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
시골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깊게 남아있는 일이 있다.
농촌에는 농사일이 바쁜 봄이나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일손을 돕는다."는 속담처럼 일손이 많이 모자란다.
고학년이 되면 고사리 손으로 일손 돕기에 나선다.
보리베기가 한창인 여름, 학교 근처 농가로 자원봉사를
나갔다.
평소에 집에서는 부엌일이나 청소, 동생 돌보기등
주로 집안일을 도왔다. 바깥일 농사일은 오빠도 있고
남동생 둘이 있어 나까지 오지 않았다.
미리 안전교육과 베는 방법을 교욱 받고 실전에 들어간다. 낫으로 보리베기를 시작하는데 생전 처음으로 하는 보리베기 몇 번 조심스레 베어서 논에 보리를 내려놓았다.
낫이 얼마나 잘 드는지 쓱싹쓱싹 재미가 있었다.
방심했는지 낫이 보리를 지나 내 왼손 새끼손가락까지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피는 옷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빨간 피를 보며 놀라고 무서웠다.
선생님께서 재빨리 와이셔츠를 찢어 감아 지혈을 시키고
어느 정도 지혈이 되자 손수건으로 돌돌 감아 예쁘게
마무리해 주셨다.
지금이라면 외과에 가서 상당히 꿰매었을 테지만 그때는
지혈시키고 소독약과 만능연고를 바르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그 이후 봉사활동은 꿈도 못 꿨다. 보리 베라고 했더니
손가락을 베었다며 놀림을 당했다.
그 시절 담임선생님께서도 많이 놀라셨다.
지금 생각하면 교대 갓 졸업하시고 시골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께서도 예상하지 못한 응급사태였던 것이다.
두고두고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곤 한다. 상처가 아니라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겨울엔 보리싹 밟기, 봄에는 보리베기, 여름에는 모내기,
가을에는 벼베기등 환경에 맞는 봉사활동으로 돕고
도움받는 상부상조의 정신이 싹트게 되었다.
하얗게 눈이 쌓이면 가까운 학교 근처 산으로 토끼몰이를
하며 체력과 놀거리를 함께 즐겼고, 여름철엔 냇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놀았다.
농촌의 삶이 어른들은 힘들고 심난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사방이 놀거리, 흥밋거리였다. 지금처럼 놀이동산, 게임등
의 현대식 놀거리는 없었지만, 썰매 타기, 얼음 지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등 잊지 못할 놀이추억이 가득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줄넘기등을 주로 즐겼고, 남학생들은 구슬치기, 딱지치기, 연날리기등을
주로 했었다.
지금도 국민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호칭이 하나로 통일된다. 그 시절처럼 ㅇㅇ야!로.
중학교 친구들에겐 같은 호칭이 안 나온다.
좀 커서 만났다고 ㅇㅇ씨!로 불려진다.
직장에 찾아와서도 근무하는 나를 보고 ㅇㅇ 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직원들이 하하 호호 웃음을 참지
못한다.
작은 딸아이 초등 2학년 때 학부모 회의에 참가하느라
교실을 방문한 적 있었다. 참새떼의 합창처럼 아이들의
얘기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그 속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는
선생님께 존경심이 절로 올라왔다.
꿈 많고 아무 걱정 없이 해맑던 국민학교 시절,
그 친구들, 그 모습들, 그 추억이 그리워진다.
하교시간에 학교 앞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요즘 부모들은
하나나 둘인, 자녀들을 픽업하기 위해 교문에 일렬로
차가 대기 중이다.
등하교 길에서 친구와 나누는 즐거운 추억거리를
깡그리 앗아가는 일이디. 장난치며 티 없이 웃는 학생들을
보며 그 추억만큼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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