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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혜성님 Nov 05. 2023

북한여성, 남프랑스에서 수렵채집으로 생존하기

프랑스에서 산나물을 먹으며 살아가는 북한여성의 에세이

프랑스인들은 빵을 주식으로 삼는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기를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몇 년째 살면서 알게 된 것은, 프랑스인들은 하루에 두 끼인 점심과 저녁에 고기와 야채를 함께 먹고, 빵은 치즈와 곁들이거나, 파스타 소스나 수프에 찍어서 후식처럼 즐긴다는 것이다. 빵을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바게트 한두 조각을 잘라내서 가운데 치즈를 넣고 먹은 후 요구르트나 기타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끼니를 마무리한다.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 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 요리를 먹는다. 예수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 외에는 거의 매일 고기를 먹는다. 처음 프랑스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기를 아침을 제외한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동양인들도 고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매일 주식으로 먹는 것은 좀 부담스럽다.


특히 나는 북한에서 고기를 거의 못 먹고 반강제적으로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매끼 고기를 먹으니 소화도 안 되고, 부대끼고 내명에 못 살겠다 싶었다.  남편과 의논하고 나의 끼니는 내가 알아서 따로 챙겨 먹겠다고 했다. 대신 시댁에 갈 때는 늘 시어머니가 준비해 주는 정성스러운 프랑스 가정식을 먹는다. 프랑스에는 시중에 야채 종류가 진짜 적다. 프랑스 사람들은 야채라고 하면 주로 열매 야채나 뿌리 야채를 먹고, 잎사귀 야채라고 하면 근대, 시금치, 케일, 그리고 여러 종류의 샐러드용 상추들을 먹는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잎사귀 야채들은 끓는 물에 데쳐서 한국식으로 반찬을 만들어서 먹어 보면 씹는 맛이 전혀 느끼 지지 않을 정도로 무르다. 나는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거의 토속 입맛이라, 잎사귀 야채를 진짜 좋아한다. 특히 취나물, 고사리, 곤드레 같은 나물류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매끼 고기를 먹으니, 도저히 프랑스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생활이라는 게 정말 중요한데 음식이 이렇게 맞지 않아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프랑스 적응 초기에는 한국으로 진짜 자주 다녀왔다. 한국에 한 번씩 다녀올 때면 캐리어 안에 온갖 식재료들로 가득 채워왔다. 그런 노릇도 점점 지겨워질 즈음, 시어머니가 지내는 시골길을 산책하다가 비름나물을 발견했다. 비름은 북한에서는 재배도 하는 나물이었는데 식용으로 쓰기보다는 돼지 먹이를 위한 사료로 재배했었다. 나는 북에서도 비름나물을 먹어 본 적이 없다. 하도 나물 종류가 귀한 타향살이니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뜯어서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와서 데쳐서 우려서 묻혀 먹으니 먹을만했다. 고기보단 나았다.


그때부터 시댁이 있는 시골만 내려가면 시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기고 자루 하나 들러 메고 들로 나가 나물을 뜯는다. 나물 종류도 되게 다양한 게 여기에 쑥도 있다. 그리고 ortie(쐐기풀?)라는 야생 풀도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말려서 차로 마신다고 했다. 나는 봄에 잔뜩 뜯어서 데쳐서 말려서 나물로 먹는다. 남프랑스에는 뽕나무도 많다. 뽕잎도 이른 봄철 새순이 돋을 즈음 조금씩 뜯어서 얼려 놓으면 가끔 한식이 그립거나 고향 생각날 때면 꺼내서 나물 무치는 것처럼 된장과 참기름 그리고 마늘을 으깨 넣고 묻혀 먹으면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봄철 4월 5월은 자루 하나 들러 메고 남프랑스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일 년 먹을 나물을 준비하느라 참 바쁘다.


남프랑스의 여름은 건조하다. 대지가 바싹 말라붙는다. 길거리의 잡초들도 생기를 잃고 누런빛을 낸다. 나무 잎사귀들은  잔뜩 오그라들어 비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한국의 가을 같은 풍경이 남프랑스 여름 풍경이다. 들판에는 밀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도처에서 산불경계하라는 안내 표지판이 붙는다. 남프랑스는 주로 여름에 산불이 많이 난다. 올해만 해도 내가 사는 도시에서 꽤 가까운 지역에서 산불이 크게 났었다. 그러니 나물 뜯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남프랑스의 여름은 자연에서 얻을 건 전혀 없는 계절이다. 수렵채집을 취미로 사는 나에게 여름은 참 재미없는 계절이다. 하지만 7월 말에서 8월 초쯤에는 복분자가 많다. 바구니 하나 들고 남프랑스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복분자를 뜯는다. 복분자는 설탕에 절여 진액을 만들어 두고 요리할 때 쓰거나 차나 시원한 음료로 만들어 마시면 맛이 좋다.


