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아이와 북한을 탈출한 엄마
엄마의 경험이 너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들은 요즘 부쩍 궁금증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외가의 부재를 본인도 느끼는지 모르겠다. 나의 가족과 고향 그리고 북한에 대해 자주 물어본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의 엄마는 어디 있어?”
“북한에 있지. 엄마 살던 고향에 살고 있어.”
“엄마는 왜 엄마의 엄마를 만날 수 없어?”
“사정이 있어서”
“엄마는 왜 북한에 갈 수 없어?”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북한은 어떤 나라인지, 왜 나는 거기서 도망쳐야 했는지, 왜 다시 돌아갈 수 없는지. 그것은 참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게 참 복잡한데, 엄마가 요즘 글을 쓰고 있어. 알도가 나중에 한글을 배워서 엄마의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어. 알도한테 설명해 주고 싶은데, 엄마가 아직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방법을 못 찾아서 글을 쓰고 있어. 나중에 꼭 읽어줘.”
“그럼 엄마는 어떻게 북한에서 나왔어?”
“엄마는 도망쳤어. 북한 옆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강을 하나 끼고 국경을 접하고 있어. 엄마는 수영을 잘해. 알도가 좋아하는 닌자처럼 수영도 하고 악당 군인들을 피해 다니며 도망쳤어.”
아이는 잠시 침묵했다.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들은 건지 만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는 이해 못 할 것 같은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아이는 그 나의 때 또래들이 할 수 있는 닌자와 슈퍼히어로 이야기를 했다.
“닌자 책 언제 사줄 거야? 닌자와 슈퍼히어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닌자 책은 내일 사줄게. 닌자와 슈퍼히어로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는 알도가 생각해 보면 좋겠어.”
아이의 동심이 가득한 이런 질문이 나는 부럽기도 하고,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 줄 수 있는 부모가 된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나는 닌자와 슈퍼히어로를 잘 몰랐다. 그렇다고 아이와 같이 앉아 닌자와 슈퍼히어로를 함께 보며 어릴 적 동심을 회복해서 아이와 수준에 맞는 대화를 하기에는 내가 참 부족했다. 그 역할을 나는 남편에게 양보했다.
남편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자유세계에서 보낸 깨알 같은 시간들, 자유세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쌓아 온 경험과 지식, 그리고 문화적 소양을 아무리 공부해도 따라가는 게 한계가 느껴졌다. 내가 어린 시절을 뛰어넘어 어른들의 세계에서 북한이라는 '야생의 세상'을 배우며 생존이라는 삶의 무게를 견딜 때, 자유세계의 아이들은 놀기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배웠고, 누렸고, 느꼈다. 그들이 쌓아온 모든 시간들은 지식이 되었고, 자유라는 열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되었다. 어쩌면 나보다는 남편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남편을 넘을 수 있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가 겪어온 나의 경험들이 아이의 인생에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글로 남겼다. 프랑스라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나라를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해 갈 때, 혹시나 겪을 좌절과 고난을 이겨낼 때, 나의 이야기가 어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희망과 기대를 품어 보며 오늘도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