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꽃
내가 당신과 함께 살던 시절,
당신의 집 앞마당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빈 흙이던 자리마다 꽃이 심어졌고,
심는 것 만으로는 모자랐는지 어느새 돌담 위에는 화분들이 하나둘 자리했다.
수선화, 채송화, 금잔화, 국화, 튤립과 장미, 수국과 봉선화, 상사화, 양귀비.
그리고 마당 한 편의 목련나무와 동백나무까지.
마당은 점점 꽃으로 가득 찼고, 당신의 시선도 점점 그 꽃들에게 오래 머물렀다.
그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의미였던 당신의 관심이 꽃으로 옮겨갔을 때,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배웠던 것 같다.
장미가 담장 높이를 넘기 시작하자 당신은 가지 하나하나를 묶어 담장 기둥을 타고 오르도록 정성을 들였다.
어느 날 당신이 밭에 가고 나 혼자 마당에 남았을 때, 나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장미 가지를 붙잡고 댕강댕강 모두 잘라버렸다.
밭에서 돌아온 당신은 그날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나에게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초리를 들었다.
장미 가지에서 가시를 하나하나 떼어내 회초리를 만들고, 딱 세 대.
그날 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밥상을 차리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나를 아랫목에 누우라고 하더니 종아리에 남은 회초리 자국 위에 안티푸라민 연고를 발라주었다.
거칠고 투박한 당신의 손. 연고 냄새. 말없는 방 안의 공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잠들기까지 그 밤은 유난히도 길고 길었다.
다음 날 당신은 장에 간다더니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내 손에 작은 상자를 쥐여주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색 자개 빗이 들어 있었다.
“할머이, 미안혀. 내가 잘 못 했당깨.”
“아니여야. 나가 미안하다야. 나가 무담시 꽃을 쩌라고 숭군 줄 아냐이.”
“할머이가 꽃을 좋아항께 숭군 거 아니여?”
“아니여야. 내는 그라고 못 살었어도 니는 꽃마니로 활짝 핌서 살라고 그랬담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은 끝내 피워보지 못했다며,
나는 꼭 꽃처럼 활짝 피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당신은 동백꽃 씨앗으로 손수 짠 동백오일을 내 머리에 발라주고, 자개빗으로 내 머리를 곱게 빗어주었다.
당신의 손길은 늘 그랬듯 말보다 따뜻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이 끝내 피지 못했다고 했지만,
당신은 나의 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게 활짝 피었다.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놓지 않고 추운 겨울 끝내 피어나는 붉은 동백처럼,
당신이 내게 모든 계절 변함없이 부어준 사랑은
지금도 나의 가슴 한가운데에서.
가장 뜨겁게, 가장 선명하게 붉은 동백꽃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