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덜 빠르게 내려가야만 해

추억, 썰매의 어제와 오늘

by 플루토씨

어릴 때 겨울은 실험실이었다.

눈썰매장은 놀이터가 아니라 연구 현장이었다.


어디서 출발하면 더 빠른지, 눈이 눌려 단단해진 곳은 어디인지,
눈 위에 얇게 얼음이 잡힌 날과 푹신한 날의 차이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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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모르게 물리학자가 되어 있었다.

교과서보다 먼저 배운 건 중력과 마찰의 합작이었다.

경사가 조금만 있어도 중력은 성실하게 일을 했고,
마찰이 줄어드는 순간 썰매는 약속이나 한 듯 속도를 냈다.


그걸 느끼는 게 좋았다.

몸이 먼저 알고, 머리는 나중에 따라왔다.

그때의 목표는 명확했다.

더 빠르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동네 언덕에서 제일 위, 눈이 가장 단단한 출발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기서 타면 진짜 빠르다”는 정보는
이미 공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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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건 집단 지성이라기보다
집단 가속 실험이었다.


썰매는 출발하자마자 방향을 잃었고, 나는 제어할 생각도 없었다.
속도가 붙으면 붙을수록 소리는 커졌고, 웃음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넘어졌고, 눈 속으로 굴렀고, 장갑 안으로 눈이 들어왔다.

그런데도 다시 올라갔다.

마찰이 커지는 눈을 털어내고
다시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땐 몰랐다.
가속에는 언제나

감속을 준비하는 지점이 필요하다는 걸.




지금은 아이들과 썰매를 탄다.
같은 겨울, 같은 언덕인데
시작부터 계산이 달라진다.


“여긴 너무 가파르다.”
“여긴 멈출 데가 없다.”
“저쪽이 조금 덜 미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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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묻는다.
왜 여기서 타지 않느냐고.
왜 더 위로 안 올라가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위치를 옮긴다.


이제 썰매를 탈 때 내가 먼저 보는 건
속도가 아니라 끝지점이다.


어디서 멈출 수 있는지, 누가 서 있는지,
다음 썰매와 충돌할 가능성은 없는지.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발이 먼저 내려간다.

어릴 적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행동이다.
일부러 마찰을 늘리는 행위.
속도를 깎아내는 선택.


그렇게 깨달은 법칙이 있다.

중력은 변덕이 없고, 가속도는 정직하며,
마찰은 언제나 속도를 방해한다는 걸.


그런데 아빠가 되고 나서는 이런 생각을

조금은 다른 시선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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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에서
최대 속도가 정답은 아니라는 걸.

과학은 늘 이렇게 말한다.
조건이 같다면 결과도 같다.


하지만 삶은 다르다.
조건은 같아 보여도
목표가 바뀌면 해석이 달라진다.


어릴 때의 나는 중력을 신뢰했고,
지금의 나는 아이의 손을 더 신뢰한다.


아이와 함께 타는 썰매는 이상하게 더 느리다.
물리적으로는 같은데 체감 속도는 다르다.


그건 아마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브레이크를 잡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웃음은 더 길어지고,
기억은 더 오래 남는다.

겨울은 여전히 미끄럽다.

중력은 여전히 아래로 작용하고,
마찰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달라진 건 내가 내려가는 방식이다.


어릴 때 겨울은
얼마나 빨리 내려갈 수 있는지의 문제였고,
지금의 겨울은 어떻게 함께 내려올 것인지의 문제다.


겨울에는,
어쩌면 이렇게 타야만 한다.

덜 빠르게.
하지만 더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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