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도 │ 사파리

by 온도계

나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특히 동물의 왕국과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채널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파리는 나의 로망 중의 로망이었다. 난, 그것을 이루기 직전에 서 있었다.


1박 2일의 여정을 계획했고, 첫날 점심 이후 아루샤에서 '가라투'로 이동하여 다른 일행과 함께 숙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함께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보냈다. 첫날 함께 숙소로 이동했던 실리콘 밸리 출신의 미국 사람과 그곳에서 만난 폴란드 사람 그리고 현지인들과의 짧은 담소는 점점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가라투'로 가는 길


하루를 머무는 캠프 입구


텐트가 제법 많았다.


자기 전,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현지인이 자기 집에 급습해 온 하이에나를 막대기로 물리쳤는데 그 하이에나를 잡아서 집에서 키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이에나를 애완동물로 키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삶을 듣고, 그 야생의 삶에 점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 하늘을 보는데 별이 쏟아질 듯 가득 차 있었고 그 가운데 이름 모를 큰 새가 날아갔다. 아마 독수리였던 것 같다. 다양한 동물의 소리가 그 밤의 그 여백을 채워갔다. 침대는 무척 불편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수십 차례를 뒤척이다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수프와 빵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로 어우러진 조식이었다. 나는 혹시 멀미할까 걱정되어 많이 먹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서 만난 미국 친구는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역시 잠자리 문제였다. 10분 동안 잠자리와 식사에 대해 불평하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이야기하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배정된 차량이 달랐기에 즐거운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굿바이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이제 시작이다. 나의 목적지는 ‘응고롱고로’였다. 약 2200m의 높은 지대에 있는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 분화구로 수십 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2200m의 분화구에 산다는 말에 놀래긴 했지만, 막상 가보니 경이로울 뿐이었다. 뷰 포인트에 서서 감탄사만 수십 차례 내뱉기를 반복하다 다시 차량으로 올라탔다. 이제 경이로운 곳으로 떠난다.


'응고롱고로' 입구


세계에서 가장 큰 '칼데라 분화구'


난 살면서 이렇게 많은 얼룩말을 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얼룩말이 차에 치일 정도다. 정말이다. 차량이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서 경적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몇 분간 쳐다보다가 가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수백 마리의 얼룩말이 함께 있는 모습은 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러다 누 떼를 봤다. 이건 얼룩말보다 훨씬 많았다. 정말 어마어마했다. 한데 모여 풀을 뜯으며 서로의 보호자이자 피난처가 되는 모습은 그저 평화로워 보였다.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들


쉬고 있는 '누우'떼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동물이 있었다. 어렸을 때 ‘라이온 킹’ 영화에서의 품바였던 혹멧돼지였다. 막상 보면 귀여웠다. 왜냐하면 워낙 다른 동물들의 크기가 컸기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앞발을 구부린 채 걸으며 흙을 헤집는 모습은 귀엽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는 자칼도 있었다. 총총걸음으로 걷는 그 모습도 맹수와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지인이 나에게 계속했던 말이 있었다.


앞발을 구부리고 땅 속을 탐색하는 '혹멧돼지'


‘실제로 가장 멋있는 건 ‘버펄로’야’


그 말을 들으면서도 사자가 가장 멋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보니 그 거대한 몸집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어마어마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오싹했다. 온몸이 새카만 그 덩치에서 오는 위엄에 나는 압도당했다. 그 위풍당당한 기세는 그 어느 동물보다 멋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버펄로'


그럼에도 나는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를 보고 싶었다. 영상에서 가장 많이 봐왔던 그 동물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사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전 하던 드라이버가 바빠졌다. 그리고는 사자가 발견됐다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모두가 흥분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자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사자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큰 바위에 있었다. 프라이드(사자의 무리를 일컫는 말)에는 수컷 사자 2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바위 위에서 자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바위 아래 그늘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암컷 사자들도 그 옆의 그늘에서 자고 있었다. 수컷은 보기 드문 검은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고 있던 모습은 ‘왕’의 모습다웠다. 물론 잠만 자는 모습을 보고 온 것이 아쉽긴 하지만 봤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벌러덩 낮잠을 자고 있었던 '수사자'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들어주었다.


종종 하이에나도 보였다. 내가 봤던 하이에나는 무리에서 잠시 나온 것 같았다. 어슬렁 거리는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코끼리와 보기 힘들다던 코뿔소까지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홍학과 하마 그리고 이름 모를 동물들과 함께 말이다.


‘조화로움은 공통점이나 차이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갈 때 모두가 어우러져 조화로워진 것이다.’


그런 조화는 점심시간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은 런치 박스로 제공되었는데 그 안에 샌드위치와 음료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마자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어디에선가 새가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샌드위치를 가져가 버렸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도 나지 않았다. ‘뭘 봐?’하는 표정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녀석은 정말 말 안 듣게 생겼다. 음료수와 견과류 그리고 과자로 주린 배를 채운 뒤 차에서 내렸다.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 시간


그리고 주변을 걷다가 터키에서 여행 온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형제의 민족’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나를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신 그분들은 터키에서 식품 사업을 하는데 한국에도 수출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같이 우리는 인사했다. 물론 어색했다. 그저 터키와 한국의 관계로 이루어진 만남이었기에 우리의 만남은 깊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가? 타국에서는 이런 작은 연결 고리만으로도 서로 반가워하고, 즐거워한다.

‘인연은 작은 연결 고리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몹시 피곤했다. 새벽부터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비포장도로를 돌아다녔으니 그럴만했다. 나는 일행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진 못했다. 차량의 목적지까지 가는 길목에 약속된 장소가 있어 차에서 가장 먼저 내려 함께 했던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여담이지만 나는 사파리 차량의 조수석에 앉았다. 덕분에 동물들을 보기 좋았지만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어려웠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선크림을 바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얼굴과 몸에 발랐지만 결국 나의 피부는 타고 말았다. 그런 모습으로 본 현지인 드라이버는 나에게 농담을 던졌다.


‘나도 태어났을 땐 너랑 같은 브라운 피부색이었어.’


태어나보니 사자였고, 코끼리였다. 버펄로였고, 가젤이었다. 아프리카, 유럽 그리고 아시아였다. 흑인, 백인 그리고 황인이었다. 누가 누굴 탓할 것 하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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