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첫 아이를 출산한 지 26개월이 흘렀다.
10개월의 임신. 출산을 하고 난 뒤 2년이 넘게 육아 휴직을 와이프가 하였다. 본인 커리어를 쌓고, 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한 30대 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어쩌면 전부를 포기하였다. 집중했고, 매진했고, 온몸을 갈아 사라질 만큼 전부를 아이를 위해 헌신했다. 헌신이라는 표현이 다소 강할 수 있지만 내가 바라본 와이프는 헌신한 게 맞다.
헌신과 희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에 따른 보상과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이 결국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나는 다르고 아니라고 하지만 진짜 속을 들여다봤으면 한다. 모두들 큰 성공과 성취를 이뤄 부모가 넣은 수고가 그대로 보상으로 뒤따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 어쩌면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어릴 적부터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외국유학연수를 가고, 숲 유치원 등 주위 사람들이 값비싼 교육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우리 아이가 혹시 뒤처지지 않을까? 빨리 막차를 타야 되지 않을까? 동요하게 되는 게 부모 마음이다. 내가 사교육 현장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 가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이 갈림길에서 부모는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고민을 나와 와이프도 동일하게 하였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이 순간. 방향을 바로 세우고 다짐과 약속을 하기 위한 글일 수도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경제위기는 이제 귀가 닳도록 들어서 모두가 무감각할 것이다. 가난한 자와 부자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또 출생률은 최대로 저조해 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세상이 이처럼 암울한데 아기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길러야 할까? 기후 위기가 이렇게 심각한데? 나만 잘살면 되는 걸까? 부만 팽창하면 될까?
이에 나는 베이직.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이 공동체이다. 현재 우리는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 아파트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 더 넓은 집. 정리된 길과 상가들. 커뮤티니 시설과 산책로가 다 있다. 하지만 외롭다. 어린이집에서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본인 집을 초대해서 편하게 만나는 사람은 드물고, 조심스럽다. 만나면 즐겁게 하하 호호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허물없이 다가가긴 사실 어렵다. 신도시다 보니 다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적고 모두 이곳저곳에서 모여들었다. 왜 자꾸 나는 외로울까?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괜찮을까?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이들 대부분이 자유롭게 놀기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끼고 살고 있고,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모두들 사교육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저녁 늦게 귀가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비싸고 값비싼 장난감과 옷을 입으며 본인을 뽐내며 산다. 이를 바라보며 알게 모르게 비교하게 되고 웅크리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내가 경험했던 '마포구 성미산마을 공동체'가 더 그립고 가고 싶다. 그곳에서 삶은 베이직 그 자체였다. 모두들 사교육을 멀리하고,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거의 중 1이 되었을 때 사주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돌봄을 기본으로 서로 마실(이웃집에 놀러 가거나 본인집을 초대해서 지내는 것)이 일상으로 되어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게 불편하지 않은 경계가 느슨한 집단 공동체 마을이다. 아빠의 육아 참여는 기본이고, 중년의 남성들이 서로 육아를 하며 친구가 되어 함께 운동도 하고 가끔 술을 마시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함께 풀며 편한 이웃으로 지낸다. 먹거리는 인스턴트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보다 두레생협을 이용하며 윤리적 소비를 하기 위해 애쓰고 모두들 동네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별칭을 부르며 수직적이기보다 수평적으로 아동들이 본인의 소리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공동체이다. 어쩌면 아직 직접 살아보진 못했기에 현실과 이상은 다를 수 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오해와 상처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 이 글을 읽으며 이러한 의문이 들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방금 말한 공동체가 좋았다면 당장 이사 가서 살지 왜 망설이지?라고 물어본다면 사실 솔직하게 여전히 고민하며 염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비판은 하지만 사실 지금 살고 있는 넓은 집과 편의 시설을 포기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또 현실적으로 혼자 외벌이로 일을 하고 있는 형편이라 지금 이사를 간다면 높은 전세금을 부담하고 좁은 집에서 살아야 된다. 지금 구입한 모든 짐도 반 이상은 버려할 것이다. 복잡한 문제들이 여기저기 얽혀있다.
"너 핑계이고 우선순위 문제 아니야?"라고 말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같은 뜻을 지향하는 사람이 모여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가 함께 사는 건강한 공동체의 삶을 경험할 때 이 세상 마냥 더럽고 지저분하기만 하고 경쟁만 하는 사회는 아니었구나 여길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분명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잘 살고 있을 것이기에 섭부른 나의 판단이 경솔할 수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길 바란다. 다만, 내가 경험한 공동체가 너무 커 보여 그럴 수 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동네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동네 축구도 참여했었고, 어린이집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호의적으로 관계 맺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부모 모임은 80% 이상 참여하고 있다. 또 옆집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끔 맛있는 먹거리를 전하기도 했다. 친해지고 싶지만 불편해 할 수 있어서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어디를 살더라도 모두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기준과 정의도 다르겠지만, 함께 연대하며 사는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출발이 되어 육아를 한다면 고립되지 않고 이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물결이 되지 않을까? 이곳저곳 자본주의 시대에 돈으로만 해결하기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 냄새나는 끈끈한 포근한 정이 넘치길 바라본다. 또 보이는 것에 혈안 되기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아이도 그렇게 키웠으면 한다. 모두들 위로가 필요하다. 함께하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선뜻 응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