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부신 햇살 Jan 27. 2024

옥희의 이야기

오늘도 변함없이 옥희는 새벽에 출근한다. 거리에는 일찍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린다. 첫차를 타는 기사님도 그녀도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어슴푸레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차창으로 어둠의 부스러기는 사라지고 금빛 햇살이 차오른다.


서둘러서 요양원을 향한다. 엘리베이터에서 2층 은빛 버튼을 누르고 주방을 향한다. 서둘러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스점화기에 불꽃 버튼을 누른다. 주황색과 푸른색의 불꽃이 가스레인지에서 춤추며, 국솥 안의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 끓어오른다. 서둘러서 식판에 음식을 담는다. 메뉴에 맞게 음식들은 가지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돈육안심부위와 무가 간장에 알맞게 조려져 진한 캐러멜화 되어가고 파릇한 봄동은 고춧가루와 새우젓에 맞게 어우러져 있다. 익힌 감자와 삶은 달걀이 으깨어져 야채를 넣어 마요네즈로 버무린다. 옥희의 노련한 솜씨가 재주를 부리며,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실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였다. 부엌에서 엄마가 하는 요리를 눈여겨보았다. 가마솥에 보리밥이 반원 모양으로 부풀어지면,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달걀을 풀어 뜸 들 찰나에 찜을 만든다. 노란 달걀물이 밥 뜸과 함께 부드러운 고형물을 만들어 채소 반찬 안에 왕좌 위치로 놓이게 된다.


달걀찜은 노란 왕관을 쓴 것 같이 당당히 밥상의 고위 신분인양 자태를 뽐내며 빛나고 있다. 아이들은 서로 달걀찜을 먹으려고 허겁지겁 숟가락을 든다. 그녀는 동생들이 잘 먹는 모습에 흡족해한다.


바람이 옥희의 볼과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가난은 그녀에게 매섭게 몰아치고 있지만, 당당함만은 빼앗아가지 못했다. 언덕 위에 우뚝 서 바람 앞에 소리쳐본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잘 살 수 있다."라고 메아리쳐 울린다. 가슴에 희망과 꿈들이 부풀어서 흘러가는 흰구름과 마구 뒤섞인다.


옥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우섭이를 만나 결혼하였다. 흙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자란 그녀는 더할 수 없이 평온했다. 땅은 거짓말을 모른다. 씨앗을 심으면 정성을 받은 만큼 수확을 거두어들였다. 노력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면 더할 나위 없이 열매는 적었다.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수확한다.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떨어져 금빛 길을 만들고, 은행 열매들이 우수 떨어져 거리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그녀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본다. 청명한 푸른 하늘은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간다. 해가 질 때까지 옷에 땀범벅이 되도록 노동의 대가를 치렀다.


우섭이는 빈둥빈둥 거드름을 피우며 지냈다. 사랑방에서 마작을 하며 돈을 많이 잃어도 걱정 없이 행동했다. 그녀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노동의 수고도 배가로 증가한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남편 때문에 눈물과 한숨 쉬는 시간들이 늘어만 갔다. 아이들이 장성하기만을 기다렸다. 얘들아, 빨리 자라다오. 건강한 사회의 인격체로써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화창한 가을날에, 하늘이 너무 청명해서 슬퍼지는 날에 그녀는 집을 나왔다. 혼자이고 싶었다. 가장의 책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었다.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한 콩쥐처럼 허탈감이 몰려왔다.


옥희는 고향을 떠나 아무도 찾지 않는 지역으로 밤에 도주하였다. 자녀들은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라 마음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내쉬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스키장 옆의 큰 식당이었다. 많은 인파가 오고 가며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였다. 맛있게 먹고 간다는 손님들의 작은 한마디에 음식을 만드는 자부심도 늘어갔다.


겨울의 스키장은 자연의 눈과 인공 눈의 조화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옥희는 감사했다. 인생의 시련 뒤에 오는 평화와 안정이 신이 주시는 선물임을 느꼈다. 우섭이도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떠나갔으며 자녀들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녀는 이제 요양원에서 조리원으로 일한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마음들이 부풀어 오른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슬픈 일도 겪기도 하면서, 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도량도 생기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이제와 보니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간 예수님의 가르침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도 옥희는 주방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음식을 요리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사랑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