남프랑스의 가을은 축복의 계절이다. 호두 아몬드 그리고 올리브 등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아무도 챙겨가지 않는다. 나는 가을이면 시댁이 있는 시골에 자주 간다. 시댁이 있는 시골에는 아몬드가 원산지였을 만큼 많았었다고 한다. 남편 말에 의하면 프랑스 국가정책을 잘 못 짜서 프로방스 지역의 아몬드 농사가 전부 미국 LA 쪽으로 넘어갔다고 참 아쉽다고 했다. 남프랑스 날씨에는 아몬드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기후라고 했다. 남프랑스에는 아몬드 나무가 참 흔하다. 가을이 되면 다 익은 아몬드가 과육과 분리되어 떨어져 흙바닥에 널려 뒹굴고 있는데 아무도 줍지 않는다. 쇼핑백 하나 들고 다니며 하루에 한 자루씩 줍는다. 햇볕에 말린 후 시댁의 차고에 켜켜이 쌓아 두고 일 년 내내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챙겨 준다.


비가 와서 대지를 흠뻑 적시고 축축해지면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달팽이들이 슬금슬금 나와서 돌아다닌다. 프랑스는 달팽이 요리가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우리가 개고기를 안 먹는 것처럼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달팽이 요리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많다. 달팽이가 큰 건 어린아이 주먹만 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요리로 사용하는 달팽이는 식용으로 따로 하우스에서 키워서 먹는다고 했다. 나의 시머니는 야생에서 작은 달팽이를 주어다 일주일 정도 굶긴 다음 깨끗하게 씻어서 버터와 마늘 그리고 바질을 넣어서 볶아 드신다. 나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어그냥 한 마리 맛봤는데 바다에서 나오는 골뱅이 요리가 더 입맛에 맞았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밖에 안 됐으니, 어리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나이가 많다고 할 수도 없는 나인데, 만 리 타향에서 살면서도 북한에서 살던 어린 시절의 때를 못 벗고 이렇게 수렵채집을 취미로 삼고 살고 있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다. 이러려고 38선을 넘은 건 아닌데.. 한국 남자랑 살았었으면 할머니처럼 산다고 핀잔을 들었으려나? 다행인 건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나의 남편에겐 이런 내가 신비롭게 보이는 것 같다. 프랑스 남자가 나처럼 사는 여자를 어디서 구경이나 했을까 싶다. 우리 시어머니도 내가 뜯어 온 풀들을 보면 먹는 풀인지 아닌지 전혀 모른다. 남편은 내가 뜯어 온 들풀을 가득 들고 머니에게 가서 알아보고 온다. 2차 대전을 겪은 우리 시할머니와 내가 자라 온 환경이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보다는 시머니와 더 친하다. 남편은 내가 들에 나는 풀을 뜯어먹다 죽을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남편의 평생 친구나 다름없는 프랑수아에게 내가 자연에서 야채를 직접 채집해서 먹는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남편에게 고마운 건 나의 문화의 다름을 인정해 주고 본인의 문화 맞추라고 강요하지 않는 점이다.


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에 브런치나 먹으며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다. 근데 그게 잘 안된다. 내가 사는 도시는 관광지라 고급 지고 맛있는 음식을 파는 카페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곳이 불편하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마냥 편하지가 않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분위기도 못 즐기고 급하게 대충 먹고 집으로 향하는 일이 다반사다. 나는 시원하게 사방에 뚫린 대지에서 땅을 만지고 땅에서 나오는 풀과 열매를 만지며 맑고 오염되지 않은 시원한 공기를 호흡하면서 사는 것이 나랑 맞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살면 좋은 게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프랑스 살이도 7년 차가 되어가니 나의 식생활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할 때면 바게트 한 조각과 치즈 한 조각 소금에 절여 말린 돼지고기 한 조각으로 한 끼를 때우곤 한다. 북한에서도 북방의 사람 못 살 도시로 손꼽히는 아오지에서 태어나어나서 자란 내가 프랑스의 식생활도 익숙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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