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직접 선택한 것이니까
미국의 유명 방송인 코난 오브라이언은 ‘냉소적이 되지 마세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이자 인기 프로레슬러인 드웨인 존슨은 ‘저는 냉소적인 사람이 싶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없애버리거든요’라고 하더군요.
가끔 냉소적인 사람을 부정적인 사람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그냥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고 비웃는 사람이지만, 후자는 나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하면서 그것에 대비하자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긍정적인 사람은 비행기를 만들고, 부정적인 사람은 낙하산을 만든다’라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부정적인 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 아주 좋은 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냉소적인 사람은 저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를 비웃어버리죠. 저게 뜨겠어? 저런다고 살겠어? 라면서 말이죠.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냉소주의가 너무나 넓게 퍼져 있습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 개천에서 나오기 어려워진 용, 노오오력을 강요하는 꼰대 문화 등등, 이유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냉소주의를 좋은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절대로.
이것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을 꼽아보라면, 저는 성취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열심히 공을 들였던 무언가가 완성되었을 때의 희열, 노력한 것이 결과로 이어졌을 때의 짜릿함 등등, 그런 것들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냉소에 쉽게 빠져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이러한 성취감은 쉽게 느끼기 어렵죠. 학업, 입시, 취업, 승진, 사업, 기타 등등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성취의 대상들은 아무리 짧아도 수년간 열심히 노력해도 이룰까 말까 한 것들이죠.
그렇지만 저는 꼭 이런 것들에서만 성취감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에 진지하게 임해서, 그것으로 어떠한 결과물을 낸다면 그것으로도 상당한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헬스장에서 쉽게 못 들던 중량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없게 했던 강력한 보스를 드디어 격파한 순간, 만들기 어려운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울 때의 손맛, 작정하고 돌린 스윙이 공에 적중하면서 원하는 코스로 떨어지는 모습, 매번 꼬이고 실수했던 스탭이었는데 리듬에 맞춰서 깔끔하게 밟았을 때의 감각…
이러한 순간에 어떠한 전율이 찾아오는지 아마 아는 분은 아실 겁니다.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쾌감이 온몸을 휘감거든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놀이 아니냐, 그런 거에 왜 난리를 치느냐라고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놀이니까 진지해지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어찌 진지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역으로 저는 질문하고 싶어 지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도 진지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진지해질 생각이냐고.
그래서 저는 애니메이션 ‘건담 빌드 파이터즈’를 좋아합니다. 작중에서 벌어지는 장난감 건프라들로 이루어지는 배틀을 보고 누군가 이렇게 말하죠. 장난감으로 하는 놀이에 왜 저리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말이 맞다. 놀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기 때문에 진지해지는 것이다, 라고.
저는 그래서 게임으로 열심히 노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진지하게 놀고 있으니까요. 여차하면 얼마든지 뜨거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