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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Oct 31. 2022

존엄한 인간을 위한 헌법 완성

「최소한의 선의」 서평

 우상향 하는 나스닥 지수 그래프처럼 나는 역사 일정한 곳으로 나아 믿는다. ‘인류는 자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경제정치성별인종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서 평등해졌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라는 역사의 방향성을 믿는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역사의 좌우 수레바퀴 자국은 헌법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소한의 선의」는 두 헌법 가치에 대한 책이다.


 순전히 저자 때문에 「최소한의 선의」를 택했다. 인프피답게 저자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문장마다 통감뒤로 나는 그의 저서를 모조리 읽었다. 저자 문유석은 1997년부터 소위 경판(京判)으로 법관 생활을 시작하여 2020년 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 법복을 벗고, 작가로서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다. 「최소한의 선의」는 저자가 작가로 전업한 뒤 발간한 첫 번째 책이.


 「최소한의 선의」의 핵심 메시지는 ‘법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다. 인간 존엄성은 헌법의 목적이자 존재가치이기 때문에, 헌법이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선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과연 인간이 실제 존엄한지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헌법 밖 현실에서 인간은 존엄하지 못하다고 답한다. 사회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본권은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권 등과 달리 개별법과 예산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도권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만 실현된다. 그러나 '국가 경제발전, 국가안보, 민족의 융성 등 우선 과제'를 놔두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사치이자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었다.


 2022년 대한민국은 '선진국'이고, 인간 존엄성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다. 인간이 존엄하게 살기 위한 조건들이 실질적으로 충족될 때 헌법은 법전 밖 현실에서 마침내 완성된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현실적인 관점도 흥미롭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 존엄성을 지탱하는 주요 가치인 만큼 기본권은 자유권적 기본권, 평등권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현실에는 국가권력의 간섭 부재만을 뜻하는 소극적 자유로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모두가  자유를 누리려면 간섭 부재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가 생존권(사회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간섭 부재만으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에서는 자유보다 생존과 평등이 우선가치가 된다. 거주가 불안한 사람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는 무의미하고, 막노동 외에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실업자에게 직업선택의 자유는 허울뿐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자유를 주면 공동체는 와해될 것이다. 「사피엔스」를 통해 유발 하라리가 전한 것처럼 다수에게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뿐이다.


 저자는 자유를 보장하되, 평등으로 제어함으로써 두 가치 간 역학관계의 균형을 찾는다. 사회가 자유와 창의, 혁신을 보장하여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도록 하되, 그 자유가 누군가를 추락시킬 우려가 있을 때는 자유를 평등으로 제어하자고 제안한다. 차량 공유 플랫폼이 낳은 혁신과 이익이 충분히 커져 택시업계의 업종 단절을 책임질 수 있고, 시각장애인이 안마사를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여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평등의 손을 들어주자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존엄성을 지키며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최소한의 선의를 국가권력이 법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국가들은 주권 혁명에 따라 제각각 헌법을 마련했다. 인류 헌법에 자유, 평등, 행복 등 인간이 추구해야 할 다양한 가치들을 명문화했고, 모든 헌법은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약속 되었다. 사실 헌법만 제대로 실현된다면 우리는 모두 존엄성을 지키며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배부른 소리들에 귀 기울인다면 ‘인간다운 삶’에 대한 기준점을 올릴 수 있다.


 저자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헌법이 공존을 위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따라 나는 헌법이 개인의 일상에서도 훌륭한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자유 의지에 따른 선의 실천에서 찾는다. 나아가 인간은 의지대로 선을 실천함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한다. 개인들이 인간 존엄성 등 헌법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인류는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덧붙여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조항을 개정하여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좁혀나가면 우리는 헌법에 더 큰 선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이 외에도 「최소한의 선의」에는 사형제도 찬반, 국민 법감정과 실제 양형 간의 괴리, 나를 파괴할 권리, 언더 도그마 등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전직 법조인의 관점이 담겨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덧붙여 합리적인 개인주의자의 사고방식을 담은 시대의 정론서 「개인주의자 선언」도 추천한다.

 

 2020년 초 저자가 법관 퇴직금 상당액을 미국 주식에 적극 투자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2020년 2월 미국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2021년 폭등기를 거친 2022년 주식시장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문 작가님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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