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2번째 카드 아홉 번째!

무뢰한

by 달빛바람

개요 멜로/누아르 한국 118분

개봉 2015년 05월 27일

감독 오승욱


데뷔작이 결코 행운과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당신의 2번째 카드에 대한 이야기!



1. Opening 오프닝

영화는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비극처럼 새벽의 잿빛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문을 연다. 축축이 젖은 도시의 숨구멍 같은 어두운 주차장. 한 남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현장에 주인공 형사 재곤이 시신을 확인한다. 냉담한 시선 너머로 이 남자의 머릿속엔 무엇이 떠오르고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정사 신. 준길은 애인 혜경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한다.

'미안하다. 혜경아. 내가 춘남을 죽였다.'

어둠이 깃든 방 안에서 두 사람의 육체는 강렬하게 얽힌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고백. 불안하게 떨리는 여자의 얼굴. 혜경은 남자의 머리칼은 꼭 쥔다. 영화는 이제 사건의 균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

무뢰한의 오프닝은 누아르라는 장르의 껍질을 뒤집어 그 속의 심장을 보여준다. 피와 어둠, 육체와 죄의 결합, 그리고 그 위에 깃든 멍든 사랑. 노출보다 감춤이 더 강렬하게 작용하는 세계. 카메라는 범죄의 현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그 여백 속에 남겨진 숨소리와 떨림은 관객의 감각을 단숨에 자극한다. 오승욱 감독은 이 오프닝을 통해 우리가 마주할 이야기의 진실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도망치는 자와 쫓는 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죄인과 연인의 경계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그리고 그 경계 위에서 어떻게 사랑이 발생하는지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눈앞의 새벽은 결코 환하지 않다. 이 세계의 하늘은 본래부터 환한 적이 없었다. 오직 푸르스름한 잿빛. 그리고 그 잿빛은 이 영화의 인물들, 그들의 시선과 숨결, 망설임과 고백 위로 내려앉는다.


2. 사건의 원인

그녀는 누구일까. 그 물음은 단순한 정보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떤 잔향을 쫓는 듯한 뉘앙스를 띤다. 재곤은 강력 형사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진실보다 마음을 더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다. 피로 얼룩진 사건의 표면 아래 무엇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또 무엇이 사람을 붙드는지를 본능적으로 읽으려 한다.

한 조직의 말단 조무래기가 툭 던지듯 입을 연다.

김혜경이 걔가 지금은 퇴물이지만 몇 년 전까진 텐프로였답니다. 주식에 손대서 다 날리고 룸살롱 새끼마담 하면서 빚지고 나이는 먹고 뭐 그런 거죠.

이 한 문장에 세월과 절망과 질투와 혐오가 겹쳐 흘러내린다. 혜경이라는 이 여자의 이름이 누군가의 입에서는 버려진 물건처럼 언급된다. 죽은 피해자는 혜경을 돈 문제로 협박했던 모양이다. 조직 이사장과도 연인 사이였던 혜경. 그리고 혜경과 엮이면서 조직에서도 팽 당하고 살인자 신세가 된 준길. 재곤은 혜경을 맴돌며 준길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이 영화에서 혜경은 단순한 피해자도 사건의 촉매제도 아니다. 그녀는 죄와 욕망, 그리고 상처가 뒤엉킨 도시의 중심에서 한때 찬란히 빛났지만 이제는 녹슬어버린 간판처럼 비루한 현재의 얼굴이다. 그런 그녀는 사람을 끌어당긴다. 단지 육체의 끌림 때문이 아니다. 상처의 결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어딘가 닮은 이들에게만 감지되는 불안의 냄새를 그녀는 은근히 풍긴다.

그런 혜경을 배우 전도연은 마치 영화 전체의 리듬을 짊어진 듯이 연기한다. 늘어진 콩나물처럼 탈진해 있다가도 준길을 마주하면 마치 서늘한 거리에 피는 붉은 화초처럼 생기를 내비친다. 그 얼굴에는 도망치려는 본능과 머물고픈 갈망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말보다는 호흡, 대사보다는 눈동자, 그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삶을 직접 살아낸다.

감독 오승욱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배우가 캐릭터에 완전히 밀착돼 연기한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새삼 느꼈다.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런 연기는 계산해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연기를 안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눈꺼풀, 눈썹, 볼 근육에도 감정을 싣더라.

