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산책로 (2)
뽕짝
밴쿠버에서 오랜만에 연극관람을 했다. 제목은 ‘뽕짝’. 밴쿠버 유일,-혹자는 캐나다 유일이라고 함-의 한인극단인 ‘하누리’의 제16회 정기공연이었다. 10월 5일부터 7일 까지 사흘간 다섯차례 공연이 있었는데 일 때문에 미루다 가까스로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었다. 오히려 더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 대표이자 총 감독인 이소춘 씨가 직접 피날레 무대에 나와서 ‘모두 아마추어로 이루어진 단원들의 열정적인 참여과 노력으로 공연을 할 수 있었으며, 교민사회의 많은 응원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1989년 창단 후 지금껏 한극 연극의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감사인사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 문화를 알리는 예술을 하는 작업은 얼마나 힘든가. 과부 사정 홀애비가 안다고 나도 9년간 캐나다 한국문협을 이끌어 가면서 느낀 바다. 한국인이 아닌 이웃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학제를 해마다 해 봐서 잘 안다. 자칫 우리끼리만의 잔치에 끝날 수 있는 것을 타민족들과 공유할 수 있는 한국예술로 만들어 가는 일은 참 힘든다. 무대 첫 인사가 영어와 한국어 동시에 시작되고, 스크린에 연극대사를 영어로 번역하여 비 한국인들에게 보여주는 이 공연의 시도가 그 중 하나이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몰려 온 각양 각색의 인종들이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방법은 서로의 문화와 예술을 좀 더 빨리 이해하는 것 뿐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뽕짝’은 우리 고유의 근대문화를 알리는데 한 몫 한 것 같다.
안내책자에 기재된 줄거리는 이렇다. ‘경기도 용인 근처 영생정신병원. 사회에서 들끓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잦은 사고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정신병원에 대한 감사가 실시된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이에 병원장은 환자들로 구성된 중창단을 만들어 감사를 무사히 마치고, 동시에 병원을 홍보하려고 계획한다. 중창단을 맡은 수련의 이영주. 중창단을 꾸리는 과정에서 이영주와 ‘교주’라 불리는 환자사이에 갈등은 커져만 가고--- 중창단원들의 사건, 사고 때문에 중창단은 아예 공연조차 가능할 지 의심받기에 이른다. 과연 중창단은 공연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까?’
이는 사실 영화나 연극대본의 시놉시스(Synopsys)에 해당되는 것인데, 언론매체나 관객에게 공개되지만 결말은 예외다. 알고 싶으면 와서 ‘보시라’는 의도일 것인다. 그래야 관람의 재미가 부가된다.
병원규칙을 내세워 환자는 물론, 심지어는 의사까지 자기 통제하에 두려는 ‘갑질’ 간호원이 나오는가 하면, 아직도 열중쉬어, 차려를 외치는 전직 공수부대 출신 병자, 파킨슨병이 걸린 치매환자, 주변에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질색을 하는 결벽증 환자, 항상 얼굴을 꾸미는 자기도취증 환자, 성추행으로 인해 남자의 손길을 무서워하는 환자, 횡설수설하며 쉴새없이 떠드는 정신분열증 내지 강박증 환자, 등등 다양한 군상의 정신병자들이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관객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그들의 리얼한 연기와 이유있는 대사를 보면 과연 누가 환자인지 정상인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변을 보면 우리네 삶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독특한 고집과 행동이 때로는 남에게 ‘미친년놈’들이라는 소리를 듣지나 않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교주로 나온 조규남씨는 사실 우리 문협에 지난해 등단한 시인이다. 70이 넘은 나이에 해마다 봄에 실시하는 8주간의 문학수업을 열심히 듣고 맛갈스러운 시(詩)를 창조하는 그의 열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연극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드라마의 필수요소인 갈등 구조, 즉 교주와 병원장이 의붓형제간이라던지, 합창단 지휘자인 의사와 교주가 과거 함께 만나 놀면서 ‘뽕짝’을 가르쳤다든지. 교주가 시한부 인생이라던지. 모두가 뽕짝을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체면 때문에 클래식 공연을 주문하는 병원장이라던지, 고참 간호사와 신참 의사, 또는 의사와 환자 간의 갑질 논란, 이런것들이 적절히 조합되어 누구의 입에도 맞는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었다. 특히 내가 좋아한 부분은 공연 후반부로, 완전 버라이어티 쑈 무대가 되어 관객과 배우가 함께 뽕짝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뽕짝.’ 슬프고도 아련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 음악은 사분의 삼박자로 구성된 트로트(TROT)리듬으로, 나라잃은 서름과 광복의 기대 등을 담은 가사가 당시의 내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 세대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해방이 되고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전화의 참상과 생이별의 아픔을 표현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왔다. 일제강점기도, 참흑한 전쟁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옛 뽕짝을 많이 안다. 노래를 좋아하시던 어머님이 평생을 즐겨 부르셨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따라부르다 익혔다.
이상한 것은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뽕짝을 부르면 마음의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잘 표현한 노래이기 때문이지 싶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노래이기 때문에 예전에 직장에서 야유회를 가면 상사와 부하직원이 함께 목청높여 부르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1990년대로 초반으로 기억되는데 서태지가, 무엇을 안다는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난 알아요. 이밤이 지나고 지나면’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숨가쁠 정도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과는 차츰 세대차이가 벌어졌다. 요즘은 세계를 휩쓴다는 K-Pop을 들으면 흥겹기는 한데 나이가 드니 배울 수 없는 노래라는 단념으로 괜히 늙음을 서럽게 만든다. 우리네 신명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나서는 끝나버린 것 같다.
밴쿠버에 와서는 아예 잊고 살던 ‘뽕짝’이 하누리의 연극을 통해 되살아 났다. 연극무대에 선 배우들이 70대부터 20대까지 함께 열심히 뽕짝을 불렀다. 춤도 곁들였다. 관객들도 함께 분위기에 젖었다.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하는 노래 가사를 속으로 따라 부르면서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았다. 다짐이라도 하듯이.
30년 가까이 이어온 하누리 극단. 향후 30년도 여전히 한국인들의 정서와 한을 위로하며 건재해 나갔으면 좋겠다. 뽕작도 세월따라 사라질 지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도 그들에 맞는 뽕작을 만들고 불렀으면 좋겠다. 아니 우리 전통대중가요인 뽕작을 보존하고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일본에는 대학생들간에 우리의 뽕짝과 비슷한 ‘엔카(演歌)’ 보존회를 만들어 함께 부르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무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젊은이들도 본받았으면 한다. 또 모르지. 후세 사람들로 채워진 극장에서 극단 하누리가 2017년도의 연극 ‘뽕짝’을 재현할 때 배우와 관객 다 같이 한바탕 신명잔치를 벌일 지. (2017년 10월 14일 U-레이디경향 게재)
<사진 연극 ‘뽕짝’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