이 무사히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발가락만 본인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면 신경엔 이상이 없는 거라 주말 굳이 비싼 비용 들여 가며 응급실에 가지 말고 진통제 먹고 월요일 아침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다. 두 번 정도 그녀를 개인적으로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였지만.그때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8살이나 어리며 심지어 내가 생일이 빠른 그녀의 같은 고등학교 7년 선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하고는 라이프 스타일이 정말 달랐다. 당연히 만년 과장인 우리 남편 월급이랑 의사인 그녀의 남편 월급이랑은 비교가 안되니 다를 수밖에. 그녀의 차는 BMW이며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진 1년에 한 번씩은 꼭 가족끼리 남동생이 있다는 미국에  방학기간 동안 다녀왔다. 다른 사람 말에 의하면 요즘은 골프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단다. 중학교 입학직전에는 두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친정부모에게 다 떼어 놓고 그녀와 딸애 친구는 단둘이 싱가포르 여행도 다녀왔다. 우리는 있는 짐 없는 짐 바리바리 싸서 캠핑을 가지만 그녀의 가족은 가볍게 글램핑을 간다. 누군가를 특별히 부러워하지 않는 딸애지만 그건  너무 부러운 지 이젠 엄마 아빠랑 가는 캠핑은 벌레도 많고 더워서 싫다고 아예 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캠핑 간다면 은근히 부러워하며 꼭 나에게 보고를 한다.

“그래서, 뭘? 우리도 캠핑 갈까?”

“아니, 우리 같은 그런 캠핑 말고”

지긋지긋하다는 딸애 말투에 나도 더 이상 대꾸 안 한다. 만약 그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라면 오히려 쉽게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내가 나이만 많고 가진 것은 많이 없으니 그녀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말을 낮추라는 그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댓말을 쓰게 된다.   

 





오늘은 이 모든 어색함을 풀어버리고자 굳게 마음먹고 오롯이 단둘이 마주했다. 그러나 벨소리에 반갑게 그녀를 맞이하는 순간... 약간 어두운 현관 입구에서 조차도 빛이 나는 그녀의 피부에 순간 주눅이 들고 말았다. 피부가 어쩜 그리 좋냐고 혹 화장하고 왔냐는 내 말에 아니라고 말한다. BB크림과 립밤인지 루즈인지 잘 모르겠지만 입술에도 뭔가 바르고 왔지만 화장을 안 했다니 그럼 안한 게 맞겠지. 그러나 43살이란 그다지 적지 않은 나이에 저렇게 연예인 같은 피부를 가진 일반인은 첨 보는 걸 같았다. 그녀는 피부과에서 정기적으로 토닝을 받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열심히 키운 멋진 몬스테라나 화병에 꽂인 예쁜 꽃, 그녀의 딸이 우리 집에 오면 언제나 열심히 들여다보던 어항 속 구피, 심지어 잘 보이게 놓아둔 내가 취미로 그린 수채화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곧장 차가 준비된 식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커피만 겨우 반잔 마실 뿐 내가 나름 준비한 과일은 손 하나 대지 않았다. 한두 번 권하는 나에게 그녀는 괜찮다고만 하며 얘기 중간중간 휴대폰으로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주된 대화는 애들이 중3이라 고등학교 진학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둘 다 학원을 보내지 않기에 각자의 공부시키는 방식 등 이런 거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화기애애한 웃음이 오가는 그런 대화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녀의 시간을 확인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그 간격조차 짧아지자 나도 뭔지 모를 불안감에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가야 하지 않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린 듯이 대답한다.

"네, 공치러 가야 되거든요."

그러곤 올 때 들고 온 쇼핑백을 내게 내민다. 안에는 백화점 라벨이 붙어 있는 캐슈 너츠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그이후 나도 모르게 캐슈 너츠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녀를 배웅하고 혼자 식탁에 앉아 그대로 남은 과일을 나 혼자 다 먹었다. 기분이 좀 묘했다. 그녀가 내게 딱히 뭐라 한 것도 없는데 오늘 만남으로 이제껏 내가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나이만 많고 잘 살지도 못하고 피부도 안 좋고... 거울이 아니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 자신감이 사라진다. 자격지심인가... 아마 그렇겠지...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 오전에 친구 엄마가 우리 집에 왔었다는 얘기를 했다. 딸애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어쩐 일로 하며 내게 묻자 나는 재빨리 대답한다.

"응, 별로 안 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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