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같은 내 인생 My Life As A Dog 1987
개요 드라마 스웨덴 102분
개봉 1987년 12월
감독 Lasse Hallstrom
1. 열두 살 잉마르
열두 살은 세상이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리는 나이이다. 아직은 아이로 불리고 싶지만 아이로 남기엔 현실이 너무 빠르게 시퍼런 얼굴을 드러낸다. 잉마르에게 주어진 하루는 그 나이의 아이가 견디기엔 지나치게 짙고 차갑다. 숨을 몰아쉬는 엄마의 기침 소리, 이유 없이 터져 나오는 분노, 그리고 그 모든 틈새에서 움트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잉마르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길을 잃는다.
소년의 불안은 몸부터 먼저 반응한다. 밤이 되면 이불에 오줌을 싸고, 아침 식탁에서는 멀쩡히 들고 있던 우유를 엎지른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다. 긴장을 풀 줄 모르는 몸이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한 두려움을 먼저 흘려보낼 뿐이다. 형과의 싸움도 다르지 않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주먹이 먼저 나가고, 곧바로 후회가 뒤따른다. 잉마르는 공격적인 아이가 아니라 아직 감정을 제때 내려놓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의 시선은 늘 조금 비켜 서 있다. 정면으로 마주하면 무너질 것 같은 진실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잉마르는 사고를 친다. 동네 여자아이와 굴 밑에 몸을 숨기듯 껴안고 눕는 것도 쓰레기장 한복판에서 모닥불을 피우다 결국 불을 내는 것도 같은 결이다. 그것은 규칙을 어기기 위한 도발이라기보다 숨 쉴 틈을 찾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어른들의 세계가 허락하지 않는 온기와 관심을 잉마르는 가장 엉뚱하고 위태로운 방식으로 끌어당긴다.
잉마르는 맑고 투명한 동심의 얼굴을 한 아이가 아니다. 대신 그는 너무 일찍 상실을 배운 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과 호기심, 죄책감을 오가며 자신의 자리를 시험해보는 작은 생존자이다. 실수는 반복되지만, 그 안에는 일관된 성격이 있다. 혼나면서도 세상을 확인하고, 다치면서도 관계를 배우려는 아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면 미움도 감수할 줄 아는 아이인 것이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를 감싸 안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잉마르가 벌이는 크고 작은 사고들을 교정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하나의 신호로 바라본다. 아이의 장난 뒤에 숨은 절박함을 과장하지도, 연민으로 덮어버리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하루를 통과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따라갈 뿐이다.
잉마르가 바라보는 곳의 끝에는 늘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 부재한 사랑, 혹은 끝내 붙잡을 수 없었던 온기에 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은 쉽게 답을 얻지 못한 채 공중에 머물지만 소년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고를 치고, 혼나고, 다시 살아보는 그 반복 자체가 잉마르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열두 살의 잉마르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 무심한 세계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해 나간다. 그것은 눈부신 성장의 서사가 아니라 오늘을 겨우 넘기기 위한 조용한 실험에 가깝다. 이 영화가 건네는 가장 깊은 울림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품은 채로도 내일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삶을, 그 위태로운 진실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 잉마르는 그렇게 열두 살의 몸으로 이미 삶의 무게를 알고 있는 아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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