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예정되지 않은 길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꽃섬!

영화 <꽃섬 Flower Island>

by 달빛바람

1월의 공기는 언제나 칼날처럼 예리하다. 살갗을 스치기보다 곧장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 안쪽을 서늘하게 긁고 지나간다. 새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새로 정돈되고 각자의 인생 또한 마땅히 올바른 궤도 위에 올라서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은근히 세상을 지배하는 달.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계절에 우리는 가장 자주 길을 잃는다. 얼어붙은 보도블록 위에서 미세하게 미끄러지듯, 단단히 세웠다고 믿었던 마음은 사소한 우연 하나에도 쉽게 균형을 잃는다. 그래서 나에게 1월은 늘, 정해진 목적지를 놓쳐버린 채 낯선 이정표 앞에 멈춰 서게 되는 달, 불친절한 꿈의 미로처럼 느껴져 왔다.


나는 지독한 방향치이다. 지도를 손에 쥐고도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해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몇 바퀴를 도는 일은 흔하고,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지하철역 출구에서도 가끔 길을 잃은 채 멍하니 서 있곤 한다. 이 고질적인 감각의 결함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일곱 살의 어느 주말, 경남 함안의 친할머니 댁에서 보냈던 그 오후와 마주하게 된다. 황홀함과 공포가 동시에 찾아왔던, 내 인생의 첫 ‘길 잃음’이었다.


그날의 나는 무슨 용기가 생겼던 걸까. 낡은 마을버스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정류장에 멈춰 서는 모습을 보고, 나는 거의 홀린 사람처럼 그 계단을 밟아 올라섰다. 버스는 이내 내가 알고 있던 세계를 천천히 지워내며 매혹적이면서도 낯선 풍경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창밖으로는 겨울 끝자락의 농촌 풍경이 펼쳐졌고, 지평선 너머로 번지던 붉은 석양은 어린 나의 넋을 통째로 빼앗기에 충분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둑과 길게 늘어진 그림자들, 느릿하게 흘러가던 시간.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은 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버스는 이미 할머니 집에서 아득히 멀어진 생경한 고개 너머를 달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나는 다급히 벨을 눌렀다. 그러나 버스는 야속하게도 무거운 엔진 소리를 토해내며 한참을 더 달린 끝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산길 모퉁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노선표도, 친절한 안내 문구도 없이, 바람에 덜컹거리던 낡은 번호판 하나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석양은 무심히 자취를 감췄고, 사위는 생각보다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때 느꼈던 막막한 고립감,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쩌면 우주의 끝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이후 내 삶의 무의식 속에 깊은 흔적으로 남았다. 서울에 올라와 20년을 살았으면서도, 처음 가보는 동네에 서기만 하면 나는 여전히 습관처럼 내 옷차림과 얼굴을 살핀다. 이 낯선 풍경 속에서 내가 너무 이질적인 존재로 떠 있지는 않은지, 길을 잃은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검열하듯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 <꽃섬>을 다시 꺼내 본 것도, 어쩌면 이 ‘길 잃음’의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치밀하게 짜인 논리의 서사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사람들이 토해내는 낮은 숨소리와, 주저하는 보폭을 따라 길 위를 유랑한다. 남해로 가야 할 고속버스는 눈 덮인 산중턱에서 멈춰 서고, 여기가 종점이라며 태연하게 배드민턴을 치는 기사의 모습은 마치 불친절하고 낯선 꿈의 한 장면 같다. 당혹감에 젖은 인물들에게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사람 운명이라는 게 뭐 그런 거죠. 가끔씩 예정되지 않은 길을 가기도 하거든요.”


이 대사는 내게 이상할 만큼 서늘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남해’를 꿈꾸며 버스에 오르지만, 삶이라는 버스는 종종 우리를 엉뚱한 산중턱에 내려놓는다. 예고 없는 해고, 갑작스러운 이별, 혹은 나처럼 선천적인 방향치라서 겪게 되는 소소하지만 반복적인 낙오들까지. 그러나 영화는 바로 그 예정되지 않은 종점에서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길을 잃었기에 옥남과 혜나는 만날 수 있었고, 그 길 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던 유진을 발견한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의 연대는 그렇게 ‘길을 잃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1월의 한복판, 나 역시 예정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을 때가 많다. 계획했던 일들이 어긋나고, 내가 탄 버스가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참담함.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면,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대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찾아왔다. 함안의 그 낯선 정류장에서 울먹이던 어린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것은, 우연히 지나가던 이웃집 아저씨의 경운기였다. 덜컹거리는 경운기 뒷자리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돌아오던 그 짧은 여정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우리는 삶에서 마주치는 불운을 흔히 연쇄적인 재앙으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삶은 때로 우리를 고립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길을 일부러 굽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방향치인 내가 서울의 낯선 골목에서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꽃집, 그곳에서 만난 겨울 꽃들의 단단한 생명력은 정해진 길로만 다녔다면 결코 마주할 수 없었을 풍경이었다. 1월의 시린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 있는 꽃들은 조용히 말해준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아직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이 남아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영화 <꽃섬>의 여정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슬픔과 불행을 잠시 잊게 해주는 ‘꽃섬’ 하나쯤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이 실제로 여수 앞바다에 존재하는 하화도이든 혹은 우리가 언젠가 닿고 싶어 하는 어떤 정서적 평안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탄 버스가 예정된 종점에 닿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실패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도 나는 서울의 어느 낯선 역 출구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해 스마트폰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예전처럼 크게 겁이 나지는 않는다. 길을 잃으면 조금 늦게 도착할 뿐이고, 그 늦어진 시간만큼 내가 만날 수 있는 우연의 면적은 더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월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깊게 숨을 들이켜 본다. 예정되지 않은 길 위에서 문득 마주칠 누군가의 온기와 이름 모를 정류장 한켠에 피어 있을 작은 꽃 한 송이를 기대하며. 삶이라는 이 불친절한 여행이 가끔은 다정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뜻밖의 종점이 건네는 선물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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