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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Aug 18. 2024

센트럴 공원, 건강한 삶의 쉼터

주마간산 여행기 (1)

센트랄 공원, 건강한 삶의 쉼터


내 발자국 소리 들으면 ‘앨빈과 슈퍼밴드’ 영화 주인공들처럼 생긴 회색다람쥐들이 쪼르르 달려 나온다. 뒷발 곧추세우고 발딱 일어서서 앞발 공손히 모은다. 땅콩 가져온 거 있으면 주십사 하는 표정이다. 모른 척하고 지나치면 슬금슬금 따라오다가 다른 인기척이 있으면 홱 하고 방향을 돌린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의리 없다 미물을 탓하랴. 돌아서서 손가락질하지는 않으니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센트랄 공원에 들어서면 나는 명상가가 된다. 한가롭게 느릿느릿 걸으면서 도를 닦는다. 심심산골 인적 없는 암자에서 도를 닦아야만 도인이 아니다. 북적대는 휴일만 피하면 한적한 도심공원 숲 속에 들어 나는 이내 도인이 된다. 도(道)는 ‘길’이다. 잘못 가는 길이 아닌 마땅히 가야 할 길, 사람으로써 지켜야 할 이치이다. 또는 깊이 깨달은 지경이다. 복잡 다사한 세상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외롭지만 올곧은 길을 걷는 자가 도인이다. 내 인생이 또한 길이라면 남은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 지를 곰곰 생각한다.


 흙먼지-비단 황사 때문은 아니었으리라-일던 모국을 떠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몸을 옮겼건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한가지. 천당아래 999당이라는 밴쿠버도 사람으로 인해 비바람불고 눈보라 친다. 그 지경에 억울하고 답답하거나 화가 나면 숲 속에 든다. 하늘 찌르듯 곧게 뻗은 아름드리 삼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트가 내 혼탁한 마음을 정화하기 시작하면 나는 감지 않은 눈으로나마 명상하며 공원을 순례한다. 도인의 첫 발걸음을 옮긴다.

 

 패터슨 전철역 방향 공원입구에서 3-4분을 북쪽으로 걸으면 어린이 놀이터가 나온다. 세상 어린이들은 모두 같다. 금발머리, 흑발머리, 백·흑·황색피부 가릴 것 없이 모든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미끄럼틀을 타거나 그네를 타거나 혹은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뛰어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애정 어린 눈길도 한국의 여느 어린이놀이터와 같다. 

 삶은 아이들로 하여 보람 있다.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시인이 되거나 장사꾼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거나 대통령 관저의 수위가 되거나 하는 것은 운명의 몫이다. 부모는 다만 애정으로 지켜보고 보살피는 것만으로 충분히 하늘의 상을 받은 것이다. 생각해보라. 아이가 없는 집안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한가를. 이를 느낀다면 아이가 있는 집안은 분명 축복받았음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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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부모들을 지켜보듯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기념 석이 주변 화단에 있다. 비록 왕자의 사랑을 끝까지 누리지 못해 방황하다 불행한 생을 마감했지만 두 어린 아들을 사랑했고,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던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는 기념 석과 함께 영겁의 세월 동안 이 공원 어린이놀이터에 남을 것이다.

 놀이터를 지나 정문 쪽으로 간다. 밴쿠버와 버나비 시의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킹스웨이 길 선상에 있는 정문은 울타리도 없이 성 탑처럼 생긴 두 개의 돌기둥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공원에 들려면 동서남북 사방의 출입구를 통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정문(main gate)’이라는 듯 위용을 과시한다. 마치 이방의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도심에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주류(main)’라는 자존심을 애써 세우려는 코케이시언(유럽계 백인종)처럼 보인다.

 

 정문 서쪽 면에는 스완가드 스테디엄(Swangard Stadium)이라는 운동경기장이 있다. 축구 골 네트가 마주보고, 경주용 적갈색트랙이 잔디구장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고 있다. 이영표 선수가 소속된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홈 구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각종 대내외 행사장으로 사용된다. 지난 초여름 유로피안 페스티벌이 여기서 열렸다. 황색인종(원주민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드넓은 땅을 차지한 유럽인들이 이제는 또 다른 황색인종(중국, 한국 등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점차 밀려나는 추세이자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먼저 온 사람들로써의 자부심을 보이려고 해마다 각국별 문화축제를 연다. 상상외로 다양한 전통복장을 입고 춤과 노래를 선보이지만 한두 시간 보면 모두가 비슷해 보인다. 춤이래야 한국의 ‘강강수월래’처럼 서로 원을 지어 빙글빙글 돌다가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또는 가끔씩 다리를 들어올렸다가 쌍쌍이 손잡고 왈츠 같은 것을 추다가 하는 것인데 배경음악도 비슷해서 곧 실증이 난다. 부채, 장고, 꽹과리, 심지어는 수건까지 동원하여 추는 한국전통무용이 훨씬 다채롭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스완가드 스테디엄 좌측 숲 속 작은 길을 따라가면 야외수영장이 나오고 그 옆에는 ‘평화의 사도’ 동상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평화’를 맞는다. 한국전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출신 캐나다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동상은 버나비 시가 부지를 기증하였고, 제작성금은 교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동상이 여성인 것은 일반적으로 남성은 강하며 호전적이고 여성은 부드럽고 평화적이기 때문이리라. 분쟁으로 상처받은 인류들은 모성의 평화본능을 가진 여성의 품으로 들어와 평안을 얻으라는 듯이 보인다.

