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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Oct 31. 2022

인본주의는 유효한가.

「인코그니토」서평

1. 인본주의의 종말

 나는 인본주의자다. 인간은 이성을 바탕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이 무엇보다 숭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인류의 자아와 자유의지를 차례로 부정하며 이성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성이 허구라면 이성을 근간으로 성립하는 인본주의도 허구다. 인간은 뇌에서 인간의 자아, 영혼, 자유의지를 찾으려 했지만 발견한 것은 유전자, 호르몬, 뉴런뿐이었다.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벤저민 리벳 역시 뇌의 전기신호가 0.3초 전에 발생하고 그에 따라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유기체가 우리의 욕망을 조작∙통제하여 일어난 뇌의 전기화학적 반응을 우리는 자유의지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자아와 글을 쓰려고 결심한 나의 자유의지는 없는 걸까?

언어의 정원 유튜브 : "자유의지 같은 건 없다!" 뇌과학 「리벳 실험」의 인문학적 의미


2. 뇌의 두 가지 운영방식

* 인코그니토 : 익명의, 신분을 숨긴이란 뜻으로 여기에선 무의식을 의미함

 「인코그니토」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자아는 뇌에 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인간의 지각 및 행동을 주로 연구하는 신경의 이자, 신경과학자이다. 이글먼은 우리의 뇌가 무의식 중 작용하는 자율방식과 의식 중 작용하는 중재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말한다. 평상시에는 크루즈 모드로 운행하다가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직접 운전을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 뇌는 대부분 자율방식으로 외부를 인식하기 때문에 인지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뇌는 인지가 아닌, 예측을 하고 필요할 때만 세상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착시는 뇌의 예측으로 인한 대표적인 인지 오류이다. 뇌는 맹점이라는 상실된 정보를 자동으로 채우기도 한다. 촉각 역시 마찬가지다.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라는 사지를 절단당한 환자들이 환상통과 환상사지 현상을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왼팔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도 뇌는 계속 감각은 물론 통증까지 느끼며 왼팔이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예측 실제 경험 다르다는 오류를 깨닫거나 의식적인 활동이 필요할 때 뇌 중재방식 작동하기 시작한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오른쪽에 놓인 연필꽂이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누군가 그 안에 있는 필기도구들의 색깔과 개수를 묻는다면 나의 뇌는 그제야 의식적으로 연필꽂이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중재방식으로 수행했던 일들이 반복 훈련을 통해 뇌의 회로에 각인되어 자율방식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온 신경을 집중하던 초보 운전자가 도넛을 먹으며 운전하는 숙련 운전자가 되는 것, 시합 때 선수들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경제학의 초석을 다진 대니얼 카너먼 역시 자아를 이글먼과 유사하게 구분한다. 자율방식과 유사한 시스템1, 중재방식과 유사한 시스템2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충동적인 시스템1을 통해 직관적으로 상황을 인지하지만, 직관적 예측이 사실과 다르거나 복잡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2가 작동하여 시스템1을 보완해준다. 카너먼 역시 시스템1을 주인공, 시스템2를 본인을 영웅이라고 착각하는 조연이라고 말하며 인간의 무의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이글먼은 무의식이 편향성이나 신념까지 갖게 한다고 덧붙인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자기애를 가지고 있어서 본인과 유사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나 자주 노출되는 얼굴이나 상품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동일한 진술이나 주장에 노출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을 믿는 비합리적 행태를 보인다. 또한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특정 부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뇌가 바뀌면 인간도 바뀌는 것이다.


3.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오는 인간

 큰일이다. 인간이 대부분 무의식에 기반하여 상황을 인지하고 신념을 형성하여,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니. 인간의 자유의지이성을 어떻게 신뢰한단 말인가.

답은 자율방식이 아닌 중재방식에 있다. 발현 빈도는 낮지만, 중재방식이 이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때는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중재방식이 이성을 앞세워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중재방식을 기반으로 가설제기라는 창조적 활동과 검증이라는 비판적 활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진보해왔다. 그 결과 4대 기본 물질이 만물을 생성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전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 등의 발견으로 구현되었다. 우리는 고대의 지혜가 첨단의 지식이 만나는 순간 살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과학기술이 인간은 유전자, 호르몬, 뉴런뿐인 알고리즘 유기체임을 밝혔다고 주장한다. 단일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성은 허구이고 인본주의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분히 유기체 환원주의적 주장이다.


 하지만 인류는 과학 기술 통해 뇌의 역할에 따라 자아가 다르게 나타나고, 필요 시 자유의지에 따라 비판적∙논리적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충동적 직관을 보완한다는 사실 또한 밝혀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벤저민 리벳의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 뇌의 전기신호와 인간의지의 발현인 줄 알았던 0.3초의 시간차는 뇌의 시각 기능-추론영역-최고사령부 간 정보 취합 및 전달 때문에 발생한다. 결국 모든 게 뇌 안에 의사결정과정이었던 것이다.


 자아를 영혼이나 마음에서 찾던 인류가 뇌라는 블랙박스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과학기술의 산물인 MRI 덕분이다.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을 통해 유전자, 호르몬, 유전자로 스스로를 해체하던 인간은 역설적으로 인본주의라는 자신의 권위마저 의심받게 되었다.


 중세 이후 길을 잃었던 인류는 과학과 근대 이성을 기반으로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나침반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본주의의 근간인 과학과 이성에 의해 되려 인본주의가 위태로워진 것이.


4. 멈추지 않아 아름다운 인류

 인류가 인본주의 신화에서 깨어날지, 유지할지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인류가 논리∙비판적 검증을 거듭하며 당대의 가장 그럴싸한 지식을 쌓아 진실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인류는 자연, 우주, 신, 인간 등 주변과 본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과학 기술을 이끌었고, 모든 이념과 제도의 근간이 되는 근대 헌법을 바탕으로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 몰라도, 인간이 함께 걸어온 인류의 발자취는 존귀하다.


 모든 것 인류가 이성과 인본주의를 믿고 나아간 결과다. 심지어 본인들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인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아름다운 행보가 계속되는 한 나 역시 인본주의를 놓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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