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학교>
먼저 고백부터 하자면 나에게 중고등학교 졸업식은 젖고 찢어진 잡지 종이처럼 너절하게 남아있다. 90년대 후반의 졸업식 풍경은 해방감보다는 기괴한 해프닝에 가까웠다. 운동장 밖을 나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터지는 밀가루 포대와 달걀 세례, 그리고 가위질로 갈기갈기 찢긴 교복 상의. 그것은 억눌린 10대의 정당한 저항이라기엔 너무도 자극적이었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의례라기엔 몹시도 추악한 관습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고등학교 졸업식은 그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졌다. 교문 앞에서는 소지품 검사가 이뤄졌고, 행사가 끝나자마자 학교 밖으로 신속히 나가달라는 경고 방송이 스피커를 때렸다. 당시의 학교는 학생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소동을 외부로 밀어내기에 급급했다. 그 시절 우리에게 학교란 통제와 탈출의 공간이었을 뿐, 누구도 그곳을 정서적 안식처라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척박한 경험의 기억 때문일까.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마주했을 때 느낀 전율은 단순한 민족적 동질감이나 비극적 역사의 회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러나 늘 무의식적으로 갈구해 왔던 ‘교육 공동체’의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 홋카이도 조선학교의 풍경은 낯설지만 뜨거웠다. 그곳에는 매뉴얼화된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있고, 수치화된 점수가 아닌 ‘관계’가 흐른다.
영화의 한 대목을 복기해 본다. 동료 교사와 결혼한 젊은 남자 담임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쑥스러운 듯 개인적인 소식을 전한다.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다는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다. 이 짧은 언급에 교실은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뒤덮인다. 개구쟁이 남학생들은 칠판 앞으로 달려 나가 선생님을 껴안으며 '아버지'라고 외친다.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쁨을 가감 없이 분출하는 이 장면은 내게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그저 지루한 수업을 진행하고 문제시되는 학생들을 매로 다스리는 엄격한 관리자였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단순히 수업만을 진행하는 강사가 아니다. 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공유하고, 그 기쁨에 온몸으로 반응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어른’이자 ‘삶의 선배’이다.
이러한 관계의 밀도는 졸업식이라는 이별의 장에서 그 결정체로 드러난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통과한 졸업생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홀가분한 퇴장’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들에게 학교는 입시라는 단기 목표를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정거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서로의 성장을 입체적으로 지켜본 삶의 터전이었다. 졸업식장에서 터져 나오는 훌쩍임은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한 인격체로 받아주었던 견고한 관계망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것에 대한 정직하고도 처절한 슬픔이다.
문득 15년 넘게 몸담아온 사교육 현장과 지금의 교육 지형을 돌아본다. 최근 SNS를 장식하는 화려한 졸업사진들 이면에서 묘한 공허함이 읽히기도 한다. 차별 방지라는 명목 아래 우등생을 격려하던 수여식은 자취를 감췄고, 각종 범죄 예방을 이유로 졸업앨범에서 교사의 얼굴조차 싣지 않는 학교가 늘고 있다. 행정적 안전과 형식적 평등이라는 가치는 사수했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관계의 얼굴’은 지워졌다. 교사는 민원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학생과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학생은 학교를 스펙 쌓기를 위한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나 졸업의 본질은 결코 단절에 있지 않다. 모든 이별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끝에 맞이하는 이별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단단해졌는지를 증명하는 의례이다. 지난 15년 동안 내가 사교육이라는 치열한 현장에서도 매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한계를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그 뒷모습이야말로 교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교사에게도 뼈아픈 성장의 기회이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응시하며 나는 내가 전달한 지식이 과연 그들의 삶에 유용한 갑옷이 되었는지 혹은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었다는 '관계의 기억'이 그들의 내면을 얼마나 따뜻하게 채웠는지 자문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 역시 정체된 권위자가 아니라 변화하는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갱신한다. 졸업은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더 큰 운동장으로 나가는 문인 동시에 교사가 자신의 소명을 재확인하는 성찰의 관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헤어지며 성장한다.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학교>가 보여주는 눈물겨운 졸업식은 이별이 곧 상실이 아님을 웅변한다. 허나 이 헤어짐이 축복인 이유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졸업식은 그래서 성장의 발판이 된다.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끝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을 키워낸 토양에 대한 깊은 경의이다. 그 단단한 감정적 뿌리를 가진 아이들은 세상 어떤 풍파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나의 학창 시절 졸업식은 비록 차가운 밀가루 가루 속에 파묻히거나 삼엄한 경계 속에 쫓겨나듯 너절하게 끝이 났지만 지금 학생들의 졸업은 다른 무늬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관계가 남는 교육이란 결국 서로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인장을 남기며 이별의 순간조차 성장의 자양분으로 치환하는 일이니까. 매년 졸업 시즌이 되면 다시금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우리 교육이 분실한 가장 소중한 조각인 ‘사람 사이의 온기’를 그곳에서 목격하기 때문이다. 비정한 경쟁 사회로 내던져지기 전,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완벽한 문제풀이 기술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네 뒤에 우리가 있다’는 단단한 확신이다. 그 뜨거운 결속의 현장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계절,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나 자신의 성장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준 영향력이 세상으로 번져나가는 가장 눈부신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