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반짝임'에 대하여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

by 달빛바람

개요 코미디 미국 117분

개봉 2004년 2월 13일

감독 낸시 마이어스 Nancy Meyers


1. Opening 오프닝


영화는 밤의 도시가 뿜어내는 차갑고도 눈부신 조명 아래, 미끈하게 잘 빠진 젊은 육체들의 행진으로 시작한다. 누군가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줄을 서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만, 젊음이라는 통행증을 가진 이들은 윙크 한 번에 닫힌 클럽 문을 열어젖힌다. 그 활기찬 무성함 위로, 낮게 깔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 해리 샌본(잭 니콜슨)의 고백이다.

"젊은 여자들이 원하는 건 아주 단순하고 달콤한 만족감이다. 그런데 그 눈부신 반짝임은 어느샌가 세월이라는 모래바람에 묻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오직 그 '반짝이는 것들'만 쫓아왔다. 그래서 그 방면에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리는 시간을 이기려 하는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들에만 인생의 목적을 둔 사람이다. 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몸을 외면한 채, 여전히 갓 피어난 꽃의 향기만을 탐한다. 하지만 영화는 첫 장면부터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그토록 붙잡으려 하는 그 '달콤한 순간'은 실은 잡는 순간 증발해 버리는 안개 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해리는 그것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포장하지만, 사실 그의 목소리 끝에는 형언할 수 없는 허무가 매달려 있다. 그 허무가 그를 기묘한 소동극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다.



2. 기묘한 동거와 사각관계


해리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20대 여성만을 타깃으로 삼는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취향의 반복. 인상적인 것은 현재 여자친구인 마린(아만다 피트)이 해리보다 훨씬 더 뜨겁게 그를 원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마린은 해리가 가진 '경제적 풍요로움과 여유'를 해리는 마린이 가진 '생의 활기'를 서로 교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뒤엉켜 사랑을 나누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향했을 때, 예고 없이 불이 켜진다. 그곳엔 집주인인 에리카(다이앤 키튼)와 그녀의 동료 조이가 서 있다. 자기 집 냉장고를 속옷 차림으로 뒤지고 있는 늙은 사내를 보았을 때, 에리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일종의 침범에 대한 공포였다. 강도라고 오인한 에리카!


딸의 남자친구라고 하기엔 너무나 나이 들어버린 남자 앞에서 에리카는 무너지는 상식의 벽을 간신히 붙잡으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해리와 에리카, 이 두 사람은 극과 극의 좌표에 서 있다. 한 사람은 끊임없이 밖으로 나돌며 타인의 젊음을 수집하고, 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견고한 성을 쌓고 글 속에 숨어 지낸다.


조이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묘한 동거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두 존재가 처음으로 같은 공기를 마시는 법을 배우는 과정처럼 소란스럽고 문제투성이이다. 에리카가 느끼는 골치 아픈 두통은 어쩌면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3. 몸이 먼저 알아채는 생의 비명


해리는 마린과 함께 리듬을 타며 춤을 춘다. 겉으로는 여전히 청춘의 활기를 흉내 내고 있지만, 그의 심장은 이제 그 거짓말을 감당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른다. 갑작스레 찾아온 심장마비. 그것은 해리가 평생 외면해 온 '시간의 성적표' 같은 것이다.


당황스러운 사건 속에서 에리카가 움직인다. 그녀는 차가운 지성으로 글을 쓰는 작가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뜨겁게 타인의 생명을 붙잡는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가슴을 압박하는 손길 사이로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물러난다. 해리는 에리카의 숨결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단순한 '딸의 남자친구'와 '집주인'에서, 생명을 빚진 자와 구원한 자의 밀도로 바꾸어 놓는다.


이 관계성에 더욱 긴장감을 주는 건 해리의 잘생긴 담당의사 줄리안(키아누 리브스)의 등장이다. 줄리안은 에리카의 팬이라 말하며 그녀의 문장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해리가 젊은 육체만을 쫓는 동안, 에리카는 누군가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글을 써왔던 것이다.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던 해리가 다시 쓰러졌을 때, 그는 병원이라는 차가운 공간 대신 에리카의 온기가 남아 있는 집을 택한다. 죽어도 돌아가기 싫다는 그 고집은, 어쩌면 난생처음 느껴본 '돌봄'이라는 다정함에 기대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연장된다.



