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보면 아름다운 백사장의 해안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올라온 경우가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정말 저런 곳이 존재할까?’라는 생각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만 여겼다. 내가 그 사진의 중심에 서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퀸’의 ‘머큐리’가 가장 사랑했던 그 섬인 ‘잔지바르’로 가게 되었다. 처음 눈으로 보면서도 이게 진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맞는지 도통 믿기지 않았던 그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정말 새하얀 모래로 가득 메워진 바닷가는 내가 평생 꿈꿔왔던 아름다움의 표본이었으며, 그 길을 걷는 나는 이리저리 표류하며 그 아름다움을 나의 몸에 조금이라도 묻히고 싶었다.
‘그 기억의 흔적으로 그 시간을 추억한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곳이겠지 싶은 마음에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바라봤던 바다와는 너무 달랐다. (나의 고향은 여수이다.)
마사이 부족 출신 직원이 나의 짐을 들고 숙소로 이동했다. 건장해 보였지만 덥고 습한 날씨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잊지 않았다. 나의 숙소는 혼자 사용하기엔 컸다. 세로보다 가로가 더 길었던 침대 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나에게 허락된 공간을 누렸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에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피곤한 몸의 허기를 채웠다. 바뀌지 않는 메뉴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음식이 훌륭했기에 매 식사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제와 같은 메뉴이었기에 익숙하게 접시와 포크를 들고 어제 먹지 못했던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충분히 먹은 뒤 궁금했던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광활한 바다와 새하얀 모래는 나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하늘과 바다, 그리고 모래는 그 시간조차 멈추게 하는 듯했다. 그대로 그 백사장을 걷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그 시간 동안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 순간을 최대한 간직하자.’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에 모래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꿈을 거닐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걷던 중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마사이족인데 잔지바르로 와서 작은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가까워진 그와 함께 그의 가게에 가게 되었다. 그의 문화를 가진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익숙한 물건들도 더러 있었다. 여러 가지 물건을 소개하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모래 위를 걸었다.
저녁 즈음이 되자 잔지바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음식은 ‘잔지바르 피자’였다.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이색적인 문화와 어우러진 음식은 충분히 나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다가 ‘머큐리’가 머물렀던 숙소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현지인들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그의 시간 속으로 머무는듯한 그 순간은 나를 멍하게 바라만 보게 만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거리를 걸으며 그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추억은 시간을 타고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난 바다 위 석양을 볼 때마다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을 불사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과학적으로도 해가 지기 직전이 가장 밝고,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리고는 금세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태양을 떠올릴 때 중천에 떠 있을 때보다 ‘일출’과 ‘일몰’을 기억한다. 하루 종일 우리를 비추고 있을 때 태양을 바라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가장 많은 이들이 찾아올 때는 생명이 탄생할 때였고, 또한 죽음을 맞이할 때였다. 그리고 성장하고, 성숙하며 찬란하게 빛날 때는 오히려 다른 이들을 비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말이다.
‘그렇게 빛을 비추며 오늘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잔지바르에 가면 능귀해변 투어를 한다. 운이 좋으면 돌고래도 볼 수 있다는 말에 설렘 가득 안고 준비를 했다. 출발지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맞나 싶었는데 이내 사람들이 모여들어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본인 사이즈에 맞는 오리발과 수경 등 개인 물품을 챙기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내 좋던 날씨가 아침부터 흐려 조금은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돌고래를 보더라도 좋은 날씨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그 장면 말이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지겠지 싶은 기대를 가지고 출발했다. 바다는 청량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멀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신나게 놀지는 못하고 사진 찍어주기 바빴다. 수많은 열대어가 지나는 것을 배 위에서 볼뿐이었다. 그런데 사실 바다거북이나 돌고래가 있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잔지바르에 머물렀던 기간 중 딱 이날 하루만 비가 왔다. 이 또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 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투어를 신청할 때 금액에 따라 차등이 있었는지 식사가 달랐다. 심지어 배에 깃발이 있었는데 그 색깔도 달랐다. 알고 보니 신청한 것에 따라 배의 깃발 색이 달랐고, 그것은 점심 식사 메뉴를 말하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동선이 같았기에 투어는 문제 되지 않았지만, 기분이 참 묘했다. 혹 여행 가실 일 있으면 조금 더 내더라도 다 즐기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식사를 한 뒤 섬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준 특별한 재능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예술적 재능이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팅가팅가라 불리는 그림체는 동글동글한 선을 기반으로 그리는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때 어린아이들을 위한 그림인가 싶었는데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깃든 그림체라는 말을 듣고 나니 이들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그림체로 그려진 그림들을 섬 주변 곳곳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잔지바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림을 구경하고, 손수 만든 가방과 모자 등을 보며 잠시 허락된 휴식 시간을 보냈다.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지금 아니면 돌고래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돌고래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확률은 50대 50이란다. 매번 같은 길을 오가지만 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망원경으로 한 곳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배의 엔진을 켜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고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점프하는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다. 아쉽게 점프하는 것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등 지느러미와 꼬리를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기뻤다. 야생의 돌고래를 봤다는 나의 간절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투어를 마치고 돌아왔다. 내가 기대했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즐겁고, 행복했다. 함께 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웃음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여행이고,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이루어져서 여행이다.’
이 외에 해변가를 거닐며 마사지도 받고,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매 순간이 편하거나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행복은 즐거움이 가득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었다. 힘들어도 행복했고, 지쳐도 행복했다.
‘나의 기억을 기꺼이 왜곡시켜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