 

 평화의 사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전쟁동이(1950년생)였던 내가 태어나 미쳐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강보에 싸여 있을 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벽안의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1951년부터 3년 사이 전사한 그들의 이름이 동상 후면 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조국은 공산주의 치하에 넘어갔을 것이고, 6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자유가 통제된 암흑세계에 살고 있었을 터. 이 광활하고 비옥한 땅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조차 있었을까 싶다. 지금 80-90세가 되어 유명을 달리하는 참전용사들을 보며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저 가끔씩 이곳을 찾아 나를 위해 젊은 피를 이국산하에 뿌린 영령들을 추모하며 머리 숙여 감사는 길 외에는 달리 보답의 방법이 없는 듯하다.

 

 동상에서 남쪽 숲길을 제법 내려가면 작은 연못이 나온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좀 큰 연못이 있다. 청둥오리가 놀고 어른 팔뚝만한 금색 잉어가 어슬렁거리고 송사리들이 촐싹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은 두 연못이 같은데 해변가에 사는 재 갈매기와 거북은 큰 연못에만 있다. 가끔 씩 날아와 혼자 고독을 즐기다 가버리는 재두루미도 작은 연못은 찾지 않는다. 그 놈들도 소위 큰 물에만 놀고 싶은 생각인가?

 재 갈매기는 어떤 때 그들의 주 활동무대인 해변가를 벗어나 도심공원 연못을 찾는데, 특히 겨울철이면 수가 더 늘어난다. 사람들이 먹이를 던져주면 청둥오리들과 다툼을 벌이는데 그악스럽기 그지없다. 소리를 끼억끼억 지르며 옆에 다른 것들이 못 오도록 훼방을 놓는다. 찬송가 구절처럼 ‘농사하지 않고 곡식 모아 곡간 안에 쌓아두지 않아도 세상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먹여 주신다’고 가만있다가는 쪼로록 배 굶기 십상이다. 청둥오리들의 수도 자꾸 늘어나고 재 갈매기들의 수도 자꾸 늘어나니 하나님의 손길만 기대할 수 없고 사람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 한 조각이라도 기를 쓰고 덤벼야 먹을 수 있다. 생존경쟁은 정말 사람이나 미물이나 매한가지다. 

 한국에서는 자라와 거북이 구별된다지만 여기 사람들이 ‘터틀(turtle)’로 부르는 작은 거북이는 날 빛 좋은 날 연못 가장자리로 나와 엉금엉금 사람 다니는 길을 겂없이 활보하기도 하고, 그도 귀찮으면 연못가 작은 바위 위에 앉아 눈을 끔뻑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일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 녀석 죽었나 살았나 하며 긴 막대기로 등을 툭툭 건드려 보는 데 목만 움찔하며 가만히 있다가도 짓궂은 장난질이 계속된다 싶으면 슬그머니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상대하지 않고 제 길 가겠다는 것이다. 나도 거북이처럼 누가 건드려도 꿈적 않다가 정 못 참으면 그냥 피해버리면 되는 데 그러지 못한다. 제 성미에 못 이겨 누가 건드리면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운다. 자꾸 성질 돋우면 명(命)만 재촉된다는데, 그래서 거북이는 사람보다 오래 사는가 보다. 

 

 센트랄 공원 산책은 거의 아내와 함께 한다. 아내는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잘 하는 재능을 지녔다. 한 시간여 산책길을 도는 동안 아내는 영어학교 친구 이야기, 한국인 슈퍼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이야기, 70년대 우리 청년시절의 문학, 예술, 영화이야기, 서울 친구들 이야기, 아들이야기, 이웃 이야기 등등 라디오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엮어가는 이야기가 끝이 없는 데 난 고작 어? 그래? 잘됐군!, 그렇겠지. 출출한데 뭣 좀 사먹지 하는 몇 마디뿐이다. 이럴 때는 나는 거북이를 닮는다. 눈만 끔뻑끔뻑 한다. 

 

 센트랄 공원. 제2대 밴쿠버시장을 지낸 데이빗 오펜하이머 씨가 아내와 사별 후 재혼한 부인이 뉴욕태생이라서 그녀의 고향을 생각하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 공원은 밴쿠버의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숲 속 공원이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광릉 수목 원이나 설악산 국립공원 속 같다. 인간의 손이 닿은 구조물을 제외하곤 온통 숲과 잔디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시를, 수필을, 그리고 소설을 구상한다. 숲의 정령이, 연못의 정령이 내게 문학적 영감을 준다. 이곳에서 명상한 것을 재료로 시와 수필은 여러 편 썼으나 소설은 아직 구상 중이다. 장고 끝에 악수(오랜 생각 뒤에 별 볼일 없는 결과가 나옴)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이야기를 엮었다 풀었다 해 본다. 

 

 이국에서 여생을 보내지만 행복한 것은 사는 곳 지척에 센트랄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여느 관광지보다 좋다. 산책과 피톤치트로 건강을 얻고, 나뭇잎에 열린 이슬에 반사되는 햇빛을 통해 문학적 영감을 얻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오늘도 지구촌 각 곳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들이 눈빛을 통해 희망을 얻고, 먼저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삼나무로 만든 추모의자(memorial bench)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현재를 반성한다. 바라건대 이 센트랄 공원에서 건강한 삶을 마음껏 숨쉬다가 세상 무대에서 내려갈 때가 되면 고 조병화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남겨질 수 있는 삼나무 추모의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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