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부수지 말아 주세요
8090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거의 공통적으로 확인가능한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 몰래 오락실에 갔다가 걸려서 혼이 났던 경험이죠.
0010 시대에 학교를 다녔던 게이머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더군요. 장소가 피시방으로 바뀌었지만, 마찬가지로 몰래 갔다가 귀 잡혀서 끌려 나오는.
사실 찾아보면 이건 아주 흔한 이야기이긴 합니다. 몰래 가는 곳을 당구장이라던가 기타 등등 당대의 젊은이들이 좋아했던 장소로 바꾸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흐름이 똑같은 경험담들을 찾아볼 수가 있죠.
뭐 여기까지는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긴 합니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일탈은 그만큼 짜릿한 재미가 있기도 하고, 반대로 부모님 입장에서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엄한데 가서 놀고 있으면 없던 두통도 생겨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마냥 웃으면서 추억하기 어려운 것은 걸린 이후의 부모님들의 도가 지나친 ‘훈육’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회초리로 때리는 것은 예사였고, 심한 경우에는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당연히 이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체벌에 대한 찬반은 둘째 치더라도, 육체에 심한 상흔을 남기는 매질은 그저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불과하니까요. 그 의도가 무엇이든, 남는 것은 깨져버린 자녀의 멘털과 평생 남을지도 모르는 트라우마뿐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렇게까지 심한 체벌은 드물다고 하더군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이것에 버금가는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들이 제법 있다고 하더군요. 바로 자녀들이 아끼는 게임기나 핸드폰 등을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행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모가 보기에 어떨지는 몰라도,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게임기는 가장 소중한 보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부숴버린다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단언컨데 절대로 ‘아, 내가 큰 잘못을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다시는 게임을 하지 말고 부모님 말씀 잘 들어야겠다!’ 같은 깨달음을 얻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내 부모님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부숴버리는 사람들이구나’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야 하겠구나’
커다란 충격과 슬픔, 격정에 휘둘린 다음 아마 위와 같은 결론을 얻게 될 겁니다.
이것은 게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돌 포스터, 운동선수의 사인 유니폼, 컬렉팅 카드, 곤충표본,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자녀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부수는 순간, 부서지는 것은 그 물건이 아닙니다. 부모자식 간의 믿음과 신뢰, 그리고 애정의 근간 등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제발, 진심을 담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 주세요. 마음껏 하게 놔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존중을 담아, ‘파괴’만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 선을 넘지 않았기에, 저는 아버지와 서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 케이스를 저는 너무나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부디, 부수지 말아 주세요.
-계속