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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럼 여름처럼 영화처럼 열여섯 번째!

그랑 블루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프랑스 137분

개봉 1988년(프랑스) / 1993년(한국)

감독 뤽 베송 Luc Besson



1. Opening 오프닝

영화는 마치 오래된 꿈처럼 시작된다.

1965년 그리스.

흑백화면은 이 영상이 누군가의 회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소년 자크는 햇빛보다 바다를 더 사랑하는 아이였다. 열 살 남짓, 해맑은 얼굴은 가진 그 소년의 눈은 늘 바닷속을 향해 있다.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 나와도 그는 늘 수경과 오리발을 바위틈에 감추고 조용히 바다의 품으로 풍덩 뛰어든다. 자크에게 바다는 놀이터이자 고향이었고 그 속의 생물들은 동무이자 형제였다. 사람보다는 물고기와 더 깊은 교감을 나누던 아이. 그의 손에서 곰치는 순하게 먹이를 받아먹고 그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본다. 그 순간 관객은 알게 된다. 이 아이는 세상의 규칙보다 바다의 숨결에 익숙한 존재임을. 그에게 육지는 잠시 숨을 고르는 휴식일뿐 진짜 삶은 푸른 심연 아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물속에 떨어진 동전을 발견한 친구들이 자크에게 뛰어오며 말한다.

자크, 항구에 반짝이는 게 있어.

그는 항상 망설임 없이 뛰어들고 잠수는 마치 태고부터 몸에 새겨진 본능처럼 자연스럽다. 물속에서의 자크는 마치 다른 생명체처럼 보인다. 그의 작은 몸은 물과 섞이며 육체는 경계를 잃어간다. 자크는 인간과 바다 사이의 균열, 그 틈에 태어난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바다를 사이에 둔 라이벌이 나타난다. 소년 엔조. 자크가 프랑스 소년이라면 엔조는 이탈리아 남부의 태양 아래 자란 또 다른 바다의 아이였다. 엔조는 처음엔 자크를 견제하지만 그 견제 속엔 묘한 친밀감이 깃들어 있다.

프랑스 꼬맹이만 아니면 쓸만한데.

말은 거칠어도 바다를 향한 시선만큼은 서로 닮아 있다. 둘은 육지에서는 어긋나도 물속에서는 하나의 유영으로 이어진다. 바다는 그들에게 언어가 필요 없는 공간이었고 숨을 멈춘 그 짧은 순간들 속에 더 깊은 교감이 흘렀다.
하지만 파도는 늘 평온하지 않다. 어린 자크에게 예기치 않은 슬픔이 닥친다. 아버지, 깊은 물속을 누비던 잠수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한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 그날 이후 자크의 삶엔 아버지의 실루엣만이 바다 위를 떠돌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홀로 남는다. 메아리처럼 번지는 그의 외마디 소리를 공유한 엔조. 그는 그가 내뱉지 못한 유년의 조각을 알고 있다. 자크에게 바다는 아버지의 무덤이자 유년의 기억이 잠긴 유리병이며 동시에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유혹이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단순한 바다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바다를 사랑한 두 아이의 영혼이 어떻게 세상과 어긋나며 어떻게 바다에 다시 녹아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우화이다. 그리고 이 첫 장면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도 남아 있는 바다의 기억, 어린 시절의 맑고 깊은 숨을 조용히 일깨운다.



2. 세계 챔피언 엔조

1988년의 시칠리아

햇살은 벼랑 끝까지 내려와 바다를 간지럽히고 공기는 뜨겁게 숨을 들이켠다. 그런 해안가를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오는 차 한 대.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어 움직이는 것조차 신기한 고물 경차. 속도도 위엄도 없지만 어딘가 사람 냄새나는 이 낡은 차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처럼 느껴진다. 문이 삐걱 열리고 시칠리아의 햇빛 속으로 두 남자가 걸어 나온다. 한 명은 이탈리아 바다의 강인한 아들이자 다이버 챔피언 엔조, 그리고 또 한 명은 그의 동생 로베르토. 두 사람의 발길은 해안가에 정박한 듯 그러나 생명을 삼킨 듯 기울어져 있는 난파선으로 향한다. 배 안에는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갇혀 있고 숨소리는 절박하다. 바다의 이름을 가진 남자 엔조는 그를 구하러 간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동료에게 동생 로베르토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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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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