(SBS 연예뉴스 2015년 6월 11일 인터뷰)

실제로 그녀가 이 영화에서 '나 김혜선이야! ' 외칠 때 그 아우라는 자그마한 그녀의 몸이 하나의 불덩이처럼 느껴진다. 벼랑 끝 눈물 어린 발악. 호흡과 대사 사이의 여운. 그녀의 철저히 계산된 연기는 상대배우뿐 아니라 보는 관객들을 압도한다.


준길과 재곤은 곧 마주친다. 곤히 잠든 나신의 두 남녀. 총구를 겨누는 재곤에 본능처럼 움직이는 준길. 둘의 액션은 마치 야생 동물들의 움직임처럼 보는 이를 압도하는 게 있다. 장신의 두 배우의 몸은 프레임 가득 목숨 건 움직임의 박동을 전달해 준다.


이때 준길을 연기한 배우 박성웅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건 도입부의 주요 키를 담당해 제 몫을 잘 해낸다. 특히 액션장면은 그의 우월한 신체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또한 그의 한 마디.

나 배신 안 할 거지.

이 말에는 조직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초라함, 사랑 앞에선 여전히 순정을 내비치는 남자의 마지막 믿음이 동시에 스민다. 그것은 오직 그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말이자 단 한 줄로 모든 정체성과 운명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숨 막히는 긴장은 액션이 아니라 관계의 비밀스러움에서 비롯된다. 총이 아니라 눈빛, 주먹이 아니라 마음. 누구도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도 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 복잡하고 뒤엉킨 마음들이 이 누아르를 단순한 장르의 차원에서 벗어나 감정의 미궁으로 끌고 간다.


3. 위장

농인 듯한 약속, 진심을 감추는 모진 말. 이 표현은 서로 모순되는 말이면서도 이 영화의 중심을 꿰뚫는 아이러니다.
재곤은 거짓을 입고 진실을 훔치려 한다. 도망자 준길을 잡기 위해 그는 준길의 친구 ‘영준’인 척 혜경에게 접근한다. 말하자면 이 관계의 시작은 진심이 아니라 연기였다. 그러나 그 연기의 틈으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흘러들기 시작한다. 배우 김남길이 연기한 재곤은 이중의 가면을 쓴 사내이다. 위장 수사라는 직무 뒤에 숨은 사명감, 그 사명감조차 흐릿해지는 외로움, 그리고 혜경을 향한 혼란스러운 동정과 끌림. 그는 허세를 부리고 능청을 떨지만 관객은 그의 말보다 침묵에서 더 많은 것을 읽는다.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아 오히려 더 복잡해 보이는 인물.


김남길은 실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표현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담백하게 캐릭터를 소화해 봤다.

(티브이데일리, 2015년 5월 29일 인터뷰)

위의 말처럼 그의 연기는 과하지 않다. 아니, 그저 슬퍼 보이지 않는 사람의 슬픔을 연기하는 것 같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며 상대의 눈빛을 엿보고 익숙한 듯 웃지만 그 어깨는 늘 긴장돼 있다. 몸짓의 작은 떨림조차 재곤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증언한다.


영준(재곤)의 허세에 혜경의 첫마디는 '병신!'이다. 혜경은 예민한 촉수로 그의 거짓말을 간파한다. 혜경은 감정의 안테나가 예민한 여자이다.

당신 이 바닥 초짜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요.
오늘 처음 만났는데 지금까지 진실을 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녀의 말은 직선적이고 거칠지만 그 안엔 두려움과 피로가 섞여 있다. 자신을 겨냥해 다가온 모든 남자들이 결국엔 뭔가를 앗아가고 떠났다는 경험이 그녀를 이처럼 방어적이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영준(재곤)은 그 직격탄에 능청스럽게 응수한다.

예리하시네.

그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더 천천히, 더 조용히 그녀의 마음에 스며든다. 담배를 같이 피우고 같은 차에 타고 말없는 침묵 속에서 한 걸음씩 다가선다. 그들은 명백히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린다. 서로의 허위 속에서 오히려 진짜 외로움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한걸음 더 다가서려는 영준(재곤)에게 어느 날 혜경이 묻는다.

우리가 친해진 것 같아요?

