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
69회.
무엇을 69번이라 했다면 대단한 일일까?
만약 여행이라면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았을 숫자이고 시험이라면 이미 교수 자리도 넘볼 자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69라는 숫자가 ‘헌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전혈은 1년에 5회가 최대이니, 이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는 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 긴 세월 동안 어쩌다 한 번쯤은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고 묻는다. 하지만 그 답은 간단하다. 포기할 이유보다 이어갈 이유가 늘 조금 더 컸기 때문이다.
헌혈은 사실 화려한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짧은 시간 팔을 내어주는 일,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헌혈을 하면 혈압을 잴 수 있고, B형·C형 간염, 매독, 말라리아 등 다양한 감염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료 건강검진과도 같은 이 작은 성취는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이자,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게다가 수혈을 받을 때 의료기관에 헌혈증서를 제시하면 수혈 비용 중 본인 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작은 나눔이 또 다른 이익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69회라는 숫자는 그래서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매번 내 안에서 다시 써 내려간 작은 약속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헌혈 앞에서는 망설인다. 바늘이 두렵다거나 혹시 건강을 해칠까 걱정하기도 한다. 시간 낼 틈이 없다는 핑계도 흔하다. 그러나 병원 현장은 다르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고 오직 누군가의 기증만이 다른 생명을 살린다. 우리나라의 헌혈 참여율은 약 5% 남짓에 불과하다. 프랑스나 일본이 10% 이상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혈액은 소수의 꾸준한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한 번의 헌혈이 가진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 누군가의 주저함이 곧 다른 이의 절박함으로 이어지는 이 구조 속에서 헌혈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 사회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그렇기에 ‘69’라는 숫자는 더욱 특별하다. 한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번을 이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69회라는 발자국은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다.'라는 조용한 자부심이자 ‘작은 꾸준함이 결국 큰 빛을 만든다.’는 증거가 된다.
헌혈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집 근처 헌혈의 집을 찾아가 잠시 팔을 걷으면 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놀랍다. 수술대 위의 환자가 다시 숨을 쉬고, 병실 침대 위의 누군가가 하루를 더 버텨낸다. 그들의 혈관 속을 흐르는 한 줄기의 힘이 어쩌면 내 팔에서 건네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 단순한 연결은 나를 겸손하게 하고 동시에 내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준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헌혈은 학교에서 도장을 모으는 일과도 닮아 있다. 하나씩 모아가는 도장은 작아 보이지만 어느 순간 상장이 된다. 그러나 헌혈의 상장은 종이가 아니라 다시 뛰는 심장과 다시 밝아진 얼굴이라는 생생한 기적이다.
앞으로의 길은 더욱 설렌다. 언젠가 100회를 채울 날이 오겠지만 중요한 건 그 숫자가 아니다. 매번의 헌혈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숨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이 꾸준한 실천의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이 여정이 나 혼자만의 기록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늘 끝의 작은 찡그림이 누군가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이 될 테니까.
69회라는 숫자는 나의 발자취이자,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안전하게 밝히는 불빛이다. 작은 성취가 모여 큰 보람이 되듯 헌혈은 오늘도 세상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빛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불빛을 멈추지 않고 이어갈 것이다.
69라는 도장은 이미 내 삶에 힘 있게 찍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