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꽃
어느 해인가, 한겨울에 매혹적인 향기를 맡은 적이 있다.
회사에서 창문을 여는 순간, 향수보다 진한 향이 바람을 타고 와 코끝을 붙잡았다.
꽃이 있을 리 없는 계절인데도, 황량한 겨울 화단 어딘가에서 분명 꽃향기가 났다.
찬 공기와 함께 깊숙이 스며드는 향을 따라 나도 모르게 고개가 바람 쪽으로 돌아갔다.
향으로 보아 가까운 곳에서 피었을 텐데, 첫해에는 그저 ‘우연히 맡은 향인가’ 하는 마음만 남기고 지나쳤다.
그러다 3년쯤 지나 같은 향을 다시 맡았을 때, 그건 반가움이었다.
이번에는 꼭 찾고 싶었다.
나는 목을 빼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화단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보였다.
작고 하얀 꽃들이 소복이 피어 있었고, 그 꽃들은 초록 잎사귀에 조용히 둘러싸여 있었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나 있었는데, 가시처럼 뾰족해 보여 나는 단번에 호랑가시나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이 추위에 이런 향을?” 그 순간부터 그 나무는 내게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겨울이 건네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겨울만 되면 나는 그 상록수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까막눈도 아닌데, 화단에 그리 크지 않은 나무가 네 그루나 있었던 것이다.
잔디밭에 나무들이 빼곡히 심겨 있어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무엇보다 네 그루가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향을 내어주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혹시 이 향 맡아본 적 있어?”
“겨울에도 초록 잎이 반짝이는 저 나무 봤어?”
하지만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향은 더 내 것이 된 기분이었다.
몇 해가 더 지나서야, 나는 내가 그 나무를 잘못 불러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호랑가시나무가 아니라 ‘목서’였다.
처음엔 조금 멈칫했다.
내가 불러준 이름이 틀렸다니.
그런데 곧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나는 너를 내 시선으로만 오랫동안 지켜봤구나.”
잎사귀가 비슷해 헷갈릴 수 있지만, 호랑가시나무는 잎이 서로 어긋나고 목서는 잎이 서로 마주난다고 했다.
그 설명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는 말처럼 들렸다.
어긋난 잎과 마주한 잎. 내가 그동안 어떤 것들을 짐작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떠올리게 했다.
꽃 피는 계절도 달랐다.
호랑가시나무는 보통 봄(4~5월)에 꽃이 피고, 목서는 9월부터 피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겨울마다 맡았던 그 향은 12월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고마움이 더 커졌다.
나는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한 건, 겨울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모습으로 묵묵히 향기를 품고 있는 그 모습이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그 나무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줄곧 그를 호랑가시나무라 불러주었고, 그는 내게 향기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
이제는 목서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불러줄 것이다.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가 내게 건넨 계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호랑가시나무라 불렀던 목서든, 목서라 부르게 된 그 나무든.
사실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겨울에도 여전히, 그 향기로 내 하루가 조금 더 행복해진다는 것.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오면 습관 하나를 만들었다.
출근하면 화단 앞에서 꼭 한 번 멈춘다.
바람이 향을 데려오는 방향을 가만히 따라가 본다.
그리고 유심히 바라본다.
“오늘도 고마워. 너의 향기가 나의 하루를 온기로 가득 채웠어.”
그러면 그는, 또 한 번 내게로 와서 작고 하얀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