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명절 하면 역시 성룡!

영화 <취권 2>

by 달빛바람

1994년 그리고 마산


1994년 설 연휴를 앞둔 마산은 바닷바람 끝에 실린 소금기와 생선 비린내가 골목마다 옅게 스며들던 도시였다. 항구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선박들이 묵직하게 정박해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작은 어선들은 어시장으로 생선을 쏟아냈다. 새벽마다 얼음 깨지는 소리와 경매인의 고함이 뒤섞였고, 낮이 되면 시장통은 은빛 비늘과 붉은 고무대야로 번들거렸다. 그해 겨울의 끝자락은 유난히 투명했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세상이 조금씩 낯설어지기 시작하던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키는 자라는데 마음은 괜히 삐딱해지고, 괜히 이유 없이 심술이 나던, 사춘기의 문턱. 나의 세계는 단순했다. 집과 학교, 그리고 태권도장. 하얀 도복이 흠뻑 땀에 젖도록 관장님의 구령에 맞춰 발차기를 하던 반복된 오후들. 그 지루한 일상에 숨통을 틔워준 건 막내 삼촌이었다. 막내 삼촌은 유일한 친조카였던 나를 유독 아꼈고, 부모님이 탐탁지 않게 여기던 오락실과 만화방에도 슬그머니 데려가 주었다.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서 동전을 넣고 버튼을 두드리던 시간, 만화책을 한 권씩 넘기며 몰래 웃던 오후들. 그런데 그날 삼촌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구경을 예고했다.


“니 성룡 아나? 마산 싸나이가 이거는 꼭 봐줘야지!”


그 시절 성룡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텔레비전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몸짓, 웃음과 고통이 한꺼번에 뒤섞인 얼굴, 넘어지면서도 기어이 일어나는 리듬. 그것은 열두 살 소년에게 일종의 신세계였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극장인 연흥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건물을 한 바퀴 감아 돌며 줄을 서 있었다. 목도리 속으로 입김을 불어넣으며 차례를 기다리는 어른들, 새 운동화를 신고 발끝을 까딱거리던 아이들, 호주머니에서 꼬깃한 지폐를 꺼내 다시 세어보는 아저씨들. 설날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기대가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삼촌이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야야, 오늘 사람 와 이리 많노? 표 끊을 수는 있겠나.”


나는 괜히 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표를 못 끊는다는 가능성은 아예 상상 밖이었다. 성룡을 못 본 설날은 설날이 아니라고, 어린 마음은 이미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극장 외벽에는 손으로 그린 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다. 실제 배우보다 훨씬 넓은 어깨와 번쩍이는 눈빛, 과장된 근육을 가진 인물이 주먹을 움켜쥔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명절의 또 다른 상징 같았다.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한 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름, 성룡.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차례를 마치고 상을 물리면 엄마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선언처럼 말했다.


“이제 성룡 한다. 채널 틀지 마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거실은 작은 극장이 되었다. 가족이 한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같은 장면을 바라보며 동시에 웃고 놀라는 시간. 성룡은 그렇게 우리 집 명절의 공식 프로그램이 되었다.



​취권의 매력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Golden Harvest' 로고가 뜨자 객석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날의 영화는 <취권 2>였다. 극장은 같은 장면을 공유하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성룡이 연기한 황비홍은 술을 마시면 강해졌지만, 진짜 매력은 그 연약함에 있었다. 그는 늘 먼저 맞고, 벽에 부딪히고, 바닥을 구르며 한계를 드러냈다. 하지만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났다. 시장통 싸움 장면에서 나는 의자 손잡이를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아이고, 잡히겠다…”


삼촌 역시 낮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저라다 다리 잘리면 우짜노…”


마지막 공장 장면에서 뜨거운 석탄 위를 구르며 이를 악물던 그의 고통은 연기가 아니라 실재였다. 쓰러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좋았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그의 액션에는 버스터 키튼의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싸우는 도중 발을 헛디디고, 손에 쥔 물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얻어맞고 나서야 상황을 수습한다. 실수와 고통이 지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는 그 고통을 웃음으로 바꿔버린다. 그 웃음에는 오기가 아니라 삶이 묻어 있었다



