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추억
이번 겨울, ‘추억’이라는 단어는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이가 더해질수록 마음은 자꾸 오래전의 시간을 들춰보게 된다.
어제는 동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흩어져 살던 우리가,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뭉쳤다. 지도로 보면 딱 알맞은 도시였지만, 마음으로는 더 가까운 곳처럼 느껴졌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이 먼저 반가움을 건넸고, “오랜만이야”라는 말은 정말 오래 품어온 인사였다.
한겨울의 추위는 수다로 데워져 식을 줄을 몰랐다. 이동하는 동안의 찬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누군가 한마디를 꺼내면 다른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았고, 하나의 장면이 떠오르면 또 다른 기억이 덧칠되듯 겹쳐졌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리듬이 너무 익숙해서, 수십 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우리는 여전히 익숙했다. 얼굴에는 각자의 세월이 쌓였지만, 말투와 반응은 그 시절의 우리를 닮아 있었다. 서로의 삶은 분명 달라졌고, 각자 감당해 온 무게도 달랐을 텐데도 같은 자리에 앉으면 금세 옛날로 돌아가곤 했다. 그 순간 문득 다들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게 무사히 모여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는 굳이 예를 갖추려 애쓰는 분위기가 없었다. 편한 사람들 앞에서 괜히 단정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오히려 마음이 더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눈가가 붉어지면 이유를 묻지 않고도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 덩달아 눈물짓고, 또 누군가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위로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위로가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어제 다시 확인했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변색되지 않은 채 내 삶의 자양분이 되어왔다는 것을. 바쁘고 거친 날들이 이어질 때도, 마음이 지치고 흔들릴 때도, 그 시절의 장면들은 조용히 나를 붙들어 주었다. 추억은 지나간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살게 하는 힘으로 남아 있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이 단단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훗날 어제의 만남 역시 또 다른 추억으로 기록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가 나눈 웃음과 눈물, 서로의 안부를 묻던 목소리, 그리고 언젠가 오늘을 다시 꺼내 보며 미소 지을 미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친구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함께 응원하는 시간들이 무엇보다 소중했다. 자주 보지 못해도, 오래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결국 다시 같은 온도로 만나 서로를 덥혀줄 수 있었다. 겨울은 차갑지만, 어떤 만남은 그 겨울을 이길 만큼 따뜻하다는 걸 어제 알았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앞으로의 계절을 견디게 해 줄 거라는 믿음도 함께 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