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와 부끄럼 사이
신의 집을 방문했다. 천 년은 족히 버텼을 법한 고딕 양식의 성당 안으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유럽의 성당은 어둡다. 성경에서 영감을 받은 조각상들은 정교한 손들을 거쳐 작품으로 탄생했고, 그것들은 성당의 기둥과 벽에 붙어 무게감을 더한다. 그 속에 들어가 앉아 있다 보면, 신이 살아서 나에게 말이라도 걸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읊조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신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서 만드셨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하셨다지. 나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성당 안에는 족히 수백 년은 사용됐을 법한 나무 의자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군데군데 벌레가 나무를 파먹은 흔적도 있었다. 나는 중간쯤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았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을 드나든 사람들은 무엇을 간절히 빌었을까? 그들의 바람은 신께서 이뤄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두 손을 모으고, 내 바람과 가족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했다. 정말이지, 나 같은 이성주의 신봉자에게도 경건한 마음이 샘솟듯 나를 휘감았다.
같은 자리에 한참을 앉아,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여름철이라 프랑스 답게, 이 작은 동네의 고딕풍 성당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드나들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들어와 서성이며, 성인들의 조각상을 심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리아상 앞에 마련된 기도 테이블로 다가갔다. 동전을 나무 상자에 넣고, 그 위에 놓인 작은 초를 손에 쥔 채 불을 붙였다. 그리고 가지런히 줄을 맞춰 초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채 기도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지나쳤고, 또 어떤 이들은 나처럼 마음을 담아 기도했겠지. 신이 정말 있을까?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을 나왔다.
성당 앞에는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루마니아 집시 남성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타는 듯한 햇볕 아래 전신을 드러낸 채 구걸하고 있었다. 그 뜨거운 햇빛을 피할 손바닥만 한 그늘조차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집 앞에서 구걸하는 그 남자를 보며 동정심이 일었고, 동시에 갈등을 느꼈다.
‘내가 동전을 줘야 할까? 방금 신의 집에 다녀왔고, 이 사람은 신의 집 앞에서 자비를 구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지. 어쩌면 이 사람은 나에게 1유로만큼의 사랑을 구걸한 건 아닐까?’
그러나 솔직히, 아깝다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1유로가 없다고 해서 내가 못 사는 건 아니지. 그럼 10유로는? 그래, 없어도 산다. 100유로는? 1000유로는? 10,000유로는…?’
단위는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깨달았다. 만 유로가 없어도 나는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낯선 집시에게 1유로조차 선뜻 건네지 못하게 하는 작은 마음 하나가 깊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갑을 열어 동전을 찾아볼까 망설이던 찰나, 검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 프랑스 청년이 성당 앞에서 나처럼 그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 멈춰 섰다. 그는 성당 맞은편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더니, 조심스레 다가가 그것들을 그 남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날씨가 참 덥지요. 이건 조금 전에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예요. 시원하게 드세요. 혹시 샌드위치를 다 드신 후엔, 디저트로 초콜릿 머핀도 드시겠어요?"
그 청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나 스스로가 참 초라하고 못나 보였다.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집시는 청년에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은 다시 빵집으로 들어가, 페트병에 담긴 물 한 병과 초콜릿이 얹힌 머핀을 사서 나왔다.
“햇볕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마세요. 이 물 마시세요. 샌드위치 드신 후엔, 이 머핀도 디저트로 드세요.”
나는 부끄러웠다.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7월의 타는 듯한 여름, 남프랑스의 이 작은 도시는 어디나 관광객들로 붐볐다. 프랑스인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만 남기고, 대부분 나라를 비워둔 채 전 세계로 떠나거나,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도시 중심에 위치한 꽃시장으로 향했다. 오른쪽에서는 영어가들리고, 왼쪽에서는 스페인어가, 뒤에서는 어느 나라 언어인지 알 수 도 없는 언어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발걸음은 꽃시장으로 조금씩 옮기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성당 앞에서 구걸하던 집시와 그에게 동정을 건넨 프랑스 청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은 선할까, 악할까? 선하다고도 생각했고, 악하다고도 생각했다. 사회가 악하면 인간도 악해지고, 사회가 선하면 인간도 선해진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 중국에서, 북한에서 나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을 여러 번 넘겼다. 그때 나를 구원한 것도 사람이었고, 나를 위험에 빠뜨린 것도 사람이었다. 그래. 인간은 인간을 구할 수도 있고, 인간을 죽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을 구하려고 자신의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내어줄 때, 우리는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움도 느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