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끝, 내 안의 아이에게
너에게
12월의 거리는 닳고 닳은 빳빳한 영수증 같다. 한 해 동안 지불한 감정의 대가들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굴러다니는 계절이다. 창밖의 풍경이 흐릿해지는 건 날씨 탓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눈을 부릅뜨고 버텨왔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냈다'는 말에는 묘한 비린내가 난다. 그것은 단순히 생존했다는 사실을 넘어, 무언가를 죽이고 얻어낸 결과물 같아서다. 2025년은 유난히 그랬다. 우리는 매일 아침 넥타이나 사원증으로 목을 조이며,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 사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시스템을 강제로 재가동하려는 기계적인 명령어에 불과했음을 이제는 고백해야겠다.
요즘 나는 네가 내 안에서 웅크린 채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남들은 그것을 '번아웃'이나 '우울' 혹은 '퇴행'이라고 부르더구나. 어른이 아이처럼 구는 것을 두고 세상은 '미성숙'이라 혀를 차지만 나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하기로 했다. 그것은 네가 보내는 긴급 정지 신호이다. 과열된 엔진이 폭발하기 직전, 스스로 전원을 내려버리는 아주 정교하고도 필연적인 생존 본능 말이다. 솔직해지자. 너를 가장 가혹하게 몰아세운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타인의 무례함이나 과도한 업무가 너를 할퀴려 할 때, 나는 보호자가 되어주기는커녕 너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른스럽게 행동해."
"감정을 들키면 아마추어야."
그렇게 너를 골방에 가두고 나는 멀끔한 표정의 가면을 쓴 채 사회라는 무대 위에 섰다. 네가 안에서 울부짖으며 문을 두드릴 때마다 나는 볼륨을 높여 그 소리를 지워버렸다. 그러니 지금의 이 무너짐은 세상 탓이 아니다. 임계점을 넘은 감정들이 댐을 무너뜨리고 터져 나온, 지극히 정당한 인과응보일 뿐이다.
올해 내가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붕괴도 그러했다. 새벽 지하철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던 중년의 등이나, 점심시간 카페 구석에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청춘들의 눈동자. 그들은 게으르거나 나약해서 무너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성실하게,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을 착취하며 '기능'하려 애썼기 때문에 고장 난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닌데 우리는 너무 오래 부품처럼 살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니 네가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네 감각기관이 아직 마비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고, 슬픔을 슬픔으로 인지하는 능력. 세상이 앗아가려 했던 그 '인간의 기능'이 아직 네 안에 살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도 네가 웃고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끔찍한 비극이었을 테니까.
사람들은 자꾸만 일어서라고, 회복 탄력성을 가지라고 채근한다. 하지만 뼈가 부러졌는데 억지로 뛰면 불구가 될 뿐이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섣불리 일어설 용기가 아니라 철저하게 바닥에 누워 있을 용기이다. 산산이 조각난 마음의 파편들을 억지로 붙이려 하지 말고,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가만히 응시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완벽한 구체(球體)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찌그러지고, 긁히고, 때로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 삶의 질감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매끄러운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라. 그 매끄러움은 수많은 타협과 자기기만으로 연마된 인공적인 광택일 뿐이다. 오히려 울퉁불퉁하고 금이 간 너의 모습이, 그 어떤 가공품보다 더 진실하다.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너에게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거나 "수고했다"는 상투적인 칭찬을 건네지 않으려 한다. 그건 또다시 너를 평가의 대상 위에 올려놓는 일이니까. 대신 나는 그저 네 옆에 조용히 앉아 있으려 한다. 네가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서 탈진할 때까지, 화가 나면 소리를 질러 목이 쉴 때까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최초의 존중이자 사과이다.
무너진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야만 들리는 땅의 호흡이 있다. 우리는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이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붕괴는 끝이 아니라 잘못 쌓아 올린 것들을 허물고 본래의 지반을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너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부서진 채로, 그러나 분명하게 숨 쉬며.
그 사실 하나면 족하다. 내년에는 견디는 힘보다 흐르는 힘을 배우기를 바라며.
너의 영원한 동거인,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