누가 먼저 흔들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혜경은 너무 오래 벼랑 끝에 서 있었고 그 끝을 노리는 자들은 지겹도록 많았다. 재곤은 그녀에게 다가가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동시에 지켜야 할 사람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그 감정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그의 동료조차 그 마음의 변화를 눈치채기 시작한다. “여자한테 정들었냐”는 짐짓 무심한 말은 재곤의 가면을 흔들어 놓는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버릴까 두려워 그는 침묵을 택한다.

무뢰한이라는 제목은 결국 어떤 사랑은 거짓에서 시작되며 어떤 진심은 죄로 변한다는 슬픈 선언이다. 재곤은 혜경을 속이기 위해 다가갔지만 스스로도 모르게 진심을 감염당한다. 위장은 거짓말이었지만 그 거짓 속에서만 드러나는 진짜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둘의 관계가 어디로 향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비극을 알면서도 그들이 조금만 더 오래 서로를 속이고 속아주었으면 한다. 그 짧은 달콤함이 곧 끝을 맞이할 것을 예감하기에 더욱.


4. 격정


혜경은 어느새 영준(재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의 존재가 언젠가부터 삶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외로움의 다른 얼굴인지 아직 스스로도 분명치 않다. 마치 감기로 시작된 열이 어느 순간 폐렴이 된 것처럼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의 존재가 그녀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또다시 새벽. 이 영화는 자꾸 새벽을 보여준다. 어두운 것도 환한 것도 아닌 푸르스름한 그 시간. 밤이 물러나면서도 낮이 오지 않는, 그 경계의 시간. 그때마다 혜경과 재곤은 서로를 마주한다. 그들은 늘 낮과 밤 사이에서 만나고 그들의 감정 역시 그 모호한 빛 속에서 더 격렬하게 불타오른다.

혜경의 집, 방 안 가득한 숨소리. 그곳에서 둘은 마침내 감정의 꼭짓점에서 부딪힌다. 사랑인지, 욕망인지, 죄책인지 모를 감정들이 겹겹이 쌓이다 못해 터져 나오는 듯한 순간이다. 격정적인 감정 속에서 그녀는 준길을 만난 것을 고백한다.

어제 낮에 준길 씨 만났어요.
돈 구해달래요.

그 순간, 둘 사이의 균형은 무너진다. 진실을 말하는 자와 그 진실로부터 눈을 감으려는 자. 거짓에서 시작된 관계가 이제 진실 때문에 흔들린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약점에 대해 말하고 웃는다. 이 영화의 절제된 대사는 등장인물의 변화되는 심리의 파고를 전달한다. 한껏 솟구쳤다 끝없이 가라앉는 마음. 진심이다 느끼는 순간에 피식 농처럼 웃어넘기고 눈빛의 깊이와 동공의 떨림, 공허했다 다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희망에 차는 표정. 그러다 또 흐릿해지는 앞날에 무거워지는 침묵. 이 영화는 대사 자체의 힘 보다도 그 사이 정적의 무게를 믿는 영화이다.


그때 전도연과 김남길의 호흡은 장마철 공기처럼 눅진해졌다 한 순간 소나기처럼 시원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또 둘을 위협하는 무더위가 덮친다.


5. 선택

이제 남은 건 선택뿐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선과 악의 분기점도 정의와 불의의 대결도 아니다. 그것은 죄의 진실을 넘어서 사랑의 진심을 묻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혜경은 해사한 얼굴로 묻는다. 피곤과 절망이 깃든 삶에서 잠시 벗어나, 단 한 번의 여백처럼 찾아온 이 남자에게 기대어 묻는다.

영준 씨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이 물음은 단순한 신뢰의 확인이 아니다. 혜경은 지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던지는 중이다. 그리고 재곤 역시 더는 연기자가 아니다. 영준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오래된 가면이 되었고 그 가면 아래엔 이미 흔들리는 진심이 자라났다. 그는 대답한다.

박준길이한테 그 돈 주고 나랑 같이 살죠!

