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슌지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다시 떠올리면 화면을 가득 채운 벚꽃보다 먼저 어색한 공기가 떠오른다. 기억상실이라는 다소 황당한 거짓말과 그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반복되는 주인공들의 어설픈 연기 때문이다. 영화는 봄의 색으로 가득 차 있지만, 주인공들의 계절은 분명 겨울에 가깝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이기엔 아직 이르다는 걸 소녀들은 본능처럼 알고 있다. 그래서 여 주인공 하나는 기억을 꾸며내고, 그 위에서 사랑을 연습한다. 그것은 사랑의 기술이라기보다 성장을 앞둔 아이가 어른의 몸짓을 흉내 내는 일에 더 가깝다.
IMF의 그림자가 교실 밖을 짙게 드리우던 1999년 겨울, 경남 마산의 한 남자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도 그런 계절이 있었다. 교실은 늘 소란스러웠고, 난방이 제대로 돌지 않아 창가 쪽은 유난히 차가웠던 시절. 책상 서랍 안에는 몰래 감춰둔 CD 플레이어가 있었고, 셔츠 안으로로 이어폰을 안 보이게 넣어 한쪽 귀로만 H.O.T. 와 젝스키스의 노래를 번갈아 들었다. 들키면 끝장이었지만, 그 정도의 위험은 그 시절에 감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치였다. 음악은 교실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탈출구였다.
“수업 준비 안 하고 뭐 하는데? 책 안 피나? 고마 대가리 박으까?”
교실 뒤쪽에서 날아온 말에 음악은 급히 멈췄다. 당시 선생님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말을 저런 어투로 가르쳤다.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고, 나는 이어폰을 셔츠 안으로 밀어 넣으며 괜히 숨을 죽였다. 뉴스에서는 대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Y2K를 앞두고 컴퓨터가 멈출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이번 주 여고 축제에 갈 수 있느냐였다. 열여섯 남자 고등학생에게 세계의 위기는 멀었고 오늘의 설렘은 너무 가까웠다.
“야, 니 목요일 날 여고 축제 가나?”
“가서 머 할라꼬, 말도 한마디 못 붙일 끼면서.”
쉬는 시간마다 오가던 사투리는 거칠었지만, 그 말들 사이에는 숨기고 싶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016, 018로 시작하는 PCS 폰을 괜히 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 했고,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삐삐 숫자를 확인하며 차례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늘 있었다. 그 시절의 연결은 느렸고, 그래서 감정은 더 오래 쌓였다. 말은 항상 늦게 도착했고, 마음은 먼저 자라났다.
그 겨울, 나는 편지 하나를 준비했다. 당시 유행하던 원태연 시인의 문구를 흉내 내, 공책을 찢어 러브레터를 쓴 것이다. 숫자 이야기를 꺼내며, 세상에서 제일 큰 숫자가 무엇이냐고 묻는 문장이었다. 백도 아니고, 억도 아니라며, 네가 나를 안 좋아하는 만큼의 숫자라고 적었다. 그리고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에서 그만큼만 빼고 나면, 세상에 남는 숫자는 하나도 없을 거라고. 지금 보면 얼굴부터 붉어질 문장들이지만, 그때의 나는 꽤 진지했다. 진심이 유치한 언어를 빌려 겨우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그녀를 마주했을 때였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니가 내 보자고 했나?"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니 안다아이가. 그 동욱이. 동욱이가 이거 주라 카더라.”
핑계였다. 정확히 말하면 연기였다. 고백 대신 위임, 진심 대신 회피. 하나가 카메라 뒤에 숨어 감정을 숨기듯, 나 역시 친구 뒤에 숨었다. 거짓말하는 쪽이 덜 다칠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은 그 시절의 나를 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축제 날, 무대 위에서 발레를 추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또렷하다. 단발머리에 차가운 표정, 그러나 움직임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단단했다. 조명이 켜질수록 그녀는 더 멀어 보였고, 나는 끝내 관객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은 입 안에서 몇 번이나 맴돌다 사라졌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은 그렇게, 나 혼자만 아는 연기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몇 년 전 고향에서 이제는 아이 엄마가 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어색한 안부를 나누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니 그때 그 편지 있지. 내가 다 알았다. 니가 쓴 거, 누가 봐도 티 나더라.”
그 말은 웃음처럼 흘러갔지만, 그 안에는 오래 묵은 계절이 섞여 있었다. 공들여 연기했던 거짓말은 생각보다 일찍 들통 나 있었던 셈이다. 영화 속 하나의 거짓말처럼, 아무도 모를 거라 믿고 시작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이야기. 그럼에도 모른 척해주던 배려 덕분에 관계는 유지된다. 우리는 그렇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켰다는 사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연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전히 나만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장면이 있다. 2001년 11월, 수능이 끝난 뒤였다. 그해는 불수능이라 불렸고, 교실에는 재수를 택한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둘 늘어갔다. 나 또한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을 식히기 위해, 빨간 등대가 보이는 방파제로 나갔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교실보다는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방파제 끝에 선 빨간 등대에는 이름과 이름을 하트로 묶은 낙서, ‘누구 왔다 감’ 같은 유치한 흔적들이 빼곡했다. 누군가의 마음이 남기고 간 자국들이었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서서, 아무 의미 없는 글자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찬 바람이 불던 방파제 끝에서 나는 우연히 그녀를 봤다. 혼자 울고 있었다. 파도 소리에 묻혀 울음은 끊어졌다 이어졌고, 나는 몇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그때도 다가가지 못했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유는 너무 많았다. 나중에야 들었다. 그녀도 재수를 했다고. 그 장면은 지금도, 말해지지 않은 채 겨울 속에 남아 있다.
〈하나와 앨리스〉를 다시 보면, 벚꽃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교복 주머니 속 구겨진 편지와 그녀 앞에서 망설이던 발끝,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방파제의 뒷모습이다. 그 시절의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서툰 연기로 그 계절을 버텼다. 돌아보면, 그때 내가 끝내하지 못한 말들 덕분에 내 인생은 지금의 방향으로 흘러왔다. 말하지 못한 마음이야말로 내가 가장 오래 연기해 온 진심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