​인생이라는 영화의 진짜배기, NG 컷


​성룡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 진짜배기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NG 컷에 있다. 그 안에는 멋진 영웅은 사라지고, 엉뚱한 곳에 부딪혀 코를 움켜쥐거나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가면서도 엄지를 치켜세우는 한 남자가 있다. 화려한 액션은 사실 수십 번의 헛발질과 엉덩방아 끝에 얻어낸 단 1초의 기록이었다. 완벽을 위해 기꺼이 망가지는 그 투박한 정직함이야말로 그를 '진짜배기'로 만들었다.
​실패의 흔적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삶의 문체! ​살아보니 인생도 비슷했다. 우리 삶은 근사한 장면보다 내놓기 부끄러운 NG 컷들로 가득하다. 준비했던 일이 꼬이고, 말실수에 밤잠을 설치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풀 죽어지내는 시간들. 우리는 이 오답 노트를 편집해버리고 싶어 하지만, 성룡의 영화가 그러하듯 삶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그 실패의 흔적들이다. 무릎이 깨져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무모한 고집이 인생의 문체를 만든다. 이제 나는 그가 얼마나 높이 날아오르는지보다 얼마나 아프게 떨어졌는지를 먼저 기억한다. 넘어짐은 끝이 아니라 다음 장면을 위한 준비였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와의 연결고리 그리고 어머니


집에 돌아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아버지 앞에서 장면을 흉내 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놈 아직도 그라나. 니 엄마랑 연애할 때, 우리도 극장 가서 그 사람 영화 봤다 아이가. 79년인가 그랬다.”


그 영화가 바로 취권 1이었다.


“엄마도 좋아했나?”


내가 묻자,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했지. 니 엄마가 웃음이 참 많다 아이가.”


그날 나는 처음으로 부모에게도 젊은 날의 장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들도 어두운 극장 안에서 같은 인물을 보며 놀라고 웃었고, 어쩌면 서로의 손을 더 가까이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변한 것과 남는 것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지금, 마산의 연흥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동네마다 성업하던 비디오 대여점도 자취를 감췄다. 영웅도 이제 나이를 먹었다. 성룡은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석탄 위를 구르지 않으며, 어느덧 대역과 CG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 중이다.


​내 인생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어머니는 여섯 해 전 세상을 떠났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엄마의 웃음소리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또렷하다. 이후로 명절의 공기는 분명히 조금 무거워졌다. 나는 이제 마흔을 조금 넘겼고, 아직 혼자다. 설 연휴가 되면 마산에 내려가 차례를 지내고,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조용히 밥을 먹는다. 말은 많지 않지만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어쩐지 소중해진다. 식사를 마친 뒤 항구를 한 바퀴 돌며 바다를 바라본다. 바람은 예전과 비슷한데 함께 걷던 사람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서울로 향한다.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으면,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거치대에 올려놓는다.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익숙한 선택을 한다.


“역시 명절이면 성룡영화지.”


어쩌면 내가 여전히 성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할지 모른다. 그는 매번 한계를 드러내지만 끝내 주저앉지 않는다. 취한 듯 흔들리면서도 마지막에는 온몸을 던져 상황을 감당한다. 세월이 바뀌고, 극장이 사라지고, 엄마의 자리가 비어도, 그는 스크린 안에서 변함없이 같은 리듬으로 싸운다. 서울역이 가까워질 무렵, 객차 안은 어둑해지고 유리창에 도시의 불빛이 겹쳐 비친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래, 또 한 해 버텨보자. 성룡처럼.”


​화면 속에서 그는 또 맞고, 또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창밖으로 스치는 들판과 어둑한 불빛이 스크린 위 장면과 겹친다. 그의 싸움은 여전히 정복이 아니라 버팀이다. 웃음은 여전히 고통 위에 서 있다. 서울역이 가까워질 즈음,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삶이란 결국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그의 몸짓은 내게 단순한 액션이 아니다. 그것은 붉은 벽돌 극장의 기억이고, 줄 서 있던 삼촌의 손이고, 웃음이 많던 엄마의 젊은 얼굴이다. 설 연휴마다 나는 고향을 다녀오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늘 그를 틀어놓는다. 그렇게 해야만 과거와 현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아직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그 웃음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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