그의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간절하고 진심 어린 제안이다. 불가능을 아는 사람이 감정의 출구가 사라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고백.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같았다. 진심은 늘 늦게 도착하고 사랑은 진실보다 불편하다. 혜경은 머뭇거린다. 그리고 재곤은 외면한다. 그들 사이엔 아직 건너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다. 결국 비극은 벌어진다. 감추어야 했던 진실이 드러나고 숨기려 했던 마음은 고통스럽게 노출된다. 혜경은 떠밀리듯 진실 앞에 선다. 그녀는 사랑했던 사람이 형사였다는 사실보다 사랑을 믿으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더 상처받는다. 그리고 재곤은 모든 걸 걸고 그녀를 지키려 했지만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이 봉인된다. 비극은 예고된 결말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기는 잔상은 단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감정의 실패이다. 이 영화의 결말은 누아르 영화답게 비장미 있게 마무리된다. 흐느낌과 허세.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 그래서 더욱 애달프게 다가온다.

영화는 재곤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그의 앞모습으로 끝난다. 이것은 단순한 구조적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진심이 드러나는 얼굴을 향해 영화가 천천히 다가간 여정이다. 이 영화의 얼굴이 재곤(김남길)이라면 심장은 혜경(전도연)이다. 그녀가 있었기에 이 영화는 냉혹한 장르의 껍데기를 깨고 따뜻한 체온을 품을 수 있었다.

118분. 꽤 긴 러닝타임이지만 영화는 단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이야기의 잔가지들은 조용히 잘려나가고 모든 시선은 두 사람의 감정선에 모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야기보단 감정의 기록이며 서사보단 관계의 결에 집중한 영화다. 이 영화는 2000년 <킬리만자로>로 데뷔한 오승욱 감독의 15년 만의 2번째 장편영화이다.


6. Style 스타일

이 영화는 피와 총성이 아닌 감정의 잔열로 구성된 누아르이자 멜로영화이다. 이 영화엔 뚜렷한 폭발도 날 선 클라이맥스도 없다. 대신 관계의 틈 사이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감정의 진동, 그 진동이 스며든 장면들로 서사가 쌓여간다. 인물들의 선택은 운명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미세한 감정의 균열에서 비롯된다. 오승욱 감독은 그 균열을 과장하지 않고 극도로 절제된 시선으로 응시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보다 주변의 공기를 먼저 담는다. 말보다 정적, 사건보다 여운이 먼저 다가오는 이유이다.


그의 카메라는 항상 멀리서 그러나 깊이 있게 바라본다. 인물에게 다가서되 쉽게 개입하지 않는다. 줌보다는 트래킹, 흔들림보다는 정적인 고정숏이 많다.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아도 그 안의 인물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것은 일종의 반클리셰적 스타일이다. 무뢰한은 장르를 따르되 장르의 전형을 해체한다. 액션은 짧고 총격은 제한적이며 폭력은 이미지보다 정서로 표현된다. 오히려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은 침묵 속에서 발생한다. 예컨대, 혜경이 재곤을 바라보는 정적의 순간, 그 눈빛 하나가 한 방의 총격보다 더 격렬하다. 조명과 색감 또한 이 영화의 내러티브이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창백한 형광등, 어둡고 눅진한 밤의 조명은 인물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환기시킨다. 이 영화엔 낮이 거의 없다. 태양이 없는 세계, 죄와 사랑이 모호하게 겹쳐지는 공간. 그 어둠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더듬고, 확인하고, 때로는 외면한다. 조명이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라면, 색감은 관계의 온도를 설정하는 요소이다. 혜경의 방은 늘 습기 찬 푸른빛에 잠겨 있고 재곤의 뒷모습은 도시의 불빛에 녹아든다. 그 색들은 단순한 분위기를 넘어 인물의 고립감과 내면의 체온을 보여준다. 또한 감독은 대사를 음악처럼 활용한다. 말이 멈추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메시지가 흘러나오는 지점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절제되어 있고 설명을 피한 채 정서의 언저리만 스친다. 배우들은 이 정제된 말들을 각자의 리듬으로 토해낸다. 감독은 언어의 밀도보다 침묵의 무게를 더 신뢰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말하지 못한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미묘한 떨림이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는 잔향이 된다.

결국 무뢰한은 비정한 세상 속 연민의 기척을 잡아내는 영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감독의 스타일로 완성된다. 폭력이 아닌 슬픔으로 빠른 전개가 아닌 잦은 멈춤으로 복수보다 더 오래가는 감정의 흔적으로. 이 영화는 장르적 규범을 빌리되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이자 선언이다. 그는 말한다. 누아르는 어둠 속에서 싸우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도 몰래 사랑했던 여자를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그 기억의 방식이 바로 무뢰한의 스타일이다.



당신의 2번째 카드 아홉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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