4. 엇갈리는 마음들


에리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젊고 매력적인 의사 줄리안의 등장은 이 고요한 별장에 묘한 파동을 일으킨다. 줄리안은 에리카를 '나이 든 여자'가 아니라 '성숙하고 매력적인 여인'으로 대한다. 평생 누군가의 엄마로, 혹은 홀로 선 작가로만 살며 굳어버린 에리카의 마음속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곁에서 해리는 묘한 질투와 패배감을 느낀다. 그는 실제로는 에리카에게 끌리면서도 애써 그 마음을 외면한다. 그 사이 딸 마린은 슬쩍 엄마의 마음을 떠본다.


이 엉킨 실타래 같은 사각관계는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네 가지 욕망의 얼굴들이다. 보호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마음, 그리고 누군가의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다.


해리와 에리카는 서로 투닥거리며 상대의 아픈 곳을 건드린다. 하지만 그 통증은 비난이 아니라 이해로 가는 통로가 된다. 남의 시선에 갇혀 살던 두 사람이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민낯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이 이들의 서툰 연애에 마음을 뺏기는 건, 그 서툼 속에서 우리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5. 어른이라는 거대한 착각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는 키아누 리브스의 조각 같은 얼굴이나 아만다 피트의 생기 넘치는 육체가 아니다. 잭 니콜슨의 깊게 파인 주름과 다이앤 키튼의 소녀 같은 웃음 속에 그 위로가 있다. 두 사람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나이 든다는 것이 단지 쇠퇴하는 과정이 아니라 더 깊게 사랑할 준비를 마치는 과정임을 증명해 낸다.


특히 다이앤 키튼이 연기한 에리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공했지만 외로운'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일에서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빈틈없지만, 혼자 남겨진 밤이면 텅 빈 침대 위에서 "나도 아직 여자이고 싶다"는 마음을 삼키며 늙어가는 처지를 한탄한다. 누군가에게 설레고 싶고, 누군가의 시선 속에 머물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을 그녀는 너무나 투명하고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작년 10월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되면 감정이 무뎌진다고 믿는다. 흔들리지 않고, 크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며, 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우아한 어른의 덕목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에리카를 보며 우리는 깨닫는다. 그 우아함이란 사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덧칠한 두꺼운 화장 같은 것이었음을 말이다. 거리에서 젊은 연인들이 입을 맞추는 장면을 보며 고개를 돌리는 건, 그들이 무례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잠자던 갈망이 깨어날까 봐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른다.


해리는 에리카의 그 단단한 성벽을 단숨에 무너뜨린다.

"당신은 저 벽에 걸린 그림 속 여인 같아요.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고 안전한 곳에 숨어 있군요. 하지만 이제 그만 마음을 열어봐요. 강하면서도 열린 마음을 가진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닐 수 있어요."

이 말에 에리카가 그토록 당혹스러워 한 건, 그것이 너무나 정확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온갖 다정한 수식어를 붙여주었으면서, 정작 거울 속의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사랑받아 마땅하다"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6. 다시, 빗속에서 소리 내어 웃는 법


결국 사랑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사회적 지위, 나이에 걸맞은 체면, 상처받지 않으려는 비겁한 방어기제 같은 것들이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이 무거운 주제를 결코 끈적거리거나 부담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대신 아주 경쾌하고 다정한 손길로, 두 중년의 연애를 소꿉놀이처럼 귀엽게 그려낸다.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파자마를 입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귀엽다"라고 속삭이는 장면들. 마주 보는 시선 속에서 숨이 가빠지고, 마침내 온몸으로 환희를 표현하는 그 순간들. 이것은 결코 인생의 전반전을 달리는 청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생의 뒷모습을 아는 이들이 나누는 사랑이기에, 그 웃음은 더 뜨겁고 그 눈물은 더 맑다.


우리는 때로 평온함이 성숙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성숙은 내 안의 '칭얼거리는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외롭다고 소리치고 싶을 때 소리치고, 보고 싶을 때 달려가고, 비 오는 거리에서 춤추고 싶을 때 춤추는 것. 어쩌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유일한 기술은 바로 '진심을 다해 서툴러지는 법'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우리 안의 에리카와 해리를 만난다. 거울 속의 주름을 보며 한숨짓던 손길을 멈추고, 다시 한번 심장을 뛰게 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꿈꾸게 된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늦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오직 '너무 늦었다'는 그 차가운 생각 하나뿐이다.


담백하지만 뜨겁게, 이 영화는 우리에게 생의 찬가를 건넨다. 당신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든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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