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길은 험했다. 아스팔트 길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처럼 곳곳에 있진 않았다. 큰길에서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비포장도로였다. 그나마 많이 지나는 길은 단단해져 도로 아닌 도로가 되었고, 그렇지 않은 땅에서는 지나는 곳이 곧 길이기도 했다. 돌들로 가득한 그 길은 사람이 다니면 인도였고, 차량이 다니면 도로가 되었다. 모든 것이 뒤엉켜 있었던 그 길은 단 한 번도 뻔한 적이 없었다. 늘 새로웠고, 늘 멀미했다. 그래도 참 즐거웠던 것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의 조화였다.
‘아니, 조화로움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몸부림과 같았다.’
사람조차 걸어가기 힘든 길을 4륜으로 바꾼 뒤 온 차체가 비틀거리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이 오가곤 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차량이 지나고 난 뒤 그 길을 가득 매웠던 먼지를 보며 내가 이들의 조화를 흩트리는 건 아닌지 싶은 마음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들보다 나은 것도 없는데 단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유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특혜라면 특혜라 할 수 있겠지만 감사함으로 해석하지 못한 채 불평했던 모습이 부끄러워 길을 가는 내내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차마 그들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위로라도 하듯 눈이 마주치면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었던 그들이었다. 염소나 양을 잡아 대접해 줬던 환영 인사는 다시금 그 길 위에 나를 올려놓았다.
‘주러 왔는데, 받기만 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그들을 다시 본다. 그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말이다. 사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유치원에 찾아가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과 이웃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이 아닌 서로 손잡고 마주하며 웃는 인사를 더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 웃음은 거친 돌부리와 함께 그 자리에 놓여있었던 선물과 같았다. 종종 길을 가다 보면 거친 돌로 가득할 때가 있다. 넘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상처가 있지만, 종종 선물도 함께 가져다주곤 한다. 돌부리에 숨겨진 빛나는 보석과 같은 선물을 오늘의 길 위에서 다시 찾으려 한다. 그때처럼 웃으며 말이다.
‘길 위에서 만난 작은 돌이 나에게 준 큰 울림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말 중에 많이 기억되는 것이 있다. ‘아플 땐 아파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모인 교차로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길 같지만, 목적지는 각각 다르다. 방향뿐 아니라 조금 넓은 길, 생각보다 비좁은 길 등 걷는 길의 환경도 서로 다르다. 길이 다르다고 틀린 길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나의 길일뿐이다.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다. 다만, 거친 길 위에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정직한 길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