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핀 눈꽃

by 봄날의꽃잎


창밖 멀리 보이는 한라산이 하얗다.

하얀 산을 보며 문득 눈꽃이 떠올랐다.

가까이서 보면

눈꽃은 꽃처럼 가지런하지 않다.

나무마다, 가지마다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눈을 이고 있다.


어떤 나무는

어깨가 무거운 사람처럼

가지가 아래로 휘어 있고,


어떤 나무는

괜찮다는 듯

끝까지 고개를 들고 서 있다.


눈은 공평하게 내렸지만

나무가 감당하는 방식은 다르다.

많이 이고 있는 나무도,

조금만 얹은 나무도

그 모습 그대로 겨울을 건넌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뒤에야

눈을 맞이한 나무들은

치장할 것이 없어

오히려 더 솔직해 보인다.

숨길 것이 없으니

버티는 모습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눈꽃은 화려하지 않다.

바람이 불면 떨어질 걸 알고 있고,

햇살이 들면 녹아내릴 걸 안다.

그래서 더 애써 붙들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무게만큼을

오늘의 가지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그래서 눈꽃 가득한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누군가는 무겁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고,

누군가는 끝까지 고개를 들고 버티고 있지만

그 어느 쪽도 틀린 겨울은 아니어서.

오늘 내가 감당하고 있는 무게가

남들보다 많아 보일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는 사람이

부러워질 때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겨울을 건너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눈꽃처럼 곧 녹아 사라질지라도

이 겨울을

정직하게 지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잘 피어야 한다는 마음 대신

오늘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조용히 허락해 주며

창밖의 하얀 한라산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