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죽기엔 너무 아름다웠던 눈밭에서

영화 빅 화이트 (The Big White)

by 달빛바람

죽기엔 너무 아름다웠던 눈밭에서


삶에는 분명 계절이 있다. 문제는 그 계절이 언제나 제때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삶의 혹한기는 예고 없이, 동시에, 무자비하게 들이닥친다. 하나씩 견딜 틈을 주지 않는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상실이 겹치고,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몸부터 먼저 부서진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위기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상태이며, 잠깐의 불운이 아니라 삶 전체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 순간이라는 것을.


영화 〈빅 화이트〉 속 바넬의 삶이 그렇다. 알래스카의 얼어붙은 공기처럼 그의 일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냉기를 머금고 있다. 신용카드는 멈췄고, 전기는 곧 끊길 처지이며, 아내는 뚜렛증후군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졌 다. 사라진 동생은 슬픔이자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질문으로 남아 그의 하루를 잠식한다. 그의 삶은 단순히 힘든 상태가 아니다. 그는 어디에서도 체온을 회복할 수 없는 삶의 혹한기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쓰레기통 속 시체와의 조우는 공포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악의라기보다 벼랑 끝에서 손에 쥔 마지막 나뭇가지에 가깝다. 내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윤리보다 체온이 먼저이다. 살아남아야, 옳고 그름도 다시 생각할 수 있으니까.


이 장면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는 그 계산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삶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시간을 통과한 적이 있다. 외할머니의 죽음이 있었고, 그 슬픔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엄마를 떠나보냈다. 애도의 순서도, 마음의 숨 고르기도 허락되지 않았다. 희망은 실체 없는 연기 같고 고통은 나만 느끼는 귀신같던 시간이었다. 설명할 수 없고, 대신해 줄 수도 없는 고통이 내 곁을 맴돌았다.


곧이어 팬데믹은 생계를 직격 했고, 겨울밤 배달 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병원 침대에 누워야 했다. 보조기에 몸을 의지한 채 화장실에 앉아 한참을 울던 밤이 있었다. 너무 아파서, 너무 외로워서, 문득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창밖을 봤다. 세상은 온통 눈밭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고, 이상하리만큼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떠오른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죽기엔 너무 아름답다는 것. 그 한 문장이 나를 다시 침대 쪽으로 돌려세웠다.


삶의 혹한기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아름답다는 점이다. 그 간극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 나만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나만 계절에서 밀려난 것 같다는 느낌.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고, 희망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오기나 열정 같은 말은 먼 나라의 언어가 된다. 그저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한기를 지나온 사람만이 안다.


이때 인간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약해지고, 계산적이 되고, 때로는 비겁해질 뿐이다.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바넬이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흔들리는 이유도, 우리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버텨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을 넘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바넬이 끝내 놓지 못하는 것도, 나를 그 창가에서 붙들어 둔 것도 결국은 봄에 대한 감각이었다. 반드시 행복해지겠다는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다만 이 고통이 영원하지는 않으리라는, 언젠가는 눈이 녹으리라는 아주 미약한 믿음이다. 삶의 혹한기를 이겨내는 태도란 그래서 거창하지 않다. 잘 버티는 것도, 멋지게 극복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죽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오늘을 견디는 것, 그리고 아직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감각을 완전히 잃지 않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알래스카의 눈도 결국 녹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눈이 녹는 속도가 아니라 그 눈밭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다. 혹한기 속에서도 잠시 숨을 멈추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아직 삶은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봄은 그렇게, 아주 느리게, 그러나 반드시 온다. 그리고 그 봄은 언제나 가장 추운 계절을 통과한 사람의 몸에 먼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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