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꽃섬>
개요 드라마 대한민국 126분
개봉 2001년 11월 24일
감독 송일곤
1. Opening: 이상향의 파산과 자학의 연대기
영화는 어떤 예고나 안내도 없이, 한 여자의 얼굴을 화면 가득 밀어 넣으며 시작된다. 카메라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이유도 순서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의 궤적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그 눈물은 인과관계를 건너뛴 채 관객의 마음속으로 불쑥 스며들고, 이 영화가 앞으로 짊어질 비극의 무게를 직감하게 만든다. 그녀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잉카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의 이름이다. 그곳에서 빌었던 소망은 분명 거창했을 테지만, 현실의 그녀는 이미 노래를 잃어버린 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유진은 이 모든 파국의 원인을 끝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낸다. “남을 위해 노래하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내 목소리를 뽐냈기에 받는 벌”이라는 그녀의 고백은, 인생의 절벽 끝에서 스스로에게 칼끝을 겨누는 인간의 처연한 자학에 가깝다.
이 오프닝은 <꽃섬>이 매끄러운 인과율과 설명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서사극이 아님을 단번에 선언한다. 영화는 이해를 요구하기보다, 인물의 헐떡이는 내면 고백과 가공되지 않은 고통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한다. 소망은 너무도 높고 고결한 곳에 매달려 있는데, 정작 발을 딛고 선 현실은 배반과 실패가 뒤엉킨 진흙탕이라는 이 잔혹한 대비야말로, 이들이 길 위로 나설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다. 유진의 눈물은 더 이상 개인의 슬픔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의 마추픽추를 가슴에 품은 채 끝내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모든 유랑하는 영혼을 향한, 조용하지만 깊은 서곡처럼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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